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가 최고의 화제는 단연 지주사 ‘회장 선출’이다. 신한금융·우리금융·하나금융·산은금융 등 대표 지주사 모두 새로운 회장 선임을 진행 중이거나 연임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만 바뀌어도 뉴스거리인데, 대표 금융지주사 4곳의 최고경영자(CEO) 인선 이야기가 한꺼번에 오르내리는 상황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다. 하지만 CEO 인선 과정에서 들리는 잡음과 논란도 만만치 않다.

4곳의 금융지주 중 CEO 선임이 가장 먼저 마무리될 곳은 신한금융지주다. 신한금융은 지난 2월 8일 이사회를 열고 4명의 최종 후보(숏 리스트)를 선정했다.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회 의장, 한동우 전 신한생명 부회장,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최영휘 전 신한금융 사장 등이 숏 리스트에 포함된 인사들이다.

애초 차기 회장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됐던 류시열 회장 대행이 후보직을 고사하고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또한 빠지면서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당초의 우려를 벗고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됐다.

우리금융은 이팔성 현 회장의 연임이 유력하다. 지난 2월 9일 마감한 회장 후보 공모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김우석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김은상 삼정KPMG 부회장 등 총 4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한 명은 경영계획서 등의 필수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사실상 3명의 최종 후보가 정해진 셈이다.

우리금융 역시 한때 강만수 특보가 유력한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연임 의지를 강하게 밝혀 왔던 이 회장이 “나와는 급이 다르다”는 말로 강 특보를 평가했던 것 또한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강 특보는 회장 응모에 참여하지 않았다. 최대 경쟁자였던 강 특보가 사라진 상황에서는 자연히 이 회장에게 힘이 쏠린다. 우리금융의 최대 과제인 민영화를 진두지휘해 온 상황에서 마무리까지 책임질 적임자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2월 14일 후보자 인터뷰를 통해 내정자를 확정하게 된다. 이후 3월 4일 이사회 승인과 3월 25일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CEO 선임을 최종 마무리할 예정이다.
[금융그룹 CEO 인선 시스템 입체 분석] 사외이사 독립성 ‘흔들’… 경영진 육성 시스템 ‘절실’
하나금융도 김승유 현 회장의 연임이 유력하다. 하나금융은 얼마 전 이사회를 열고 이사들의 연령을 70세로 제한하는 ‘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마련했다. 여기에 현재 3년인 이사 임기를 연임 시에는 1년으로 단축하는 ‘3+1’ 임기제를 확정할 방침이다.

현재 김 회장의 나이는 68세로 모범 규준이 확정되면 2년간 임기가 보장된다. 김 회장이 이번에 연임에 성공하면 지난 1997년 하나은행장에 오른 이후 ‘3연임’ 기록을 세우게 된다.

최근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기업 경쟁력 강화와 대형화에 성공했다는 시장의 평가 역시 김 회장의 연임을 유력하게 보는 배경이다. 세 번째 연임이라는 부담감을 경영 성과와 임기 단축이라는 두 개의 카드로 극복한 셈이다.

산은금융은 민유성 회장의 임기가 오는 6월에 끝나지만 3월 주총과 함께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역시 후임 회장 인선의 핵심은 강만수 특보다. 측근 등을 통해 “지주사 회장직 공모에 관심이 없다”고 밝힌 상태지만 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지주사에 단독 추대되는 모양새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금융업계의 전망이다.

현재 산은금융 회장은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산은금융도 우리금융과 마찬가지로 민영화가 최대 과제다. 민 회장이 어느 정도 민영화의 틀을 잡아놓은 상태라면, 이후 작업의 속도를 올리는 데는 현 정권 실세로 불리는 강 특보가 적임자일 수 있다. 여기에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매각 등 금융 당국과의 협조 요구도 강 특보가 힘을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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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금융지주사 CEO 모두 임기 만료

금융지주사 CEO 선출이 업계는 물론 경제계 전반의 화제인 가운데 ‘CEO 리스크’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말 그대로 CEO에 따른 기업의 경쟁력 약화, 수익성 침해, 기업 가치 절하 등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는 곧 ‘경영 승계’ 리스크와 연결된다. 대표적인 것이 ‘관치(官治)’ 논란이다.

앞서의 4개 금융그룹을 보면 유독 한 사람에게 시선이 쏠린다. 강만수 특보다. 강 특보는 정권 초기 기획재정부 장관을 시작으로 현재는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력의 최측근이다.

산은금융이나 우리금융은 몰라도 100% 민간 기업인 신한금융에까지 그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건 그만큼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사와 투자 부문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타워스왓슨한국 박광서 사장은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주식공개를 통해 상장기업의 형태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CEO 선임에 있어서는 여전히 정부의 입김이 가장 강력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충분한 자질 검증이나 체계적인 승계 계획이 없다보니 CEO들이 장기 집권 체계 구축 등 자리보전에만 힘을 쏟는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는 주주의 이익보다 정부 등 특정 이해관계 집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많다는 것이 박 사장의 말이다.

이른바 ‘빅3’의 불명예 퇴진으로 시작된 신한금융의 차기 회장 인선 과정도 대표적인 CEO 리스크 사례로 볼 수 있다. 애초 유력 후보였던 류시열 회장 대행은 라응찬 전 회장 지지 성향으로 분류됐다.

역시 유력한 후보인 한택수 의장은 반(反)라응찬 진영으로 양강 체제가 이뤄졌던 것. 류 대행이 물러나긴 했지만 한동우 전 부회장과 김병주 교수 역시 친라 성향으로 분류된다. 어찌됐든 전임 CEO의 영향력이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셈이다. 신한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가 여전히 후임자 선출에 깊숙이 관여하는 모양새는 금융 당국 쪽에도 좋게 보일 리 없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불안정은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악화를 불러오는 심각한 사안이다. 한국의 금융회사들이 국내 영업에만 급급하고 세계적인 금융사로 도약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조타수 역할을 하는 CEO의 리더십 부재나 자질 미흡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시연 연구위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가치 제고를 꾀할 수 있도록 명확한 CEO 승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이사회의 책무이며, 이를 금융회사 스스로 상시적으로 논의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불안정이 곧 기업 리스크

CEO 승계 규정이나 지배구조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가장 시급한 문제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사회’의 낙후된 인식을 들고 있다. 더욱이 사외이사들은 직무와 전혀 무관한 대학교수, 퇴직 공무원 등이 CEO와의 개인적 친분으로 선임되는 사례가 많다.

대형 법인의 경우 사외이사가 받는 억대의 연봉 또한 독립성을 해치는 요인 중 하나다. 금융권 경력이 전무하고 CEO와도 절친한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하기를 기대한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오랜 기간 공석으로 비어 있었던 KB금융그룹의 회장 선임 과정은 대표적인 사외이사의 독립성 시비 사례다. 금융 당국의 집중 견제로 강정원 전 회장이 물러난 일련의 과정에서 조재목 사외이사가 관치금융 논란에 휩싸였던 것.

조 이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외곽 조직으로 불리는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사무총장 출신이다. 이전에는 영남 지역 리서치 업체의 대표이사를 맡는 등 은행권 전력이 전무해 사외이사 선임 당시부터 적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조 이사는 강 전 회장의 선임 과정에서 관치금융 의혹을 불러왔다.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정권 측근이라는 시선과 일천한 관련 업무 경험은 사외이사 자격 논란을 피해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신한 사태로 CEO 리스크를 절감한 금융 당국도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용역을 맡은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중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법’ 내용을 공개했다. 역시 이사회의 권한 강화, 특히 사외이사의 권한 강화가 주요 골자다.

이사회 구성원 중 사외이사 비중을 과반수로 의무화하고 이사회 의장 역시 사외이사가 맡는 방안이 제시됐다.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주요 금융회사는 5인 이상의 사외이사를 두기로 했다.

사외이사의 연속 재임 기간도 5년으로 규정하고, 이를 초과할 때는 사외이사 결격사유가 된다. 상임 임직원이 퇴임한 후 2년간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는 냉각기간도 3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소개됐다. 우선 겸직할 수 있는 사외이사 수를 3개로 제한했다. 여기에 사외이사에 대한 교육정책 수립·운용을 의무화하고 관련 내용을 공시하도록 했다. 금융위는 연내로 이 같은 개선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외국계 증권사인 크레디리요네(CLSA)와 홍콩의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의회(ACGA)가 공동으로 발간한 ‘CG(Corporate Governance) 워치(Watch) 2010’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11개국 가운데 기업 지배구조 성적에서 9위에 머물렀다.

2007년의 6위에 비해 지난 3년간 지배구조가 후퇴했다는 초라한 결과다. 보고서는 일례로 주주총회 안건의 표결 처리를 의무화한다든지, 주총 의결권 행사 내역을 사후에 공시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해당 산업 분야 비전문가인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을지 많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5개의 평가 범주 중 집행, 정치 및 제도적 환경, 지배구조 문화 등 3개 부문에서 후퇴하거나 정체했다.

더욱이 한국은 인도네시아·필리핀과 함께 기업 지배구조 점수가 가장 저조했고, 2007년 조사에 비해 지배구조 현황이 악화된 국가(한국을 제외하면 필리핀뿐)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박광서 사장은 “상당수의 해외 금융사들은 내부에서 오랫동안 관찰하고 전략적으로 키워온 인재를 CEO로 인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정 단계에서부터 탁월한 인재들을 대상으로 치밀하게 강·약점을 검증하는 한편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강화할 수 있도록 투자하고 육성하는 게 글로벌 지배구조 트렌드란 뜻이다.

금융연구원 이시연 위원은 “금융회사 자체의 투명한 시스템이 이미 구축돼 있다면 시장의 감시 기능과 그 영향력 때문에라도 정부가 경영진의 선임에 과도하게 개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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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140년을 이어온 ‘골드만삭스’의 경영자 훈련

‘준비된 CEO’가 조직 이끈다

명문화된 규정은 아니더라도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CEO 승계 계획을 갖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상장 금융사 중 81%가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CEO 승계 프로그램을 가장 잘 활용하는 곳 중 하나가 골드만삭스다. 1869년 독일계인 골드만 가문과 유대계 삭스 가문의 혼인으로 탄생한 골드만삭스는 창업자인 오너 그룹에서 시작해 지금의 로이드 블랭크페인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훈련받은 후계자가 CEO로 선임된다.

그 과정의 핵심은 ‘경영위원회’에 있다. CEO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경영위원회는 회사의 업무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안을 결정하고 감독하는 기관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에 따른 경쟁 구도 속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인재는 경영위원회에 참여하면서 공식적인 차기 CEO로 인정받게 된다.

지도자 수업은 평균 10년을 넘기기 일쑤다. 오랜 기간 동안 경영자 수업을 받아 온 후계자들은 사내 구성원들의 공감대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

취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