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들의 역습

인텔을 쫓는 삼성, 삼성을 쫓는 엘피다, 그리고 삼성을 견제하는 인텔. 물고 물리는 반도체 패권 시장이 점점 가열되고 있다. 우선 D램 시장. 아이서플라이는 5개 업체의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사실상 삼성전자·하이닉스·엘피다·마이크론·난야 등 5개사가 D램 생산 업체의 전부”라고 얘기하고 있다.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합한 세계 시장점유율은 59%다. 3위인 엘피다의 점유율은 16.2%에 그친다.

1990년대 중반까지 세계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본 업체들은 도시바가 2001년 대규모 적자로 D램 사업을 접었고, 1999년 NEC와 히타치의 D램 부문이 엘피다로 통합됐다. 대만의 파워칩·렉스칩·프로모스 등 3개사는 2009년 엘피다와의 통합 논의가 나왔고 현재 합병이 가시권에 들었다.
엘피다는 뒤서, 인텔은 측면서 ‘협공’
니혼게이자이신문은 5월 2일 엘피다가 세계 최초로 25나노미터급 D램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D램 시장 주도권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로 넘어온 2000년 이후 나노 공정 개발에서 외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추월하기는 12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채택하고 있는 D램 최신 공정은 30나노급이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엘피다의 25나노급 D램 양산 시점은 올해 7월이다. 히로시마 공장에서 PC·스마트폰용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25나노 공정을 이용한 2기가비트(Gb) D램을 양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기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은 5월 4일 서초동 사옥에서 열린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7월에 양산에 들어가는지 기다려 보자”며 “엘피다의 주력은 50나노급이고 삼성전자는 40나노, 35나노 제품이 주력이다.

엘피다가 2009년 40나노 제품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작년에 30나노 개발을 발표하며 곧바로 출하한다고 했는데, 아직 없다”고 얘기했다.

장치·재료 기술 뛰어난 일본 ‘위협적’

최근 발간된 ‘일본 반도체 패전’에서 저자 유노가미 다카시(나가오카 기술과학대 객원교수)는 책에서 “일본 반도체 산업의 기술력 및 그 개발력은 높다. 그러나 기술력 과잉이며 높은 기술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도체 디바이스는 과잉 성능, 과잉 품질이 되고 있다.

반면 한국이나 대만 등 여러 나라는 고성능·고품질 반도체 디바이스를 만드는 기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비용으로 반도체 디바이스를 생산하는 기술력은 높다”고 일본 반도체 산업의 현실을 꼬집었다.

일본은 1980년대 미국 대형 컴퓨터 회사들이 요구하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25년 내구성을 가진 고품질 D램을 만들어 보이면서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다. 당시 일본 업체들의 점유율은 80%에 이르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PC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PC는 6~7년 정도의 내구성만 만족시켜도 되는데, 일본은 과도한 기술력으로 여전히 25년 내구성의 제품을 만드느라 가격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엘피다의 전신인 히타치제작소에서 16년 간 근무한 저자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 기술은 ①요소 기술(기본 단위 기술) ②인티그레이션(공정 플로 구축 기술) ③양산 기술(공정 플로에 따라 양산하는 기술)로 나뉘는데, 일본은 요소 기술은 강하지만 나머지 공정에서 코스트를 줄이는 기술은 한국에 뒤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엘피다가 20나노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양산까지 이어져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과는 별개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업체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본은 비용을 낮추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지 원천 기술력은 한국보다 높다. 반도체 장치산업의 세계 점유율은 30%, 반도체 재료 부문은 50%에 가깝다.

한편 미국의 인텔은 5월 5일 차세대 반도체에 적용할 3차원 구조의 새로운 트랜지스터 설계 기술인 ‘트라이게이트(tri-gate)’를 공개했다. 기존 트랜지스터는 실리콘 기판 위에 인쇄하듯 만드는 2차원 구조였지만 인텔의 트라이게이트는 기판 위에 정육면체 형태로 세우는 3차원 입체 구조를 갖췄다.

인텔 측은 새 트랜지스터를 이용하면 기존 칩 제조 방식에 비해 전력소비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고 반도체 회로 간격을 더 좁힐 수 있어 집적도가 높은 대용량 칩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엘피다는 뒤서, 인텔은 측면서 ‘협공’
인텔, 3D방식 AP 2013년 선보여

인텔이 새로운 방식의 반도체를 개발한 것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보급으로 경쟁자들이 그 과실을 독차지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인텔 CPU (central processing unit)는 전력이 많이 소비되는 구조로 모바일 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반면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와 안드로이드 진영의 스마트폰은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이 설계를 맡고 삼성전자·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이 생산을 맡은 AP(application processor)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애플에 들어가는 AP는 삼성전자가 전량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PC 시대의 강자 인텔이 모바일 시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텔은 내년부터 새로운 방식을 적용한 CPU를 PC용·서버용부터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어 2013년부터는 모바일용 AP에 적용해 모바일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현재 구체적으로 OS(system operator: 아이폰의 iOS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체제를 일컬음) 업체와의 논의가 진행된 것은 아니라고 인텔 측은 밝히고 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