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닮은 꼴’ 3대의 미스터리
50년이 넘게 부부로 살아오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갖는 느낌은 ‘너희 할머니께서 그렇게 일찍이 세상을 뜨지만 않으셨어도’이다. 친할머니(아버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여섯 살, 작은아버지가 세 살 때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이 때문에 장손인 나는 그분의 원초적 흔적이나 기억이 아예 없다. 얼마 뒤 새할머니가 들어오셨고 결혼 후 아버지는 분가하신 바, 장손으로서 내가 자연스럽고 당연히 받아야 할, 특히 생 조모(부)님의 사랑과 보살핌은 그림의 떡이 되었다. 세칭 배다른(이복) 막내 삼촌이 나보다 한 살 위였으니….

어릴 적 내게 아버지는 ‘부재(不在)의 존재’였다. 거의 대부분의 친구 아버지들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부자가 함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전국 농협을 근무지로 다니신 까닭에 어느 땐 1~2개월에 한 번씩 뵌 때도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근무지 어디론가 떠나시기 전날 밤, 온 식구들이 내일의 이별을 앞두고 같이 크게 울었던 기억이 선하다.

어머니가 얘기하는 아버지 스타일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버리지 않고 모으기’다. 그러한 까닭에 밖에만 나갔다 오면 손에 뭐든지, 심지어 나무꼬챙이라도 집어 들고 오신다. 근면 성실에다 절약을 지나치게 때로는 무리하게 적용하시는 것 이상의 그 어떤 스타일이라, 잘 버리고 집안을 깨끗이 하려는 어머니와 마찰이 잦은 것은 자명하다.

아버지 스타일의 참으로 복잡한 유전적 메커니즘을 전제하는 가운데, 이 ‘버리지 못하는 증후군’이 그대로 내게 이어졌다는 것을 자백한다. 집에서는 아내 때문에 어느 정도 자제하고 억제하지만 연구실의 상태는 가히 기절초풍할 지경이다.

친한 동료나 잦은 방문객에겐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낯선 이들의 반응은 가히 충격적이다. 책이나 자료는 당연하고 주변의 자질구레한 물품과 소품들, 즉 남들은 거의 버리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주워 오고 모은 채 그대로 지내고 있으니…. 변명 같은 설명으로 정크 아트(Junk Art)를 표명하지만, 어느 땐 내가 봐도 심하다고 느낀다.

“아빠, 이거 잘 가지고 있어!” 언젠가 늦둥이 작은 아들이 내게 뭔가를 집어 주면서 당부했다. 뭐 거창한 것인가 했더니 말라비틀어진 밥풀떼기였다. 그 순간 나는 아들에게서 2대 이상의 ‘오래된 미래’를 보았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늦둥이의 귀가 후 가방을 보면 가관이다.

버리는 음료 병이나 색종이 버려진 것 등의 허접한 쓰레기를 죄다 넣어가지고 와서는 절대로 버리지 말고 잘 보관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둘째의 이 ‘버리지 않고 무조건 모으기’를 자제시키고 막아보려는 엄마와 형의 눈을 피해 이해하고 수용해 주는 동지자적 입장의 이 아빠에게 이제는 은밀히 소통하고 협조를 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빠, 월요일 갔다가 월요일 와! 화요일 갔다가 화요일 오고.” 이는 학기 중 매주 월요일에 지방 소재 대학에 근무하러 갔다가 목요일에 집에 오는 주중 부재(不在) 아빠를 두고 늦둥이가 원망조로 하는 주문이다.

‘서준아, 아빠 학교를 집 가까운 데로 좀 옮겨줄래!’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다만 큰애 스타일은 동생이나 나와 다소 다르다. 물론 같은 점도 있겠지만. ‘아버지, 묻고 싶습니다. 먼저 당신이 그리고 제가 이제는 늦둥이, 이렇게 3대가 무엇 때문에 그리도 버리지 못하고 무조건 채우려고 할까요. 무엇이 그리도 비워져 허전하기에…. 아무리 그래도 닮은 꼴, 이 미스터리 3대의 원조,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정채기 강원관광대 교수·한국남성학연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