중국 최고의 자본가가 공산당 지도부에 입성할 수 있을까. 요즘 중국에선 최고 부호 량원건(梁穩根·55) 싼이그룹 회장이 내년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중앙위원 후보위원에 오를 것이라는 소식이 공산당의 정체성 논쟁에 불을 붙였다. 작년 말로 당원이 8000만 명을 넘어선 중국 공산당에서 중앙위원은 204명, 중앙후보위원은 167명으로 대부분 부부장(차관급) 이상의 직책을 맡고 있다.
[GLOBAL_중국] 자본가들의 위상 ‘쑥쑥’ 정치권‘러브콜’이어져
량 회장이 공산당 지도부로 발탁될 것이라는 소식은 회사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화샤시보 등 중국 언론들이 연일 다루고 있다. 공산당 인사를 담당하는 조직부가 이미 심사를 끝냈고, 량 회장이 중앙위원회에 진입한 후 후난성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마저 떠돈다.

지금도 공산당 중앙위원이나 후보위원 중에 기업인이 여럿 있지만 모두 국유기업인 출신으로 량 회장이 진입하면 민영기업인으로는 첫 사례가 된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개인 재산 700억 위안을 보유한 량 회장을 2011년 중국 최고 부호로 선정했다. 후난성의 작은 마을에서 대나무로 바구니를 짜서 팔았던 그는 1986년 소공장으로 시작한 싼이그룹을 중국 1위, 세계 6위의 건축 장비 회사로 키웠다. 공산당 입당 3년 만인 2007년 17차 전국대표로 뽑혔다.


최고 부호 량원건 회장 공산당 중앙위원설

량 회장처럼 중국에서는 자본가들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중국 부호 연구 전문 기관인 후룬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1000명의 기업인 가운데 15%인 152명이 정치 신분을 겸하고 있다. 이 가운데 71명은 정치 자문기구인 정협(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포스코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최대 민영 철강 업체 샤강그룹의 선원룽(沈文榮) 회장은 1993년 장자강시의 정협 주석을 지낸 뒤 장자강시 부서기를 맡기도 했다.

량 회장의 중앙위원회 진입설은 이 같은 흐름이 가속화될 것을 예고한다. 일각에선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 과정에서 국유기업들에 대해 더 많은 특혜를 줘 민영기업들이 되레 고전하는 ‘국진민퇴(國進民退 : 국유기업의 약진과 민영기업의 쇠퇴)’ 상황을 이끌어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민영기업의 우대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상징적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산당의 간판 좌파 사이트인 유토피아에서는 “중국 최고 부자가 인민 대중을 대표하는 건 불가능”,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 자체가 공산당의 타락” 이라는 등의 비판 글이 이어진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10여 년 전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면서 불붙은 논쟁이 다시 점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장쩌민의 자본가 끌어안기
2001년 ‘3대 대표 이론’ 내놔

2001년 8월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 차오스(喬石)·쑹핑(宋平) 등 공산당 원로를 비롯해 중국 지도부인 정치국원 대부분이 모습을 보였다. 두 달이 흐른 뒤 대만계 홍콩 신문 아시아타임스는 그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당시 1인자 장쩌민 공산당 총서기가 암묵적인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장쩌민이 공산당 창당 80주년인 그해 7월 1일 행한 “자본가도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발언이 문제가 됐다. 이미 12만 명의 민영기업인들이 공산당원이어서 별것 아닌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당원 신분으로 창업한 사례로 장쩌민이 헌법을 고쳐 공산당과 무관하게 사업을 시작한 민간 정보기술(IT) 기업의 창업자와 자영업자 등도 당원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했다. 장쩌민이 2000년 2월 처음 언급했을 때만 해도 주목받지 못한 ‘3개 대표 이론(당이 선진 생산력, 선진 문화, 광대한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에 세계의 시선이 다시 쏠리는 순간이었다.

좌파 성향의 당 지도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14명의 당 원로들이 연명해 지도부에 제출했다는 서한은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 허용에 반박하는 거친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당의 의사결정 절차를 밟지 않고 미리 발표한 장쩌민의 행동 자체가 당의 단합을 해쳤고 결과적으로 중국을 구소련식 붕괴로 이끌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까지 나왔다. 좌파의 반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장쩌민은 문제의 서한을 쓴 작가를 가택 연금하고 이를 유포한 관료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듬해인 2002년 초 관영 신화통신은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 조건을 공개했다. 그해 11월 열린 16대 당 대회에서 장쩌민의 3개 대표 이론은 당규약(黨章)에 삽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