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별 분석

‘한중일 100대 기업’은 세 나라 간판 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장이다. 선두권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한국 삼성전자, 그리고 중국의 양대 정유 업체 시노펙과 페트로차이나다. 여기에 중국의 거대 은행들이 가세하는 모양새다. 매출액은 도요타가 2028억 달러로 단연 독보적이다.

하지만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페트로차이나가 1위로 뛰어오른다. 순이익에서는 중국공상은행과 중국건설은행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모든 항목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아 도요타를 제치고 종합 순위 3위에 올랐다.

◇ 매출액 순위 = 역시 저력의 도요타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대량 리콜 사태, 15년 만의 최악이라는 살인적인 엔고 등 초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매출액 순위 1위에 올랐다. 도요타의 2009년 매출액은 2028억 달러로 2위인 시노펙을 100억 달러 이상 앞섰다. 도요타는 시가총액에서도 4위에 올라 선전했지만 순이익에서는 25위로 밀려났다.

시노펙과 페트로차이나는 중국 정유 시장의 라이벌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시노펙(1928억 달러)과 페트로차이나(1493억 달러)는 매출액 순위에서 나란히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2000년 이후 고속성장과 함께 원유를 포함한 세계 자원의 블랙홀로 떠오른 중국의 위상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시노펙은 매출액에서는 라이벌을 눌렀지만 시가총액과 순이익에서 밀려 종합 1위 자리를 페트로차이나에 내줬다.

4위는 일본 전자 업체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린 삼성전자가 차지했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소니·파나소닉·도시바·샤프 등 일본의 주요 4개 업체를 모두 합쳐 놓은 것보다 많았다. 전자 산업의 강국을 자부해 온 자존심이 여지없이 무너졌고, 올해 내내 일본에선 ‘삼성전자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2010 한중일 100대 기업] 매출 도요타 1위…시총·순익 중국 강세
이 밖에 매출액 순위에서 눈에 띄는 것은 히타치다. 105년의 역사를 가진 이 업체는 중전기에서 가전까지 아우르는 종합 전기전자 업체다. 지난해 960억 달러 매출로 매출 순위 6위에 올랐지만, 11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적자로 종합 순위는 491위에 머물렀다.

일본의 주요 전자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파나소닉(11억1000만 달러 적자), 소니(4억4000만 달러 적자), 도시바(2억1000만 달러 적자)도 엄청난 적자에 발목을 잡혔다.

◇ 시가총액 순위 =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식시장에서 아시아의 강세가 도드라졌다. 지난해 전 세계 상장 기업을 통틀어 시가총액이 가장 많은 곳은 세계 최대의 오일 메이저 엑슨모빌이나 21세기 최고의 스타 기업 애플이 아니었다. 작년 3월 말 기준 세계 시가총액 1위는 중국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이 차지했다. 올 들어 3월에는 이 자리를 페트로차이나가 대신했다.

이번 한중일 100대 기업 조사에서 시가총액 1위에 오른 곳은 페트로차이나다. 작년 말 종가를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3278억 달러에 달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한때 홍콩에 상장된 이 회사 주식(H주) 1.31%를 보유하기도 했다. 미국과 함께 ‘G2’로 떠오른 중국의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2위는 중국 최대 은행인 중국공상은행이 차지했다. 시가총액으로는 세계 최대 은행이다. 13억 명에 달하는 두터운 고객 기반이 가장 큰 강점이다. 중국 전역에 1만6394개에 달하는 지점망을 촘촘히 구축해 놓고 있다.

이어 시노펙과 도요타자동차가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전반적으로 중국 에너지 기업과 금융회사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에너지 기업 중에서는 페트로차이나와 시노펙 외에 중국선화에너지(8위)가 상위 20위권에 들었다. 중국선화에너지는 중국에서 가장 큰 석탄 생산 기업이다.

[2010 한중일 100대 기업] 매출 도요타 1위…시총·순익 중국 강세
◇ 순이익 순위
= 순이익 1위는 중국공상은행이 차지했다.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188억 달러에 달하는 순이익을 챙겼다. 이는 웬만한 기업의 1년 매출액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작년 한중일 1646개 기업 가운데 매출액이 188억 달러가 넘은 곳은 86개 기업에 불과했다.

2위 역시 또 다른 중국 국유 상업은행인 중국건설은행에 돌아갔다. 중국 은행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은행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결과다. 순이익 상위 20위에 든 중국 은행은 이들 외에도 중국은행(4위)·중국교통은행(12위)·중국초상은행(20위)이 있다. 이 중 민영 상업은행은 중국초상은행뿐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88억 달러의 순이익으로 6위에 진입했다. 올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작년에는 사상 최고의 실적을 냈던 LG그룹의 지주회사 (주)LG도 11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NTT도코모와 NTT가 나란히 7위와 8위를 차지했다. 한국으로 치면 NTT는 KT, NTT도코모는 옛 KTF에 해당한다. 하지만 유·무선 시장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 업종별 분포 = 한중일 100대 기업을 업종별로 분석한 결과는 흥미롭다. 각 나라의 경제 발전 단계별로 강한 업종이 선명하게 갈라진다. 한국은 주력 수출 업종인 전기전자(삼성전자·LG전자·LG디스플레이)와 자동차(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철강(포스코)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중국은 에너지(페트로차이나·시노펙)와 광업(중국선화에너지·중메이에너지), 건설(중국중철·중국건축공정총공사·중국철도건설·중국야금과공) 등 기초 인프라 관련 업종이 강세다.

반면 일본은 자동차(도요타자동차·혼다·닛산자동차·스즈키)와 전기전자(캐논·후지쯔·미쓰비시전기·교세라·리코·스미토모전기공업)는 물론이고 통신(NTT·NTT도코모·KDDI·소프트뱅크)과 도소매(세븐&아이홀딩스·야마다전기·이온·패스트), 무역(미쓰비시상사·미쓰이물산·스미토모상사·이토추상사·마루베니) 등 유통·서비스 부문에서 선전하고 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 일본의 진면목은 고른 업종 분포에서도 나타났다. 일본은 가정용 게임기에서부터 화학에 이르기까지 20개 업종에서 100대 기업에 진입했다. 건설·광업·조선·항공·지주회사에서만 100대 기업이 없었다. 이는 일본 경제의 저변이 그만큼 두텁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과 중국은 12개 업종에서 100대 기업을 배출하는데 그쳤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