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특허가 아니라 사람에 투자하라

지난 1년 동안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마치 지난 14년 동안 이곳에서 살면서 보아 왔던 다양한 일들이 압축돼 고속으로 재생돼 가는 느낌이다. 엄청난 규모의 인수·합병(M&A), 지식재산권들의 가치 극대화 전략,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 시장의 급성장 등이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들은 인재들의 이동이다.
<YONHAP PHOTO-0327> In this Oct. 14, 2008 photo provided by Apple, from left: Apple's chief operating officer, Tim Cook, CEO Steve Jobs, and vice president Phil Schiller take questions during a meeting at Apple headquarters in Cupertino, Calif.  Cook will take over CEO Steve Jobs' responsibilities while he is on leave, though Jobs said he plans to remain involved in major strategic decisions. (AP Photo/Paul Sakuma)/2009-01-15 09:47:33/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In this Oct. 14, 2008 photo provided by Apple, from left: Apple's chief operating officer, Tim Cook, CEO Steve Jobs, and vice president Phil Schiller take questions during a meeting at Apple headquarters in Cupertino, Calif. Cook will take over CEO Steve Jobs' responsibilities while he is on leave, though Jobs said he plans to remain involved in major strategic decisions. (AP Photo/Paul Sakuma)/2009-01-15 09:47:33/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본질적으로 실리콘밸리 문화는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제품, 서비스 또는 기술로 거대 시장을 장악하거나, 흡수 합병되거나, 아니면 망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들과 그런 미래에 베팅하는 모험적 투자자들, 이 양대 축이 실리콘밸리의 혁신과 발전을 유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 파워는 인재 확보에서 나와

얼마 전에 1년도 안 된 휴렛팩커드(HP)의 최고경영자(CEO)가 사장에서 해고됐다. 떨어진 주가에 성난 투자자들이 이사회를 압박하고 이사회는 신속하게 대응, 최고경영진을 교체하는 구조다. 경영진은 성과를 내기 위해 고급 인재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뽑고 유지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 이후의 애플에 대해 많은 견해들이 오간다. 그들이 진출할 다음 제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추측과 그에 따른 성패와 성장에 대해 계산들이 바쁘다. 하지만 기술 또는 제품 이면의 중요한 요소인 사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애플이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고 최대의 현금을 보유하며 엄청난 수의 충성된 고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에는 스티브 잡스를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각 분야의 수많은 천재들이 돈을 떠나 (물론 일생 편하게 살 수 있는 수준의 보상은 기본적으로 제공된다) 이곳 애플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데에는 스티브 잡스의 인재 관리 능력이 핵심이다. 고급 인재들은 높은 자긍심과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그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해 그 능력을 사용하게끔 하려면 그보다 더 뛰어난 천재성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스티브 잡스는 그것을 갖췄다.

어느 회사나 사람이 모인 곳에는 견해차가 발생하게 된다. 버튼이 없어진 MP3 플레이어(아이팟·아이튠즈), 키패드가 없고 터치로만 사용하는 스마트폰(아이폰), 모두가 실패했던 태블릿 시장에 멀티터치 9.7인치 화면을 들고 뛰어든 아이패드 등 그 엄청난 성공 제품들도 판매 초기에는 엄청난 비판과 경쟁사의 조롱을 받았었지만 시장의 잠재적 크기와 소비자인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본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적·기술학적 천재성으로 조직 내부의 천재들과 외부 투자자들 모두를 타협 없이 이끌면서 성공을 증명했다.
격변기 IT 산업 어디로 가나
새로운 리더인 팀 쿡이 과연 각 분야의 깊은 내공을 갖고 있는 고급 인재들을 통합하고 끌고 나가는 것에 애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본다. 아직 우리나라의 상품 기획력은 경쟁사보다 더 얇고 가볍게 다양한 사이즈로 여러 종류를 만물 백화점처럼 만들어 놓고 무엇이 반응이 좋을지 알아보는 신속 대응식이다.

사람들이 더 좁고 긴 아이폰이나 화면이 더 큰 아이패드가 나오지 않을까 입방아를 찧을 때 애플은 학생들의 텍스트북을 대체할 수 있고 가독성이 뛰어나 자연스럽게 생활 문화를 바꿀 수 있는 9.7인치 하나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식이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듯싶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원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가장 큰 잠재력을 보고 기획 생산과 가격·마케팅을 맞추는 것이다.

인문학적 철학이 숨겨진 제품에는 사람의 습성을 바꾸게 하는 강요와 타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욕구에 충족하는 절대적 기준만이 있고 그 후에 부품 기술과 소프트웨어들이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스티브 잡스의 독보적인 비전과 하이터치 제품을 만들던 애플이 만약 기존의 명성에 의존해 매출 신장을 위한 신기술 신상품을 무리하게 발표하고 그로 인한 작은 실패가 발생하면 사내의 수많은 천재들은 제각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결국 뛰쳐나와 창업하는 현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은 앞다퉈 그러한 증명된 천재들에 투자할 것이고 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상품들이 다양한 브랜드로 시장에 나오면서 그동안 중원을 제패한 통일천하에서 과거의 춘추전국시대로 회귀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실리콘밸리의 패턴이고 고급 인재들의 속성이다.

카페에 들르면 애플 노트북을 꺼내 페이스북과 구글 메일, 트위터를 사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5년 전만 해도 윈도즈 랩톱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아웃룩, 야후 메일이 대세였지만 모든 것이 바뀌었다. 경쟁사의 경험 있는 인재들을 흡수해 새로운 서비스에 동참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의 성장 속도는 순식간이다. 분화와 융합을 반복하는 생명의 원리처럼 인재들은 모였다가 흩어져 다시 다른 인재들과 합쳐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것이 회사 또는 신기술 서비스의 이름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실리콘밸리는 개발자들의 천국 2.0의 시대가 펼쳐졌다. 마음먹은 것을 어디서건 아웃소싱할 수 있고 국경을 초월해 클라우드로 동시에 접근할 만큼 중간자의 역할이 사라지고 개발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세상인 것이다. 애플의 인재들이 각자의 꿈을 찾아 아이스페이스 캠퍼스를 떠나 다른 인재들과 융합할 때 다른 회사들이 애플의 자리를 노릴 수 있으며 삼성이나 LG에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기업들은 그런 인재들이 모여 있는가?

잠재적 천재조차 질식해선 희망 없어

어쩌면 그나마 손안에 있는 잠재적 천재들조차 획일화된 조직 문화에 뜻을 세우지 못하거나 아예 실리콘밸리의 인재들처럼 뛰쳐나가 새로운 일들을 펼칠 움직임이 애플 못지않게 크다고 본다. 예를 들어 소비자의 습성과 인문학적 고뇌 없이, 단지 첨단 부품 기술 로드맵에 끼워 맞춰 새로운 스펙이 결정되는 매너리즘에 빠지지는 않는지,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귀 기울이지 않고 외형적 숫자에 집착하는 자리 지키기식 사업을 기획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동참했던 우리나라의 천재들 역시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게 될 것이다.
격변기 IT 산업 어디로 가나
애플은 쿠퍼티노 본사에 1만2000명의 인재들을 흐트러짐 없이 잘 관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는 자부심이 있고 무상으로 준 보너스 회사 주식들의 가치가 매일매일 오르고 있어 치열하지만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다. 이제는 인재들이 흘러가는 곳에 큰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인재들이 빠져나간 곳은 급격하게 망가진다. 스마트 TV가 어떻고, 4G 롱텀에볼루션(LTE)이 어떻고, 아이패드3가 어떻다는 것을 예측할 때일수록 기술과 특허가 아닌 그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에 대한 투자와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시점이다.

애플의 성공은 스티브 잡스라는 큰 천재가 있고, 그 아래 조금씩 모자란 출중한 천재들이 모두 모여 있어서 가능했다. 이러한 인재들을 데려올 수 없다면 갖고 있는 천재들이라도 잃지 않도록 해야 하고 동시에 이 지역 천재들의 움직임에 더 큰 정보망을 확보해 앞을 예측해야 한다. 역전의 기회는 반드시 돌아온다. 반복되는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기술 때문인 듯싶어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사람인 것이다.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베이에이리어K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