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기업가 정신 컨퍼런스' 지상 중계

[Special ReportⅡ] 실패가 없으면 혁신도 없다
통신 업계 1위였던 SK텔레콤은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KT에 주도권을 빼앗겼고, 휴대전화의 강자였던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네이버와 싸이월드는 구글과 페이스북에 속수무책으로 안방을 내줬다.

기득권에 안주하며 스스로의 껍질을 깨지 못하는 공룡은 살아남기 힘든 시대. 대한민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벤처 정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기 위해 정부와 젊은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2월 25일 한경비즈니스와 캠퍼스 잡앤조이(Campus Job&Joy)가 마련한 ‘한국형 기업가 정신 컨퍼런스’에서 그 방법을 찾아보자.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벤처기업협회 초대 회장)

[Special ReportⅡ] 실패가 없으면 혁신도 없다
벤처와 관련해 이런 말이 있다. “벤처로 성공하면 벤츠를 타지만, 실패하면 벤치로 간다.” 벤처는 대박 아니면 쪽박밖에 없는 상황을 빗댄 것인데,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기업가 정신이 어렵다는 뜻이다.

벤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면 1995년 벤처기업협회가 만들어졌고(이민화 교수는 벤처기업협회 초대 회장이다), 1996년 협회 주도로 코스닥이 만들어졌다. 당시 코스닥을 통해 벤처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한국 벤처의 세계화가 가능해졌다.

1997년에 제정된 벤처특별법은 세계에서도 최초였고 중국 등에서도 베껴갈 정도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벤처기업의 풀뿌리가 생성됐고 벤처기업의 수는 한때 2만5000개에 이르렀다. 한 해 7000개가 새로 생길 정도였다.

지난해 벤처기업의 매출은 200조 원을 넘으면서 삼성전자 매출의 1.5배에 이르고 있다. 새로 창업하는 벤처의 수가 한때 97개까지 내려가며 시련의 시기도 있었지만, 2009년 한 해 창업한 벤처의 수는 242개로 희망을 보이고 있다.

“벤처, 성공하면 ‘벤츠’실패하면 ‘벤치’”

벤처가 왜 필요한지를 논하기 전에 혁신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성공하는 기업은 항상 성공할까. 1960년대 초대형 컴퓨터 회사들 중 지금 남아 있는 회사가 있는가. 미니컴퓨터가 나오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그 미니컴퓨터 회사들도 개인용 컴퓨터(PC)가 등장하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PC 시대를 주름잡았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제품이 스마트폰에 쓰이고 있는가. 워크맨을 개발해 세계 전자 제품 시장을 장악했던 소니 제품 중에 지금 잘나가는 제품이 있는가. 성공 기업이 계속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왜 그럴까. 파괴적 창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혁신이라는 것은 생명 진화의 돌연변이와 같은 것이다. 돌연변이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생명의 진화에는 필수다. 새로운 기업은 혁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성공 확률은 0.7%에 불과하다. 혁신을 통해 도전한 기업의 99.3%는 실패한다는 얘기다. 생명 변화에 단 한 번의 돌연변이로는 성공하기 힘들고 무수한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혁신은 실패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에 가서 지난 1년간 실패가 있었는지 물어보자. 한 번도 실패가 없었다면 이 기업은 창조성이 없는 기업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창업가의 평균 실패율은 1.8회라고도 한다. 결국 실패에 대한 지원이 없는 곳에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실패에 대한 지원은 결국 국가와 사회의 문제다. 실패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국가 혁신 전략의 핵심이다. 현 시스템은 젊은이들에게 꿈이 아니라 좌절만 안겨줄 뿐이다.

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월화수목금금금’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4만 달러 시대로 가려면 기업가 정신에 의한 혁신 주도 성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청년들에게 당부할 말은 ‘행복’과 ‘불행하지 않은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불행하지 않은 것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지만 행복은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싸이월드 창업자)

[Special ReportⅡ] 실패가 없으면 혁신도 없다
내가 처음 창업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미술부 학생들이 모여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팔았는데, 배경·세부묘사·포장을 분업화할 정도로 사업 흉내를 냈다.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대학교 때는 포장마차를 운영했는데 역시 재미는 없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인 LG CNS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해 8년 동안 일했다.

어느 날 문득 주위를 보니 큰 버스를 타고 ‘집↔회사’를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버스를 내려 스포츠카를 타고 원하는 곳을 갈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기에는 두려움이 컸다. 버스는 너무 편하고 안락했다.

그러다 1998년 버스에서 내렸다. 내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기회가 왔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가장 빨리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일하던 부장이 회사를 나가는 것을 보고 ‘아, 이 버스는 평생 탈 수 있는 버스가 아니구나. 두 다리가 튼튼할 때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려 보니 내가 타던 것이 버스가 아니라 배였다. 처음에는 한참 밑으로 가라앉았다. 월급도 없어지고 사회보장도 없어졌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금 창업하려는 대학생들이 조언을 구한다면 ‘최소한 헤엄을 칠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헤엄치면서 떠다니는 부표를 모아 배를 엮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헤엄치는 방법은 알아 놓아야 한다.

부모가 부자면 죽을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창업할 때처럼 창업 투자 회사나 국가의 혜택이 많으면 가능하다. 싸이월드는 초창기 25억 원을 투자받았다. 지나고 보니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엄청난 기회였던 것이다. 지금도 이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둘째로 하고 싶은 얘기는 ‘발견’이다. 창업은 창조가 아니다. 그 이전에 있던 무수한 것들 중에 자기가 기회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찾으려면 무작정 돌아다녀선 안 된다. 초등학교 소풍 때 보물찾기를 떠올리면, 누구나 발견하기 쉬운 곳에는 등급이 떨어지는 것만 있다.

다섯 번 실패 후에야 싸이월드 성공시켜

진짜 좋은 것은 찾기 힘든 곳에 있다. 싸이월드를 시작할 때 커뮤니티 서비스 업계에서 10위였다. 내 뒤로 500개 정도가 있었는데, 2년째 10위를 했다. 내가 한 행동들은 10등짜리 보물 찾듯 막 돌아다닌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모든 곳을 다 돌아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제야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게시판에 붙이고 메모를 붙여놓는 것을 보고, ‘저게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생각해 봤다. 그래서 ‘미니홈피’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미니홈피는 여섯 번째 프로젝트 만에 나온 것이었다. 그럼 그전의 5번의 시도는 다 시간 낭비였을까. 그렇지 않았다. 미니홈피에 쓰였던 퍼즐 조각이 다 앞의 시도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실패냐 성공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경험을 쌓았던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도대체 이 사업이 언제 성공할 것인지였다.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 얘기를 보면, 곰은 사람으로 바뀌기 하루 전까지도 그냥 곰이었다. 만약 서서히 변하는 것이었다면 호랑이는 절대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공동 창업한 친구는 미니홈피 붐이 불기 6개월 전에 회사를 나갔다. 성공도 이와 같다. 성공하기 전까지는 내가 성공할지 그렇지 않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힘들었던 것은 거절당하는 것이었다. 처음 3년 동안 수없이 거절당했다. 그게 바로 사업이다. 거절을 많이 당하면 당할수록 많이 배우는 것이다. 거절당하지 않는 방법은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Special ReportⅡ] 실패가 없으면 혁신도 없다
취재=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