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실패 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뉴타운이 10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 데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배경에 깔려 있다. 뉴타운이 본격적으로 지정된 2002~2007년만 하더라도 땅값과 분양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벌이던 시절이었다.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부동산 경기는 급격한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빚을 얻어 집을 산 사람들은 시세 차익은커녕 원리금 갚기에도 버거운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다.
사업만 진행되면 정착해서 잘살 수 있다는 허상이 깨진 것도 뉴타운이 실패하게 된 원인 중 하나다. 애초 원주민들은 수익 기대와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의 환상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살던 곳에서 밀려나 외곽으로 쫓겨 가는 것이 뉴타운의 현실이었다. 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이른바 뉴타운 학습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뜻이다.
주거 환경 정비라는 본래 목표 대신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정책으로 변질된 것도 뉴타운 실패를 불러왔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시절에 지정된 26개의 뉴타운 지구가 이후 대선에서 결정적인 당선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공약이 당선 보증수표로 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책 추진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한나라당 의원 중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던 의원은 18명에 달했다.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어서 중진 의원 5명이 뉴타운 공약을 꺼내 낙선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가히 뉴타운 선거라고 해도 무방한 18대 총선 덕에 당시 당선된 국회의원들을 비꼬는 ‘타운돌이’란 별명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이익은커녕 외곽으로 밀려날 판
경기도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6년 경기도지사로 뽑힌 김문수 지사의 3대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가 뉴타운이었다. 김 지사는 취임 직후 뉴타운 기획단을 설치하고 12개 지구의 지구 지정 계획을 밝혔다.
경실련 경기도협의회 박완기 사무처장은 “경기도는 시범 사업도 없이 여의도 면적의 30배가 넘는 면적에 30여 만 가구가 들어설 수 있는 23개 뉴타운을 동시다발적으로 지정했다”고 지적했다. 때마침 주택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떨어졌고 전국 최대 규모로 추진되는 도내 신도시, 보금자리주택 지구 개발 계획과 맞물려 개발의 과포화 상태를 맞았다는 것이다.
교통·환경영향평가, 인근 지역 및 기반 시설과의 조화, 일자리·보육 등 사회적 네트워크 등 도심 재개발 사업에 고려할 사항은 수없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의 뉴타운은 세부적인 계획과 평가보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마구잡이식 지정이 이어졌다.
뉴타운 및 도시 재개발의 근거인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이하 도정법)’을 대신할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하 도촉법)’이 제정된 것도 난개발을 불러온 주범 가운데 하나다.
지난 2005년 12월에 제정돼 이듬해부터 시행된 도촉법은 사실상 뉴타운 사업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특별법 성격이 짙다. 지구 내 건물의 노후도나 호수 밀도 등이 맞지 않아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도촉법 시행 후 도정법상에선 자격 요건을 맞추지 못한 지역들도 대거 뉴타운 지구로 지정됐다.
또 도정법은 주민 전체 2분의 1 이상의 동의와 조합원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사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도촉법은 주민들의 의견 없이 시장이나 구청장의 의견으로 사업이 가능해졌다. 정치 논리가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커진 셈이다.
개발 이익, 큰 평수와 넓은 집만을 바라는 시민 의식도 문제다. 무조건 고급 아파트가 아니라 자신의 소득 분위에 맞는 중소형 아파트도 좋다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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