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마케팅, 그 진화의 끝은?

이제 ‘귀족 마케팅’이라는 단어도 그 수위를 넘어 소비자를 왕처럼 모시는 ‘왕 마케팅’이라고 불릴 날이 그리 머지않은 듯하다. 왕 부럽지 않은 요즘 귀족 소비자들은 이제 웬만해서는 쉽게 감동 받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귀족 마케팅의 핵심은 고객 감동을 뛰어넘어 ‘충격’에 가깝다.

또 그것이 단순히 한 기업의 브랜드에서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마케팅의 탈을 쓴 일종의 ‘호객 행위’일지라도 어느새 그것을 뛰어넘어 문화적으로도 한발 앞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까지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부자의 지갑을 열어라] 자연스럽고 럭셔리하게…1%를 위한 ‘쇼’
상류사회 문화의 핵심을 파악하라

지난해 말 열린 아우디 코리아의 신차 ‘뉴 아우디 A8’ 발표 행사는 바로 그 좋은 예다. 서울올림픽공원 내 평화의 광장에 이 행사만을 위해 평화의 문이 바라다보일 수 있도록 2층으로 된 건축물이 영화 세트장처럼 몇 주에 걸쳐 ‘특별히’ 지어졌다.

호텔의 연회장은 이제 진부한 행사장이라고 여기는 ‘까다로운’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탁월한 공간 연출이다. 게다가 이날 VVIP 고객들만을 위해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세계적인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가 프랑스에서 직접 한국으로 날아와 행사장 내의 주방을 직접 운영하며 특별한 디너 코스 메뉴를 선보이는 것이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후문이지만 이 거장 셰프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100명에 달하는 주방 스태프들이 동원됐으며 주방의 사이즈가 전체 행사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음식이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류사회 문화의 핵심은 바로 먹는 것’이라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우디 코리아는 이미 3년 전부터 매년 1년에 한 달간 한 번씩 서울 시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핫한 5~6개 레스토랑에서 아우디 메뉴를 제안하는 프로모션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자동차를 파는 회사에서 뜬금없이 왜 식당을 공략하고 관리할까. 바로 자신들이 팔 자동차를 탈 고객들의 동선에 미리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와 존재를 자연스럽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이날 행사에서는 디너에 앞서 당연히 신차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자동차 신차 발표와 달리 그렇고 그런 음악 공연 대신 ‘카 발레’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독일에서 날아온 전문 드라이버들이 자동차로 춤을 추듯 운전하는 공연으로 초대된 고객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행사 막바지에는 미국에서 초청된 유명 아티스트 브라이언 올슨(Brian Olsen)이 준비된 음악에 맞춰 마릴린 먼로 초상화와 뉴 A8 자동차를 초대된 고객들 앞에서 직접 그려 보이는 페인팅 아트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그 자리에서 직접 그린 두 개의 작품을 즉석 경매해 수익 전액을 굿네이버스에 기부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훈훈하게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자동차 공연, 성대한 음식에 이어 경매를 통한 기부까지,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자동차 이미지를 고객에게 강요하는 대신 자연스럽고도 럭셔리하게 전달하는 최고급 고단수 마케팅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업계에 이어 유통에서도 최근 몇 년 새 새바람이 불고 있다. 백화점 업계는 발레파킹 서비스, 전용 라운지 운영, 골프 및 문화 혜택 등 ‘뻔한’ 서비스에서 탈피해 보다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VVIP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금 명품관 리뉴얼 경쟁으로 한국의 내로라하는 백화점들은 최상위 고객 유치에 후끈 달라올랐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은 VVIP 최고 상위 레벨 20~30명을 초대해 아직 국내에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리미티드 에디션을 제안하는 ‘럭셔리 쇼핑 투어’ 행사를 열고 현대백화점도 VVIP 초대 행사에 예술 작품 등 가치가 높은 상품을 확대하는 등 VVIP들이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차별화된 문화 서비스로 감성 건드려

그중 신세계백화점은 백화점과 갤러리의 경계를 허물고 패션과 미술이 공존하는 문화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함으로써 국내 아트 마케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신세계의 아트 마케팅은 2005년을 기점으로 갤러리를 포함한 백화점 쇼핑 공간과 문화 홀 등 백화점 전체를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해외 유명 작품을 소개하며 ‘소더비 프리뷰 전(2005)’, ‘스페인 세기의 거장 전(2006)’, ‘크리스티 프리뷰 전(2008)’ 등 국제적인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큰 주목을 받았으며 2007년 2월 신세계 본점 본관 오픈 기념으로 세계적인 작가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의 VB60 퍼포먼스를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신세계백화점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인 본관 6층 트리니티(VVIP 중 최상위 999명을 지칭) 가든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전위주의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 영국의 헨리 무어, 스페인의 호안 미로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도심 속 쉼터와 같은 트리니티 가든의 열린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며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올 4월에 미국 아티스트 제프 쿤스(Jeff Koons)의 작품 중 그 유명한 ‘세이크리드 하트(sacred heart)’가 새롭게 추가로 설치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작품만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5월에 작가가 직접 내한하는 일정을 잡아 놓고 있다는 후문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작가와 고객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백화점 자체를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문화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아트로 강화된 기업의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돈으로 살 수 없는 만족감을 고객에게 주기 위한 것이다. 또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가방이나 머그잔 등 각종 프로모션 아이템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이제 백화점이 아니라 쇼핑을 할 수 있는 뮤지엄인 셈이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문화 여가 지향적으로 변함에 따라 스스로를 고급화하려는 본능을 지니게 됐고 문화로 강화된 기업의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돈으로 살 수 없는 만족감을 얻게 되는 세상이 됐다.

차별화된 직간접적인 문화 경험을 통해 머리가 아닌 감성을 자극해 고객과의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브랜드들과 기업의 귀족적 노력은 이제 소비자들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 것이다.

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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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금융도 귀족 마케팅

서비스 특화로 VVIP 모시기 경쟁

[부자의 지갑을 열어라] 자연스럽고 럭셔리하게…1%를 위한 ‘쇼’
국내 은행 및 증권사의 VVIP 모시기 경쟁도 날로 뜨겁기만 하다. 국내 고액 자산가들의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 앞 다퉈 PB(Private Banking)센터를 확대하거나 새로 개설하는 추세다.

서울에만 100개의 PB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하나은행은 금융 관련 세미나 개최, 각종 문화 공연 초대, 갤러리 투어, 와인 및 미술 아카데미 진행, VIP 프로암대회 초청, 프로 골퍼에게 받는 원포인트 레슨에서부터 장례 지원 서비스, 자녀 결혼 시 웨딩카 지원 서비스, 미혼 남녀 자녀들의 만남 서비스 등 VIP와 부의 세습 대상인 자녀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증권사들이 VVIP를 유치하기 위해 특화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SK증권·한국투자증권·우리투자증권 등이 PB센터를 새로 개설했으며 이미 운영 중인 증권사들도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지난 4월 초 VVIP 멤버십 서비스인 ‘프리미어 블루 멤버스’를 오픈한 우리투자증권은 금융 컨설팅은 물론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전국 100여 개의 제휴처를 엄선해 우대 혜택을 제공한다.

증권사 최초로 특급 호텔에서 제공하는 컨시어지 서비스를 접목해 일대일 맞춤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 며칠 앞서 강남파이낸스센터에 ‘브이 프리빌리지(V Privilege)’를 오픈한 한국투자증권은 센터 내부를 갤러리처럼 꾸며 놓고 소수 고객만을 위한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지난 3월 골드센터 강남점 내 VIP 고객을 위한 골드룸을 리모델링한 동양종합금융증권도 최상위 등급인 플래티넘 고객에게 금융 관련 서비스는 물론 고객 초청 문화 행사, 명문 골프장 부킹 및 프로골퍼 동반 라운딩 서비스, 여행 서비스 등 고객 맞춤형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