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와 정치의 함수

정치의 계절이 무르익고 있다. 4월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 재·보선 선거가 맞물리면서 모처럼 정치에 장(場)이 서고 있다. 내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라는 큰 장터가 열린다.

정치를 하는 정당은 ‘표’를 먹고 산다. 표는 국민들에게서 나온다. 정치인들은 표가 어디서 나올지 기가 막히게 냄새를 맡는다. 벌써 민주당이 분당을 재·보선을 겨냥한 리모델링 활성화 방안을 놓고 공청회를 여는 등 야단법석이다.

민주당이 분당·산본·평촌 등 1기 신도시 5곳에서 아파트 재건축을 할 수 있는 건축 연한이 안 되자 대신 리모델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한방 먹은 셈이다.
8.31 부동산 대책’의 후속조치가 발표된 30일 서울 강남 개포주공 아파트.2006.3.30(도준석 pado@)
8.31 부동산 대책’의 후속조치가 발표된 30일 서울 강남 개포주공 아파트.2006.3.30(도준석 pado@)
재건축 사실상 중단…“표로 심판하겠다”

민주당이 리모델링을 앞세워 분당을 재·보선에서 승리한다면 여야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부동산과 관련된 공약을 마구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 대선 때 반값 아파트, 신혼부부 주택, 재건축을 통한 도심 주택 공급 등으로 ‘재미’를 좀 봤다. 물론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대부분 끝나버렸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6월 2일 치러진 제5대 지방 선거에서 이겼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패했다. 오 시장은 강남·서초·송파 등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강남 3구에서 ‘몰표’를 얻어 가까스로 당선됐다. 당시 그는 개표 막판 강남 3구에서 민주당 한명숙 후보보다 12만 표 정도 지지표를 더 얻어 판세를 뒤집었다.

그런 강남 3구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잔뜩 벼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 정부와 서울시의 부동산 정책 때문이다. 우선 강남의 최대 이슈인 재건축에 불만이 많다. 강남에는 은마아파트, 잠실5단지, 개포지구 등 재건축 추진 단지가 널려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최근 공동주택 재건축정책자문위원회를 열고 아파트의 재건축 허용 연한을 최장 40년으로 규정한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재건축 허용 연한을 최장 4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조례 개정안을 발의한데 따른 대응이다.

2003년 12월에 제정된 현행 도시정비조례는 1981년 이전에 준공된 아파트는 20년, 1982~ 1991년 준공된 아파트는 22~38년 등으로 기준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서울시의 조치로 서울 시내 아파트의 재건축은 ‘올 스톱’된 상태다. 강남에서는 더 이상 서울시에 기댈 게 없어졌다고 서울시를 성토하고 있다. 강남권 부동산 시장의 핵심인 개포지구의 지구단위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보류돼 향후 몇 년간 재건축이 불가능하게 됐다.

개포지구는 393만7263㎡ 규모로 34개 단지, 2만8704가구가 몰려 있다. 용적률, 소형 임대주택 비율 등에서 서울시와 주민 간 입장 차가 워낙 커 조합원들은 현 정부에서의 재건축을 포기했다. 은마아파트 잠실5단지 등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들도 비슷한 이유로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강남 3구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재건축 공약만 들고 나와도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녹물은 기본이며 툭하면 파이프가 터져 아랫집을 물바다로 만들고 겨울에는 전기 라디에이터나 전기난로로 추운 날을 보내야 하는 곳이 강남 재건축 아파트다.

이런 열악한 주거 환경을 외면하고 재건축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정부와 한나라당을 ‘두고 보자’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절대 우군이었던 강남에서 ‘몰표’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야당의 대응이 궁금해진다.

김문권 편집위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