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왕’ 차용규 증폭되는 의혹, 왜?

재산 형성 ‘미스터리’… 국세청 세무조사
‘구리왕’ 차용규 씨가 국세청의 해외 탈세 조사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8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의 부자 1000명’에 13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해 754위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던 차 씨는 지금까지도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차 씨가 어떻게 조 단위의 돈을 벌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세금 추징 규모는 약 6000억 원대로 예상된다. ‘선박왕’으로 알려진 권혁 회장의 사례와 닮은 점이 많다.

1956년생인 차 씨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독일 주재원이던 차 씨는 1995년 카자흐스탄 알마티 지사로 옮기며 일생일대의 전환기를 맞았다.

쓰러져 가던 카자흐스탄 국영 구리 생산 업체인 카작무스의 위탁 생산을 맡은 삼성물산의 직원으로 그는 불과 5년 만에 이 회사를 자산 가치 30억 달러, 세계 9위 업체로 올려놓았다.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2000년 카작무스의 공동대표에 올랐다. 대기업 임원급이면 해외 합작법인의 공동대표를 맡는 경우가 많다.

국세청, 차 씨의 국내 활동에 주목

삼성물산이 2004년 카작무스 위탁 경영에서 손을 떼기 직전 차 씨는 삼성물산 카작무스사업단 상무보 자리에서 퇴사하고 현지 유력 인사와 손잡고 이 회사 지분을 대부분 사들였다. 당시 카작무스를 산 페이퍼컴퍼니는 페리 파트너스로 알려졌다.

1년 뒤인 2005년 카작무스는 런던 증시에 상장했고 글로벌 구리 시장의 호황으로 주가가 급등했다. 이 과정에서 차 씨는 1조 원대의 매각 차익을 남겼다. 이듬해인 2006년과 2007년 나머지 지분마저 모두 매각했다. 2008년 포브스는 ‘세계의 부자 1000명’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세계적인 부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차 씨가 의혹을 받는 이유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그가 어떻게 카작무스를 인수할 자금을 마련했는지다.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1조 원이 넘는 차익을 거둘 정도라면 그의 투자금도 적은 금액은 아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불과 1년 뒤 런던 증시에 상장할 회사를 삼성물산이 매각한 것도 의문을 낳는다. 1조 원이 넘는 이익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차 씨의 재산 형성 과정에 물음표를 찍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당시 수많은 언론사가 차 씨를 취재하려고 시도했지만 인터뷰가 성사되지 않았다.

차 씨가 다시 관심의 도마 위에 오르자 삼성물산은 보도 자료를 통해 “페리파트너스 대표가 언제 차 씨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지분 매각 당시 카작무스는 차 씨와는 무관한 회사였다. 상장 계획 역시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분 매각 당시에는 차 씨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차 씨가 국내에 부동산 등 재산이 있고 가족과 함께 한국에 드나들며 살았다는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 씨의 서울 거주지는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알려져 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차 씨는 아들과 함께 홍콩에서 살고 있고 딸은 영국 유학 중이다. 부인은 서울에서 자주 머무르고 있다는 점도 국세청이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에 따르면 차 씨는 조세 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내에 호텔·백화점·상가 등을 사들이며 수천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