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 사이에 명품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여성들이 명품 백을 갈구하듯 남성들은 명품 시계와 지갑 등을 원한다. 세련된 멋과 매너를 갖춘 남성을 뜻하는 ‘그루밍족’, ‘차도남’ 등의 용어도 인기다. 유통 업체들도 바빠졌다. 남성만의 명품 매장을 잇따라 열고 있다. 남자들을 위한 명품 이야기를 다뤘다.
[남성 명품 시장의 화려한 변신] 남성도 돋보이고 싶다…전용숍 ‘북적’ 매출 ‘쑥쑥’
피나이더는 이탈리아의 최고급 가죽 브랜드다. 100% 전통 정밀 수공예 공법으로 서류가방·지갑·볼펜 등 600여 종의 가죽 제품을 만든다. 지난 8월 국내에 상륙했고 최근 롯데·신세계백화점의 명품 코너에 입점했다.

피나이더는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의 VIP 선물용으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피나이더 한국 공식 수입 업체인 한국메사 정우송 대표는 “40만~140만 원 하는 만년필과 볼펜은 이탈리아 현지 7개 매장에 진열된 제품까지 모두 가져왔지만 벌써 동이 났다”고 전했다.

이 밖에 가죽 서류가방(250만~300만 원), 손목시계(200만 원) 등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게 정 대표의 귀띔이다. 정 대표는 “피나이더의 인기 몰이는 연말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꾸미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등 트렌드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성 명품 ‘없어서 못 판다’

명품을 찾는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명품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주요 백화점들은 남성만을 위한 명품 전용 숍을 잇따라 개설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지난 10월 6층 남성복 매장에 330㎡(약 100평) 규모의 남성복 편집매장 ‘신세계 멘즈 컬렉션’을 열었다. 유럽 정통 클래식 슈트와 스포티 캐주얼 등 40~50대 중년 남성 타깃의 해외 명품 브랜드 20여 개로 구성했다.
[남성 명품 시장의 화려한 변신] 남성도 돋보이고 싶다…전용숍 ‘북적’ 매출 ‘쑥쑥’
클래식 라인의 주요 브랜드로는 100% 핸드 메이드로 만드는 맞춤 슈트 브랜드인 ‘이사이아(ISAIA)’, 에르메스·랄프로렌의 슈트를 제작하며 명성을 얻은 ‘벨베스트(Belvest)’ 등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남성 의류가 전년 대비 27.2%가 늘었고 남성 명품은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품 시계는 4분기 들어 전 분기 대비 115% 늘어나는 등 명품 매출이 급격한 신장률을 보였다.

나승 남성팀 팀장은 “경륜을 갖춘 중년 남성들이 백화점의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을 위한 명품급 남성 의류 편집매장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도 12월 초 명품관 이스트에 남성 클래식 셀렉트 숍 ‘지.스트릿 494 옴므(g.street 494 homme)’를 오픈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입는 것으로 알려진 ‘장미라사’,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최고급 명품 슈트 브랜드 ‘스테파노 리치’ 등과 협업을 통해 이 백화점에서만 살 수 있는 명품 프라이빗 브랜드(PB)를 판매한다.

첫 PB 제품은 맞춤복 전문점 ‘장미라사’와 함께 생산한 ‘소모직 캐시미어 재킷’이다. 가격대는 200만~700만 원대에 달한다.

올 들어 갤러리아 명품관 남성 명품 매출은 꾸준한 증가세다. 벨루티와 발리 등 남성 잡화는 올 들어 전년 대비 8%, 스테파노리치·키톤·브리오니 등 남성 정장 및 의류는 6% 늘어났다. 또 오데마 피거, 바세론 콘스탄틴 등 남성 명품 시계의 매출은 10% 증가했다고 갤러리아 측은 밝혔다.

조정우 갤러리아 명품관 마케팅 1팀장은 “남성 명품 매출이 늘고 있는 것은 ‘몸짱’, ‘꽃남’ 등 신조어가 유행될 만큼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남성들은 전통을 중요시 하는데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상대방과 동등한 위치에 서겠다는 심리가 강해 남성 명품 시장이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에 론칭한 롯데닷컴 남성 전문 쇼핑관 ‘롯데맨즈’도 올 8월 온라인 에비뉴엘관을 선보였다. 서울 소공동 롯데 에비뉴엘 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프레스티지급 명품 브랜드를 인터넷 쇼핑 공간으로 옮겨놓은 것. 롯데맨즈는 11월 기준으로 전년보다 5배 이상 성장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이태종 롯데맨즈 팀장은 “경쟁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욕구가 커진 데다 인터넷의 발달로 명품 브랜드에 대한 정보 습득이 많아진 것도 남성 명품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명품=여성’ 등식 깨져

대한상공회의소가 올 상반기 국내 온라인 쇼핑몰 1만2000개의 방문자의 성별을 조사한 결과 남성의 비중이 64%로 여성보다 더 많았다. ‘쇼핑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

세계적 경영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의 명품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남성 명품 시장은 급부상하고 있다. 맥킨지는 지난 7월 발표한 ‘2010년 한국 명품 시장조사’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남성이 새로운 명품 고객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명품 소비자들은 트렌드를 앞서 가며 새로 출시된 명품에 대한 과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맥킨지는 분석했다. 국내 명품 시장은 5조 원대로 추산된다.

올 상반기 롯데·현대·신세계갤러리아·AK 등 국내 5대 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1조1507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 증가했다. 올 연간으로는 2조3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면세점 명품 매출이 1조8000억 원, 병행수입·아울렛 매출 등이 1조 원 수준이다.

이제 더 이상 ‘명품=여성’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명품 시장에서 경제력 있는 남성들의 비중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성을 잡기 위한 명품 업체들의 경쟁도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취재 = 권오준·우종국 기자 / 사진 = 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