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부왕을 만나다

[창간 15주년 기획특집 1] "기부는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것"
‘기부 영웅.’ 최신원 SKC 회장은 미국의 유력 경제지 포브스로부터 ‘기부 영웅’ 칭호를 받은 기업인이다. 최 회장은 ‘을지로 최신원’으로도 유명하다.

오랜 기간 자선단체에 ‘을지로 최신원’이라는 이름으로 거액의 기부금을 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지난 200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개인 고액 기부자를 발표했는데, 최 회장이 법인 명의가 아닌 개인 명의로는 기업인 가운데 최고 기부금을 기록했던 것이다.

그가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당시 1000만 원을 시작으로 매년 수천만 원씩 기부해 지금까지 기부액이 7억5000여만 원에 달한다.

그는 기부뿐만 아니라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나무 심기, 현충원 묘역 정화, 화성행궁 복원, 김장담그기 등의 행사를 열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2004년에는 ‘선경최종건재단’을 설립해 28개 고교, 22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장학사업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는 “‘기부 영웅’이라는 칭호가 어색하기만 하다”며 겸손해 했다.

“불교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말이 있어요. 보시를 하더라도 그냥 하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죠.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서로 돕고 살아야 행복한 세상”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 경영인들은 대부분 법인 명의의 기부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대기업 오너 경영인인 그가 개인 기부는 물론 각종 봉사 활동에 적극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그는 “선친의 영향”이라고 귀띔했다.

최 회장의 선친은 SK 창업자인 고 최종건 회장이다. 그는 “어린 시절 선친께서 어려운 이웃을 보면 항상 도와주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것이 자연스럽게 기부와 봉사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거기에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인생관도 그가 ‘기부왕’으로 불리게 된 결정적 요인 중 하나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주변을 돌아보며 서로 돕고 힘을 나누며 살아가야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기부 활동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일상에서 이뤄진다. 가끔은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즉석 모금을 제안하기도 한다. 지난해 SKC 미국 조지아 주 공장 기공식에 참석했을 때다. 당시 지역에 1주일 이상 내린 집중 폭우로 홍수 피해가 극심했다. 그는 기공식 행사장에서 즉석 모금을 제안, 3만 달러의 수재의연금을 기공식에 참석했던 주정부 관계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에게 기부 활동의 보람을 물었다. 그는 “고 최종건 회장 35주기 추모식 때 선경최종건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한 학생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고 가슴이 뭉클했다”며 “기부는 남을 살리고 나도 살리는 소중한 행위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고 회고했다.

그는 “한국 기업인들이 기부에 인색한 것은 너무나 짧은 시간 동안 비약적인 산업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성과주의에 편향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기업인과 사회 지도층의 깊은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친의 유지인 기술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술학교와 같은 교육의 장을 통해 학생들에게 폭넓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최신원 SKC 회장

약력 : 1952년생. 76년 경희대 경영학과 졸업. 87년 선경 미국 뉴욕사무소 이사. 94년 선경 전무. 96년 선경 부사장. 97년 SK유통 부회장. 2000년 SKC 대표이사 회장(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