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대출의 숨겨진 진실

가계 대출이 늘어나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막연하게 주택 담보대출이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카더라’ 수준의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일부 금융 전문가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 수준이 높은 것은 집을 사면서 돈을 많이 빌려 그런 것이고, 향후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는 하우스 푸어가 속출할 것이기 때문에 집값이 본격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연 그럴까. 가계 대출의 진실은 무엇이고,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알아보자.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0년 12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 대출 규모는 746조 원에 달한다. 그중에서 48% 정도인 358조 원이 은행 및 제2 금융권의 주택 담보대출이라고 한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금액인지 알아보자.

한국은행·금융감독원·통계청이 공동 조사한 ‘2010년 가계 금융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가구당 평균 4263만 원의 가계 부채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것은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가처분소득인 2912만 원과 비교할 때 1.5배 정도 되는 수준이다.

다시 말해 월급을 받아서 밥도 먹지 않고 옷도 사지 않고 1년 반을 모아야 겨우 갚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746조 원이라고 하는 대출 규모나 연평균 가처분소득의 1.5배에 달한다는 부채 규모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가계는 심각한 문제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수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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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당 평균 부채 4263만 원

우리나라 평균 가계 부채 4263만 원에는 금융 부채 2883만 원뿐만 아니라 임차 보증금 1380만 원이 포함돼 있다. 전세금 등 임차 보증금도 회계상으로는 부채로 잡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일반인의 통념상 부채라고 하는 것은 이자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금도 언젠가는 갚아야 하기 때문에 부채로 구분하는 것은 맞지만, 전세 수요는 언제나 있기 때문에 전세금 100%를 갚아야 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역전세난이 가끔 벌어져 집 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내줘야 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국민은행 통계가 시작된 1986년부터 전세 계약 갱신 때 2년 전 전세 시세보다 떨어졌던 것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포함해 두 차례 정도밖에 없었으며 하락률이 가장 높았던 때도 18%에 불과하다. IMF 외환위기 정도의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전세금의 20% 정도만 반환 준비금으로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의미다.

결국 임차 보증금을 부채로 인식하기 때문에 한국의 가계 부채가 더 심각하게 보이는 것이다. 만약 전세 제도가 없어져 월세로 모두 전환된다면 통계상으로 가계 부채 문제는 훨씬 완화돼 보일 수 있다. 통계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금리 상승의 영향을 받는 실질 가계 부채는 가구당 4263만 원이 아니라 2883만 원인 것이다.

물론 가구당 평균 2883만 원이라고 하는 금융 부채 규모가 커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이 5828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가계 부채 규모가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의 가계 부채 규모가 위험하다고 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인용하는 통계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규모(가계 부채 규모 ÷ 가처분소득)가 크다는 것이다. 수치만 보면 맞다. 그런데 반대로 가구당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자산을 비교해 보면, 이 수치도 세계 최고 수준이 된다(가계 금융자산 규모 ÷ 가처분소득).

전자만 보면 가계 경제 문제가 심각해 보이지만 후자만 보면 우리나라의 가계 경제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수준인 것이다. 왜 이런 상반된 분석이 나올 수 있을까. 문제는 가처분소득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분모가 작으니 몫이 커 보이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총자산 대비 총부채 비율은 캐나다가 26%, 핀란드 16%, 이탈리아 4%, 스웨덴 35%, 영국 21%, 미국이 21%로 이들 선진국의 평균은 21%다. 총자산이 1억 원이라면 부채가 2100만 원이고, 순자산은 7900만 원이라는 의미다. 그러면 한국의 부채 비율은 얼마나 될까.

예로 들은 6개국의 평균치보다 훨씬 낮은 16%다. 그나마 이 수치에는 임차 보증금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세가 모두 월세로 전환된다고 가정하면 이 비율은 11%까지 낮아지게 된다. 결국 우리나라 가계 부채의 위험성은 선진 6개국 평균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양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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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층 부채비율 ‘위험 수준’

그러면 가계 부채는 문제가 없을까. 가계 전체로 보면 평균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심각한 계층도 있다. 어떤 반의 평균 성적이 높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이지, 그런 반에도 낙제생은 있게 마련이다.

총자산이 상위 20%에 드는 계층(5분위)의 평균 자산은 8억5439만 원인데 비해 하위 20%(1분위)는 2118만 원에 불과하다. 자산가라고 할 수 있는 5분위는 대출이자와 관련이 있는 금융 부채는 가구당 5896만 원이 된다.

자산 규모가 큰 만큼 부채 규모도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자산이 1억1127만 원에 이르기 때문에 금융자산 대비 금융 부채 비율은 53%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향후 금리가 인상돼도 5분위 계층은 피해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5분위는 전체 자산 중 부동산 비율이 82%나 된다. 하지만 금융자산 자체도 절대 금액이 크기 때문에 금리 인상 부담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서민층이라고 할 수 있는 1분위는 전체 자산 중 부동산 비율이 40%밖에 되지 않아 금리 인상의 피해가 작을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1분위 가계는 순수 금융자산이 가구당 487만 원에 불과하지만 금융 부채는 1859만 원이나 되기 때문에 금리 인상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부채의 질도 문제다. 5분위 자산가는 담보대출의 61.4%를 자산 취득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1분위는 불과 25.5%만 자산 취득에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사업 자금 마련(50.9%), 생활비(3.9%) 등 생계형 자금으로 전용하고 있다.

5분위는 소득이나 부채를 자산으로 바꾸고 있는데 1분위는 그나마 있는 자산도 담보로 그 돈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부의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평균을 보았을 때 가계 부채는 심각하지 않다. 하지만 서민층이라고 할 수 있는 1분위는 자산에 비해 부채비율이 위험 수준 이상으로 높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금리 인상이 지속된다면 고통을 받는 것은 부동산 자산가들이 아니라 서민 계층이 될 것이다. 무분별한 금리 인상에 이들 계층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금리 인상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 몫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국내 최대 부동산 동호회인 ‘아기곰동호회’의 운영자, 부동산 칼럼니스트. 객관적인 사고, 통계적 근거에 의한 과학적 분석으로 부동산 투자 이론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