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9개 상장사 완전 분석

“당신의 연봉은 얼마입니까.” 이 질문에 어떤 이는 스스로 박탈감을 느끼며 부풀려 답하기도, 어떤 이는 우월감에 으스대며 답하기도 할 것이다. 연봉은 직장인들에게 자신의 브랜드이자 가치로 통한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자신의 연봉이 업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자신과 비슷한 위치의 경쟁사 회사원이 얼마를 받는지, 그리고 연봉을 올리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감하거나 소극적이다. 한경비즈니스는 유가증권 상장사 669개사의 평균 연봉, 임원 연봉, 근속 연수 등을 조사, 분석해 공개한다.
우리 회사 평균 연봉은?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던 박모(34) 씨는 누구나 이름을 알만한 기업에 다닌다고 주위에서 부러운 시선을 받지만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있다. 기업 브랜드에 비해 연봉이 형편없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 모기업 브랜드가 유명한 것이지 계열사의 규모는 중소기업이라고 볼 수 있고 대우도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다. 명문대를 나와 최고 스펙을 보유한 박 씨는 저평가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커리어 성장 가능성도 불투명했다. 직속 상사는 아직 젊고 정년퇴직할 때까지 어떻게든 이 회사에 붙어 있을 작정이어서 그의 그늘 아래서 박 씨가 승진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직할까, 창업할까 약 1년간을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리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중소 무역회사지만 세계 각국에 지사망이 잘 뻗어 있고 매출도 썩 괜찮은 곳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연봉은 전에 비해 600만 원 정도 늘어나 100% 기대에 미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도 흡족하다. 박 씨는 직장 동료들에게 ‘쿨하게’ 인사를 건네고 부푼 마음으로 새 직장으로 떠났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누구는 얼마를 받는다더라’라는 얘기는 어떻든 간에 마음에 거슬린다. ‘연봉’은 모든 직장인의 주요 관심사이지만 가까운 지인과도 터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내용이다.

각 업종별, 각 회사 간 그리고 직급에 따라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직종에서 어떤 회사의 연봉이 많은지 조사하는 것이 급선무다.

한경비즈니스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669개 기업이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통해 각 기업들의 1인당 평균 연봉 정보를 수집했다. 직원 평균 연봉은 임원을 제외한 부장급 이하 평직원의 평균 연봉을 뜻한다.

사업보고서상에서 연간 급여 총액을 총직원 수로 나눈 값이다. 각 기업별로 평균 연봉은 최고 9800만 원에서 1190만 원까지 폭넓게 나타났다. 업종별로 구분하면 금융, 지주사의 평균 연봉 수준이 높게 나타났으며 제약, 제지, 섬유·패션, 식음료·담배 관련 기업이 평균 연봉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리고 1인당 임원 연봉은 최고 59억9000만 원에서 최저 2998만 원으로 집계됐다. 1인당 임원 연봉은 사외이사를 제외하고 회사의 대표이사·회장·오너 등 등기이사가 한 해 받는 연봉을 뜻한다. 임원의 연봉이라고 하면 대부분 억대 연봉을 떠올리지만 회사에 따라 대기업의 평직원 연봉에 미치지 못하는 곳도 상당수 있었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자 1429만5000명 가운데 직장인들에게 ‘꿈의 연봉’으로 불리는 1억 원 이상의 연봉자는 19만7000명(2009년 기준)으로 직장인 500명 가운데 7명꼴이었다.

조직 문화 분석가 강혜목 씨는 적게는 1억 원에서 많게는 3억 원까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을 ‘슈퍼 월급쟁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어느 분야에서든지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5% 정도의 비율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직이나 전직 또는 개인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억대 연봉자가 된 일반 직장인이 많다”며 “누구나 억대 연봉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직장에 근무하는 기간이 짧아지고 연봉을 높이려는 이들이 크게 늘면서 빈번한 이직이 과거에 비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직이나 스카우트를 통해 억대 연봉자 명단에 조금씩 다가설 수 있기 때문에 최근 ‘업(業)테크’란 말도 등장했다. 메뚜기처럼 직장을 옮겨 다니며 몸값을 높여 재산을 증식하는 방법을 뜻한다. 커리어 컨설팅 업체에 따르면 심한 경우 1년 단위로 이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직 시장은 크게 연령별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30대 중·후반 대리·과장급 경력자를 뽑는 수요와 40대 중반 임원급 수요가 다수를 차지한다. 대리·과장 실무자급들은 한창 열정적으로 일하는 나이인 30대에 보다 나은 연봉과 근무 조건을 찾는 이들이 기업의 수요에 응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이때 일반적으로 연봉의 10% 수준을 높여 이직한다고 한다.

반면 임원급 수요는 기존에는 50대가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연령대가 낮아져 40대 중·후반 이직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임원급 시장에서는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억대 연봉에 돌입하는 것이 흔하지만 반대로 연봉을 낮추며 이직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대기업에서 승진의 한계에 다다랐고 명예퇴직의 압박도 다가오는 40대 직장인들이 연봉이 좀 줄어들더라도 안정적이고 더 많은 권한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으로 이직하는 케이스다.

연봉을 높이기 위해 꼭 이직을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속한 조직 내에서 성과를 내고 이를 인정받아 연봉을 높일 수도 있다. 강 씨는 슈퍼 월급쟁이 50명을 인터뷰한 결과 그들에게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자신의 역량 이상의 일을 해내고 있었고 종종 다른 동료 직원들의 일까지 떠안으며 책임감을 발휘해 조직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커리어케어의 강연희 컨설턴트는 “냉혹한 자본주의 인재 시장에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면 객관적인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재를 원하는 기업 측면에서 대상의 다양한 경력과 성과 중 어떤 부분에 무게를 둘지 잘 모르기 때문에 현재 직장에서 역량을 키워 성과를 냈다면 훗날에 대비해 자세하게 자료로 남겨 놓으라고 강조했다.

취재=이진원·권오준·우종국 기자 │ 전문가 기고=강혜목 조직문화 분석가 │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