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시장에 불어오는 훈풍
3월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서 생명이 소생하고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났다.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바람결에도 봄냄새가 묻어나온다. 3월이라는 마치(March)는 행진과 전진을 뜻한다.주식시장도 투자자들의 염원을 담아 힘차게 내달려 주면 좋으련만 아직 우리 주식시장은 예년과 다른 꽃샘추위에 잔뜩 움츠려 있다. 필자는 그간 강연회나 칼럼을 통해 금년 강세장을 외치며 개인 투자자들에게 주식 매수를 독려해 왔다.
길게 보아 아직도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번의 일시적 조정장에서 적절하게 대비하도록 유도하지 못한데 대해 투자자 특히 개인 투자자 여러분들에게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갑작스러운 외국인의 변심은 왜
주식 투자는 참으로 어려운 게임이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어쩌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겸손해야 한다. 지난 연말만 해도 어느 누가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재스민 혁명을 내다볼 수 있었을까.
중동산 두바이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전문가 그룹의 80% 정도가 낙관론을 펼 때는 조심했어야 했다. 100% 낙관론이 팽배하는 ‘대상투’는 아닐지라도 ‘미니 상투’가 임박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주식시장은 참으로 묘한 곳이다. 낙관론이 판을 치면 반드시 그 판을 뒤집고 새판을 짜도록 심술을 부리곤 한다.
그 심술의 시작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급작스러운 변심에서 시작됐다. 지난 2년 동안 줄기차게 55조 원어치에 달하는 한국 주식을 쓸어 담다시피 한 외국인들이 2월에 접어들면서 태도가 돌변해 3조5000억 원어치를 매도하면서 주식시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거래소 시장 전체의 시가총액 대비 불과 0.3%에도 못 미치는 얄팍한 매도 금액에 주식시장이 맥을 못 추고 추락한데 대해 필자도 의아할 뿐이다. 어쩌면 국내의 매수 주체가 탄탄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투자 주체들이 외국인 찬가만 부르고 있다가 급작스럽게 허를 찔리는 바람에 체감하는 충격이 더 컸다.
외국인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진 이듬해인 2009년 4월, 코스피지수 1300대부터 한국 주식을 본격 매수해 왔다. 당시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초기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지수에서 60%, 환차익으로 15%, 도합 75% 가까운 이익을 거둔 셈이다.
게다가 외국인들이 선호하던 자동차·화학 등 주도주는 지수보다 월등한 초과 수익을 낸 점을 감안하면 초기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100%가 넘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항간에는 외국인들의 급작스러운 매도에 대해 설이 분분하지만 필자는 단기 자금의 차익 실현에 무게를 두고 싶다.
금년, 내년의 이익 증가 모멘텀이 신통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속된 주가 상승으로 밸류에이션상·수급상 부담을 느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외국계 투자자 전체의 동향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2월 중 유럽계 자금이 4조5000억 원어치를 매도하는 동안 장기 투자를 위주로 하는 미국계 자금은 오히려 8000억 원어치를 순매수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 또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이 거래소 시장에서 3조 원어치 이상을 팔았지만 코스닥 시장에서 연초 이후 4000억 원어치 이상을 매수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시가총액 기준으로 거래소 시장에서 0.3%를 팔고 대신 코스닥 시장에서 0.4%를 산 것이다.
최근의 주식시장은 물가·금리·환율·유가 등 증시 주변의 모든 가격 변수가 녹록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살얼음판과 같은 형국이다. 더욱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산유국들이 민주화 혁명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리비아에서는 내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주요 산유국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음 차례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물가 상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경제는 유가 상승이라는 또 하나의 복병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많이 수입해 쓰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연초 대비 20%나 오른 11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월간 약 7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한다고 보면 유가가 10달러 오를 때마다 무역수지는 7억 달러씩 악화된다.
연초 대비 20달러가 올랐으니 월간 14억 달러, 분기 42억 달러의 무역수지 감소 요인이 발생한 셈이다. 나라 경제와 기업의 펀더멘털에 심대한 충격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동안 안전 자산 선호 현상으로 비정상적인 강세를 보여 온 일본의 엔화가 절하될 움직임마저 포착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한국의 원화가 엔화 대비 35% 가까이 평가절하되면서 엄청난 반사이익을 누려온 한국의 수출업계로서는 큰 복병을 만난 셈이다.
그간 한국 경제와 아시아 이머징 마켓의 성장을 견인해 온 중국마저 최근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수출에서 내수 위주로, 유동성 완화에서 긴축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고 있어 중국 경제에 의존도가 큰 한국의 경제 성장률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경기선이라고 불리는 120일 이동평균선을 일시적으로 하향 테스트한 것은 이러한 펀더멘털에 대한 시장 참가자들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코스닥 시장 PER는 8.7배에 불과
물론 좋은 소식도 있다. 미국의 고용과 소비가 회복되고 있고 한국의 2월 경기선행지수가 13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 반전한 것은 고무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굿 뉴스가 중동의 소요 사태와 유가 상승이라는 악재에 다 묻히고 있다는 점이다.
펀더멘털과 수급 측면에서 금년 상반기 주식시장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중동 사태가 안정되고 유가 상승세가 진정돼야 한다. 중국을 필두로 한 이머징 마켓의 인플레이션이 진정돼야 외국인의 매수세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러한 녹록지 않은 투자 환경에서의 투자 전략은 강세 국면에서의 전략과 달라야 한다. 코스피 시장의 대형 우량주는 밸류에이션을 차치하고 지난 2년간 많이 올랐다는 부담이 따르고 있다. 정보기술(IT)·금융 업종을 제외하면 최근의 유가 상승에서 자유롭지 못한 업종이 대부분이다.
투자자들의 선택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의 코스닥 매수 열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의 투자자들이 이미 많이 오른 주식에 탐닉할 동안 외국인들은 헐값에 방치된 코스닥 시장을 조용히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코스피 시장이 100% 가까이 상승하는 동안 코스닥 시장은 43% 오르는데 그쳤다. 지난 한 해 거래소 시장이 20% 오르는 동안 코스닥 시장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올해 코스피200 기업들의 영업이익 증가율이 15%에도 못 미치는 반면 코스닥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80%나 증가할 전망이다.
올해 이익 증가분을 감안한 거래소 시장의 주가수익률(PER)이 9.7배인 반면 코스닥 시장의 PER는 8.7배에 불과하다. 코스닥 시장의 성장성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크게 저평가돼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 성장과 상생 드라이브로 이들 업체들의 적정 이윤과 마진이 보장되고 기술과 특허에 대한 보호막이 형성되면서 이들 기업의 펀더멘털이 강화되고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모바일 혁명은 부품과 장비,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코스닥 기업들에 제2의 전성기를 열어주고 있다. 금년 상반기는 아무래도 코스닥 시장이 비교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증시의 주변 환경을 살펴볼 때 상반기 주식시장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따라서 그간 많이 올랐고, 너도나도 들고 있는 대형주에서 시장 초과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실적이 좋아져도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장기간 바닥을 다진 중소형 우량주, 특히 알토란 같은 성장주들이 포진한 코스닥 지수 관련 우량주에서 틈새 전략을 찾는 것도 유용한 투자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고유가 시대를 맞아 자원 및 대체에너지 관련주도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꽃샘추위에 잔뜩 움츠러든 투자자들여, 코스닥 시장에 불고 있는 봄바람에 얼어붙은 투심을 다소나마 녹여보자. 최남철 삼호SH투자자문 운용대표
1988년 국민투자신탁 펀드매니저를 시작으로 푸르덴셜자산운용을 거쳐 삼호SH투자자문 운용대표를 맡고 있다.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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