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대지진이 일어나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행방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1만7026명(4월 8일 기준)이다. 무너져 내린 건물 더미를 보면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길은 한없이 멀고 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사고는 1, 2호기의 터빈 건물에서 나온 방사성물질이 대기를 오염시키고, 토양으로 흘러들고 바다로 유출시켜 지역 주민이나 이웃 국가들에 큰 불안을 주고 있다.

과거 400년 동안 네 번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덮친 태평양 연안의 지진지대에 왜 원전 시설을 설치했을까. 이들이 상정한 쓰나미의 높이를 왜 5.7m로 설정했는가. 또한 지진과 쓰나미가 동시에 일어날 것을 왜 전제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몇 가지 ‘왜’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안전 기준의 과신과 리스크의 경시라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이라는 새로운 리스크의 출현을 독일의 사회학자 올리히 벡은 ‘위험사회’라고 했다. 즉, 현대는 장래의 가능성과 위험이 공존하는 사회, 부의 배분과 같이 리스크도 생산되고 배분되는 사회라는 의미다. 이와 같이 위험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원자력발전의 은혜와 리스크, 양쪽을 모두 봐야 한다. 그러면 이 리스크는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원자력 리스크는 전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원전 사고 등 글로벌한 리스크에서는 누구라도 절대 피해 갈 수 없다. 국경선이나 방어선과 같은 벽을 만들어도 방사성물질의 오염 확대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험사회에서는 방사능과 같이 리스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으므로 무엇이 리스크인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가진 전문가(또는 조직)에 권한이 집중하게 된다. 이것만으로 이들(전문가나 조직)에 높은 윤리성과 공정성이 요구된다.

이번 사고는 작업원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위험 임무가 맡겨져 피폭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이라는 조직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인류가 완전하게 제어할 수 없는 핵융합 등의 원자력 리스크는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로 움직여야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즉,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일어난다(머피의 법칙)는 기준에서 액시던트 매니지먼트(accident management : 노심(爐心) 냉각이나 반응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의 사고 확대 방지책 및 영향 완화책)를 하는 것이다. 정부나 도쿄전력은 지진·쓰나미·원전 사고의 긴급성에 대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재해가 대규모로 동시에 발생하는 사태를 상정했을까.

리스크의 어원은 라틴어로 거슬러 올라가면 ‘절벽들 중에서 조정하다(to navigate among cliffs)’는 의미를 갖는다. 리스크는 위험과 장해를 인식한 후에 편익을 얻기 위한 행위를 의미한다.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원자력발전이 가져오는 풍요로움을 얻는 한편, 원전 사고가 주는 막대한 피해를 정확히 봐야 한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그 중요함을 전하고 있다.
[경제산책] 일본 대재해에서 얻어야 할 교훈
테츠카 슈이치(手塚修一)

1950년생. 호세이대 대학원
이노베이션 매니지먼트 연구과 MBA. 호세이대 대학원 정책창조연구과 겸임 강사. 호세이대 CSR 연구소 객원 연구원. 호세이대 지역연구센터 어소시에이트. 휴가닉컨설팅재팬 대표 컨설턴트(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