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

흔히 유명인들과 관련한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면 이를 ‘스캔들(scandal)’이라고 한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을 뜻한다. 정부나 기타 정치권력과 관련된 대형 비리 의혹 사건은 게이트(gate)라고 한다.

1972년 6월 발생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에서 유래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반을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투시켜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그런데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워터게이트는 워터게이트 그 자체가 하나의 스캔들이었다는 생각을 주입하는데 성공했다.” 혹자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통령을 사임하게 한 거대 정치 스캔들이라는 것이 이미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런데 스캔들로 주입하는데 성공했다는 말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워터게이트는 스캔들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말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감추려고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마치 횡설수설하는 것 같다.

보드리야르는 역설적으로 “세상은 거대한 모순 덩어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정치적 부패 사건은 비단 닉슨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닉슨이 행한 도청은 이미 미국의 정치 세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대선 기간에 공공연히 상대 진영을 도청했다.

그런데 닉슨 대통령의 도청이 비로소 정치적 사건으로 언론에 의해 공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닉슨의 도청 행위는 닉슨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인들이 즐겨 쓰던 수법이었다. 선거 캠페인에 공공연하게 활용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닉슨만큼 정치적 사건으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리스트’에 오르지 않으면 깨끗할까
신정아씨가 22일 롯데호텔에서 책  '4001 사건 전후' 출판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322..
신정아씨가 22일 롯데호텔에서 책 '4001 사건 전후' 출판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322..
보드리야르는 바로 이러한 역설을 지적한 것이다. 워터게이트는 닉슨을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만들게 됨으로써 닉슨 이외의 정치인들은 부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해 주게 되는 것이다.

닉슨 이외의 정치인과 정치 세력에는 선량하다는 일종의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워터게이트는 여전히 정치 세계가 부패하고 부도덕한데도 닉슨만 부도덕하고 부패한 정치인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워터게이트가 미국의 정치인과 정치 세계가 부도덕하고 부패했다는 것을 은폐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워터게이트는 워터게이트 그 자체가 하나의 스캔들이었다는 생각을 주입하는데 성공했다”라는 것이다. 닉슨 이외의 부패한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의 스캔들을 감추고 은폐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게이트’가 있었고 수많은 정치인들이 연루됐다. 게이트의 리스트에 포함된 정치인 가운데 극히 소수만이 처벌을 받았다. 이때 검은돈을 받았지만 운 좋게도 리스트에서 빠져나온 정치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게이트가 종결됨으로써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거나 올랐어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면 그 정치인은 깨끗한 정치인으로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익집단과 정치인들이 검은돈을 받았지만 수사가 이뤄지지 않거나 혹은 은폐해 ‘게이트’가 되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치권력 혹은 정치인들은 예외가 있을 뿐 대부분 부패하다. 정부나 정치권력이 괴물 같고 무원칙한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는 닉슨 행정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워터게이트는 ‘도덕과 정치적 원칙’을 되살리려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스캔들이라고 보드리야르는 비판한다.

아마도 도청의 관행을 공공연한 비밀로 너무 묵인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도덕의 붕괴, 정치 질서의 붕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닉슨의 도청 사건은 바로 그 도청이 난무하는 정치 질서의 임계점에서 발생했고 시기적으로 운이 나빠 걸려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치적 질서 회복을 위해 ‘본보기’로 당한 것이라는 게 보드리야르의 분석이다.

또한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비유를 놀이동산인 디즈니랜드로 설명한다. “디즈니랜드는 현실의 나라, 현실의 미국의 모든 것이 실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디즈니랜드에는 호들갑스럽고 유치하고 유아적인 어리석음이 지배한다. 괴짜·광기·비합리성·유혹·매직(마법)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성이다. 그런데 사실은 디즈니랜드 바깥의 영역에서도 디즈니랜드와 똑같은 일들이 도처에서 재현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디즈니랜드가 존재함으로써 그 영역 안에서만 비합리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디즈니랜드 바깥에서는 합리성이 지배한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는 합리적인 통치 권력이 지배하고 있다는 신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즉 디즈니랜드는 놀이동산과 같은 유아적 어리석음의 영역 바깥에는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해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때 디즈니랜드는 현실이 허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재생해 주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며 보드리야르는 이를 ‘억제 기계’라고 부른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디즈니랜드와 같이 억제 기계인 것이다.

워터게이트는 정치집단이 모두 부패집단으로 낙인찍히면 사회적 신뢰를 상실하고 결국 사회 붕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스캔들’이었다는 것이다. 사회가 비합리적이고 무원칙하다는 것을 저지하고 구분하기 위해 디즈니랜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도덕이 극에 달할 때 스캔들이 터진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마치 놀이기구를 탔을 때처럼 유치하고 유아적인 어리석음들에 놀라곤 한다. 세상을 뒤숭숭하게 만든 학력 위조나 유명인들의 스캔들은 비단 스캔들로만 엿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이웃들 혹은 친구들을 통해 때때로 목격되고 전해 듣는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사회를 뒤흔든 스캔들보다 더한 스캔들도 우리 주위에서 들을 수 있다. “두 집 살림을 하는 한 유부남은 부동산을 팔아 비용을 마련했는데 헐값에 팔았대.” “어느 유부녀는 버젓이 두 집을 오가며 살림을 하고 있대.

어떻게 남편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어!” 이 같은 이야기에 사람들은 혀를 차기도 한다. 디즈니랜드와 같은 유치하고 퇴행적인 이야기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도처에서 나돈다. 이미 우리들 모두가 사회적 모순 혹은 스캔들의 공범이다.

수많은 우리 이웃의 결혼한 부부들조차 은밀하게 애인을 만들고 남편이 혹은 아내가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욕망의 판타지를 충족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사회적인 영향력의 차이만 다를 뿐이다.

개인들의 은밀한 관음증이나 스캔들은 다만 개인과 가족에게만 국한된다. 한 여성의 학력 위조나 스캔들은 그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 관음증의 대상도, 관심의 대상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스캔들 또는 게이트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시점은 워터게이트처럼 너무 공공연한 부도덕이 판칠 때 이를 경계하고 본보기를 보이면서 다시금 질서 회복을 필요로 하는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일 것이다.

어떤 상황의 임계점에 도달하면 일종의 ‘희생양’이 필요하게 된다. 군대에서 군기가 가장 해이해졌을 순간에 강력한 군기 세우기가 시작되는 것과 같다. 아마도 지금 우리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스캔들에 분노하는 것은 은밀한 스캔들이 너무 만연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드리야르 식으로 말한다면 워터게이트처럼 사회가 스캔들이 없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스캔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종이조차 아까울 정도의 책도 나름대로 사회적으로는 ‘기여’하는 것인가. 웃을 수밖에.
[최효찬의 문사철(文史哲) 콘서트] 스캔들은 부조리한 사회의 ‘자기 위안’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