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씨의 자전 에세이 ‘4001’이 과천 관가에서도 화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한 여인 사이에 벌어진 적나라한 사생활 얘기가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전직 고위 관료는 물론 지금도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인사들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내용에 대한 경제 부처 공무원들의 반응은 일반인들이 보는 관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내용의 신빙성을 떠나 일반인들이 신 씨의 에세이에서 주로 보게 되는 건 몸가짐과 언행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부끄러운 이면이다. 이에 비해 과천 공무원들은 신 씨의 상대방으로 책에 등장한 인물들에 대해 안타까운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공무원들이 가장 안타까움을 느끼는 인물은 그들의 선배이기도 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신 씨의 책에 변 전 실장이 언급된 것에 대해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변 전 실장은 2007년 신 씨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알려지면서 불명예스럽게 공직을 그만뒀고 신 씨의 동국대 교수 임명 과정과 관련, 뇌물수수죄로 기소돼 재판까지 받았다.

한동안 측근들에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던 변 전 실장은 최근 한 중소기업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해외를 드나들고 이런저런 모임에도 자주 참석하는 등 재기를 준비해 왔다. 일부에서는 그가 공직에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신 씨와의 스캔들이 다시 한 번 거론되면서 변 전 실장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됐다.

과거 변 전 실장을 따르던 후배 공무원들은 신 씨가 책을 발간한다는 소식을 미리 접하고 신 씨와 출판사를 찾아가 발간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신 씨가 돈을 벌기 위해 책을 내려는 것으로 파악하고 신 씨에게 ‘필요한 돈을 우리가 마련해 주겠다’는 회유책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과이익공유제 암초 만나
과천까지 튄 신정아 에세이 불똥
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위원장)에 대해서도 동정론이 나오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신 씨의 책에서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는 등 “(남녀 관계에) 도를 넘는 사람”으로 묘사됐다.

한 공무원은 “정 위원장이 일부 부적절한 행동을 한 건 사실인 것 같다”라면서도 “책에는 신 씨의 자의적인 해석이나 감정적인 부분이 많이 섞여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신 씨 책에 담긴 내용이 어느 정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으로 인해 누군가가 매도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정 위원장이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을 위한 정책으로 제안한 초과이익공유제도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게 됐다. 정 위원장은 지난 3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반성장과 중소기업의 경영 혁신’ 세미나에 참석, 특강을 할 계획이었지만 전날 저녁 갑자기 주최 측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신 씨의 책 내용이 알려진 직후였다. 이날 정 위원장은 청와대에서 열린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명예위원장 추대 행사에 추진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행사장을 찾은 기자들이 신 씨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최중경 장관이 초과이익공유제에 완강한 반대 의사를 밝혀 동반성장위원회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지식경제부는 개운하지는 않지만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물론 정 위원장의 거취와 상관없이 동반 성장을 위한 정책이 힘 있게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는 않다.

신 씨의 책을 낸 출판사 사월의책이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관련이 있는 곳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면서 정치권으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하지만 이 출판사 대표는 “이 전 지사 등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에 다녔을 뿐”이라며 친노 진영과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