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독자 OS를 탑재하기로 한 까닭은

세계 최대 PC 메이커인 휴렛팩커드(HP)가 내년부터 자사가 생산하는 모든 PC에 독자 운영체제(OS)인 웹OS를 탑재하기로 했습니다. 작년 11월 HP 최고경영자(CEO)가 된 레오 아포세커(57)가 이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성공하면 굉장한 파괴력을 발휘하겠지만 실패할 위험도 작지 않습니다.

먼저 웹OS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0여 년 전 PDA로 이름을 떨쳤던 팜(Palm)이란 미국 회사가 있었습니다. ‘PDA’라고 하면 ‘팜’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했죠. 그러나 PDA는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죽고 말았습니다.

팜은 도저히 버티기 어렵게 되자 2, 3년 전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웹OS를 개발해 이를 탑재한 ‘프리’라는 스마트폰을 내놓은 겁니다. 정면 돌파를 시도한 셈이죠.

팜의 프리. 반응은 좋았습니다. 웹OS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았습니다. 아이폰 돌풍만 없었다면 팜은 프리로 발딱 일어섰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폰 돌풍까지 넘기엔 역부족이었죠. 결국 회사를 매물로 내놓았고 지난해 HP와 델이 피 터지는 베팅 경쟁을 벌인 끝에 HP가 12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두 PC 메이커가 팜을 ‘먹으려고’ 덤볐던 것은 웹OS가 탐났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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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폰-태블릿 연동해 막강 ‘웹OS 플랫폼’ 구축

HP는 그 무렵 마이크로소프트 윈도7을 탑재한 태블릿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개발이 꽤 진행됐죠. 그런데 팜을 인수해 웹OS를 손에 넣은 후 전략을 바꿨습니다. 윈도 태블릿 개발을 포기하고 모바일 디바이스에는 웹OS를 탑재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입니다. 당연하죠. 그걸 위해 팜을 인수했으니까요.

HP가 웹OS를 PC에도 탑재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는 종종 나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 기자가 아포세커를 만나 이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습니다. 내년부터 HP가 생산하는 모든 PC에 웹OS를 윈도와 함께 탑재한다고. 그러니까 PC 사용자는 윈도를 사용할 수도 있고 웹OS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포세커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모바일 디바이스에 자체 OS를 탑재해 성공한 기업은 사실상 애플뿐입니다. 애플은 아이폰에 iOS라는 OS를 탑재합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는 캐나다 림(RIM)이 자체 OS를 탑재한 블랙베리 스마트폰으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지금은 아이폰에 밀려 고전하고 있지요. 지금에 와서 안드로이드로 바꿀 수는 없고 독자 노선을 가야 합니다.

노키아도 림과 비슷합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는 심비안이라는 독자 OS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50%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이폰이 나온 후 아이폰에 버금가는 심비안폰을 내놓지 못해 위기에 처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간부 출신 CEO 스티븐 엘롭은 노키아와 심비안을 ‘불타는 플랫폼’에 비유하더니 심비안을 버리고 윈도폰7을 주요 OS로 채택했습니다.

HP는 이걸 보면서 겁이 났을 겁니다. 그래서 폰과 태블릿에만 웹OS를 탑재할 게 아니라 PC에도 탑재함으로써 PC-폰-태블릿을 연동하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HP 고객들이 PC에서 웹OS를 적극 사용해 준다면, HP 폰이나 태블릿를 사용하는 고객들이 웹OS PC까지 사준다면 ‘웹OS 플랫폼’은 막강해집니다.

아포세커. 독일 SAP에서 20년 이상 일한 소프트웨어 전문가. 그는 HP에 대해 “혼(soul)을 잃었다”고 진단했습니다. 하드웨어를 벗어나지 못한 채 원가절감으로 버티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HP를 오라클·IBM과 경쟁하는 기업으로 바꿔놓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시도하겠다는 뜻입니다. 자사 PC에 웹OS를 탑재하겠다는 결정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