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가하는 탐정 수요

일본은 광고 대국이다. TV 프로그램에선 아예 대놓고 상품을 소개한다. 그뿐만 아니다. 오프라인에서도 광고는 범람한다. 지하철·골목을 비롯해 빈틈만 있으면 광고가 걸린다.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2009년 광고 시장 전체 규모가 6조 엔에 육박할 정도다(덴츠). 가히 광고 천국인 셈이다. 개중엔 한국인에게 낯설고 재미난 광고도 많다. 탐정 광고가 그렇다.

탐정 관련 광고 넘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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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특히 한국인 눈에 탐정 광고는 적잖이 이질적이다. 일본에선 탐정이 일상 직업 중 하나다. 야후재팬에 검색어 ‘탐정’을 쳐 넣으면 무려 1300만 건이나 걸러질 정도다. TV 프로그램 중에도 탐정이란 단어가 들어간 게 적지 않다. 길거리 광고판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 등 한국에 소개된 탐정 만화도 많다. 탐정이란 직업이 실제로 익숙하다는 얘기다. 이는 그만큼 일본 사회에 탐정 수요가 많다는 걸 의미한다. 도대체 치안 대국 일본에 탐정이 성행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탐정의 개념 정의부터 보자. 2007년 시행된 관련 법률(탐정업법)에 따르면 ‘타인의 의뢰를 받아 특정인의 소재·행동에 대해 실제 조사한 후 그 결과를 의뢰자에게 보고하는 업무’로 규정된다. 고객의 조사 요구에 따라 조사 후 결과를 통보해 주는 일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사적(私的) 조사기관 혹은 종합 조사 그룹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사 방법은 탐문·미행·잠복 등 다양하다. 최근 탐정 시장은 규제 강화, 경쟁 격화에도 불구하고 유망 사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게다가 탐정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종의 자유업이다. 별도의 자격·면허가 필요없다. 과거 5년까지 폭력단이었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았다면 개업할 수 있다.

크게 법인과 개인으로 구분된다. 탐정 수요가 많은 건 거꾸로 경찰 등 공공 대처에 대한 불만·부담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방불명·스토커·업무방해 등의 문제 해결이 경찰보다 더 신속·편리하다는 공감대도 넓다.

실제 탐정 수요는 다양하다. TV 드라마 등에선 살인·흉악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주인공도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요컨대 뒷조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품행·불륜 조사를 비롯해 사람을 찾거나 법인·개인의 신용조사 등의 업무가 주류를 이룬다.

더욱이 실제 의뢰는 불륜 조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배우자의 부정에 따른 이혼이 급증하면서 뒷조사를 의뢰하는 수요다. 이혼 때 위자료와 관련해 유리한 정보를 쥐기 위해서다. 이 밖에 옛 친구나 스승, 가출인 등의 수배 의뢰도 많다.

최근엔 결혼 상대방의 이력 등 사실관계 확인하기 위해 탐정을 찾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퇴직 경찰관이 탐정 일과 함께 필적·지문·DNA 감정 등을 해 주기도 한다. 일부는 특정인과 헤어지도록 꼼수를 쓰는 특수 공작을 해 주는 회사도 있다.

흥신소의 업무와 다소 구분된다. 탐정 회사가 주로 사람 문제(불륜·범죄 여부 등)를 다루는 반면 흥신소는 금전 문제(신용·시장조사 등)에 밝은 게 차이다. 최근엔 흥신소가 탐정 회사로 이름을 바꾸는 추세다. 조사 방법도 좀 다르다. 탐정 회사가 대부분 경찰처럼 밖에서 증거 확보에 매진하는 것에 비해 흥신소는 설문 조사처럼 직접적인 대면 취재에 강하다.

탐정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연간 4000억~5000억 엔의 시장 규모로 활동 중인 탐정만 약 6만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뢰 건수는 연간 250만 건 이상이다. 등록업자(공안위원회)만 모두 4439건으로 집계됐다(2008년).

이 중 법인은 1310건이고 개인이 3129건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최근엔 법인·네트워크화도 추세 중 하나다. 1인 회사는 여러모로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군소 이해집단이 많지만 업계 중심은 일본조사업협회다. 약 500개사가 가맹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주무 관청(경시청)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대형화를 유도하는 중이다. 대형 회사는 덩치도 크다. 프랜차이즈는 국내 도시는 물론 해외에까지 네트워크를 형성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 가령 ‘가루에이전시’는 전국에 180개 사무소를 가진 대형사다. 탐정 학교만 14개를 운영해 7000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2개월에 걸쳐 탐정 업무에 필요한 제반 교육을 유료로 시킨다. 수요 증가로 탐정이 되려는 이들도 증가세다. 탐정이 되는 법을 소개한 출판물도 수두룩하다. 탐정 개업, 영업 전략 등을 조언하는 업체까지 생겨났다. 본업과 별도로 퇴근 이후와 주말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이도 많다. 다만 주력은 전문 경력자다. 전직 경찰과 검찰·변호사 등이 주로 간부로 활동 중이다.

시장이 커지면 문제도 많아지는 법이다. 대표적인 게 사생활 침해다. 무분별한 민간 조사로 사생활 침해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트러블이 가장 많은 불륜 조사를 예로 보자. 불륜 조사는 혼전 조사(결혼 상대방 조사)와 함께 워낙 의뢰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으로 덤비는 중소 탐정 회사가 그만큼 많다.

이때 조사 대상자의 인권을 침해하기도 한다. 의뢰자의 비밀은 지켜도 조사 대상자의 비밀은 정반대여서다. 반대로 법규 강화로 최근엔 개인 정보 확보가 적잖이 힘들어진 것도 부작용 증가배경이다.

심지어 대상자가 탐정을 역으로 고용해 협박 채널로 삼을 때도 있다. 이런 이유로 탐정 회사의 TV 광고도 허용되지 않는다. 비교적 고가 업무인 이별 공작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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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신소가 탐정 회사로 이름 바꾸기도

헤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불법·범법행위를 일삼는 무허가 영업 탐정이 많기 때문이다. 탐정협회가 이별 공작을 자율 규제로 삼고 취급 업무에서 빼기도 했다. 일부 피해자와 민원인은 불법 심부름센터, 컨설팅 업체 등에 의뢰해 해결사를 고용해 자력 구제에 나섰다가 되레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탐정업법이 제정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탐정 고용과 관련한 갈등·불만이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영업 조건을 강화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탐정업법은 탐정 업무를 제한하는데 포커스를 뒀다. 개인 권리 침해 방지와 합법적 의뢰 목적 등을 강제한다. 규정 범위를 벗어나면 처벌한다는 조항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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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 비용과 관련한 갈등도 단골 소재다. 과다 청구가 대표적이다. 실제 탐정 의뢰 조사 요금은 천차만별이다. 개별 조사 안건이 워낙 다른 데다 목적·조건 등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단일 요금 체계는 독점금지법 위반 사항이어서 모여 조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탐정 1인당 할애 시간에 따른 요금 체계가 적용된다. 탐정 1인·1시간당 5000~1만5000엔 정도가 일반적이다. 물론 탐정 개인의 기량·경험·평판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의뢰 사건별로 보면 불륜 조사(10만~350만 엔), 가출 조사(10만~500만 엔) 등이 일반적이다.

대개 탐정 2명이 붙는 하루 4~5시간의 패키지 의뢰가 많다. 이때 평균 요금은 10만 엔 정도다. 문제는 부실한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비용 청구가 끊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피해 사례 중 일부는 탐정이 역으로 고객의 약점을 악용해 돈을 강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정 업계의 전망은 긴 역사만큼 밝은 편이란 게 중론이다. 대화 부족, 관계 단절 등 일본 사회가 나날이 건조해지면서 관련 수요가 그만큼 증가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피해를 호소하는 복잡·다난한 범죄행위도 지속적이다.

동시에 범죄·피해로부터 사전에 보호하려는 수요도 많다. 예방 수요다. 즉 유괴·이지매·스토커·사기 등 잠재 피해의 발생 억제를 위한 수요다. 실제 탐정 업무는 예방 성격도 강하다. 경찰이 발생 사건을 해결하는데 비해 탐정은 예방 대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기업 관련 수요도 적지 않다. 이는 일본의 탐정 역사와 관계가 있다. 19세기 말 산업 발달로 증권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일본에선 신용조사의 필요성이 높아졌는데 이를 대행해 주던 상업 흥신소가 탐정의 유래다.

기업의 위기관리 등 법인 영업 수요와 임직원 채용·승진에 관한 인사 조사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힘입어 업계는 자발적인 윤리성 강조와 별개로 탐정 시장 규제 완화도 요구한다. 탐정 역할이 커지면 오히려 공공 도움이 필요한 서민들의 경찰 접근성이 개선된다는 이유에서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change4dre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