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고공행진 왜?
![[치솟는 전셋값 어디까지] 수요·공급 ‘불일치’…집 안 사고 ‘관망’](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597.1.jpg)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권에서는 최근 들어 매매가 대비 전셋값이 70%에 육박하는 아파트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스빌 56㎡의 경우 평균 매매가가 1억5250만 원인데 비해 전셋값은 매매가의 75% 수준인 1억1500만 원에 형성돼 있다. 관악구의 관악캠퍼스 타워 82㎡는 매매가는 1억6000만 원인데 전셋값은 1억2500만 원 안팎에 이르고 있어 4000만 원 정도만 더하면 아예 집을 구매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중은 39.76%로 2005년 4분기(41.01%) 이후 4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집 없는 서민들에게 이러한 전셋값 인상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렇다면 전셋값이 거침없는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즉 전세를 원하는 수요자는 많지만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만한 전세 물량이 시장에 부족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실수요자들이 주택 구입을 미루고 대신 전세를 원하면서 전셋값이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을 이사철까지 겹쳐 오름세 완연
양지영 내집마련정보사 팀장은 “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매수 포기로 전세를 찾는 수요자가 많이 늘어난 데다 가을 이사철이라는 계절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완연한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욱이 평촌 분당신도시 등 1기 신도시는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신혼부부들이 몰리며 전셋값 상승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분당신도시의 한 공인중개사는 “주택을 구입하려던 세입자들도 집값 하락을 우려해 전세 재계약을 하거나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고종완 고려대 자산관리최고위과정 교수는 “최근 전셋값이 오르는 데는 부동산 경기 불확실성으로 자산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져 자가 구입을 미루고 전세 수요로 집중된 탓이 가장 크다”며 “게다가 2009년 이후 입주 물량이 급속히 감소하며 수급 불균형에 따른 전셋값 상승이 촉발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중소형 주택의 부족이 심각한 편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보금자리주택의 공급 확대도 전셋값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금자리주택과 2기 신도시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 공급이 증가하면서 주택 구매를 연기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이들이 집을 사는 대신 전세로 몰리면서 전셋값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세를 놓으려는 소유자들이 줄어들고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최근 상황도 전셋값 상승의 한 요인이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전체 임대 가구 중 전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지난해 2월에 60.1%를 기록한 후 점차 그 비중이 줄어들어 현재는 54.9%까지 떨어졌다.
집 소유자들이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것은 부동산 시장에 불어닥친 수익형 부동산 붐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부동산으로 시세 차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해지자 임대 수익을 노리는 투자가 점점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부동산 칼럼니스트 아기곰은 이와 관련, “상가나 오피스텔 등 전통적 수익형 부동산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주택에서 임대 수입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전셋값 상승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규정 부동산114 리서치본부장은 “매매 부진과 가을 시즌이 겹치면서 전셋값이 오르고 있지만 예년에 비해 주간·월간 단위 전셋값 오름폭이 특별히 큰 편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본부장도 “주택 시장 전반에 불안감을 키울 필요는 없지만 주요 지역 전셋값 급등이 전반적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소형 중심으로 공급 이뤄져야

그렇다면 시장 원리에 따른 공급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실질적인 방안이기도 하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은 “아파트의 경우는 공급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전세난 해소를 위해서는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등을 대량 공급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특히 대형보다는 수요가 많은 중·소형을 중심으로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기곰은 월세보다 전세를 많이 놓게 하기 위해 세금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내년부터 과세하기로 돼 있는 전세금에 대한 임대소득세 부과 방침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전세 전용 임대 사업자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들에게 월세 임대 사업자와 차별화된 세제 혜택을 주어야 전셋값 앙등을 막을 수 있다고 아기곰은 역설한다.
![[치솟는 전셋값 어디까지] 수요·공급 ‘불일치’…집 안 사고 ‘관망’](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599.1.jpg)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지난 9월 27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셋값 상승이 예년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 아니어서 별도의 전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와 함께 “지금의 전셋값 강세는 이사철이 되면 나타나는 수준”이라며 “전세 대책이란 것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전세난은 주택 수급이라는 중·장기 과제로 대응해야지 단기 안정책을 쓸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토부 장관이 현재의 전세난을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평가함에 따라 당분간 전셋값 안정을 위한 정부 대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8·29 대책에 이은 후속 대책도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8·29 대책 수립 때 시장에서 추가로 뭔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번 대책을 만들 때 각 부서에서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다 내놓으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와 함께 내년 주택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민간 택지를 차질 없이 공급해 공급 위축에 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셋값 상승의 여파가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 같은 인식은 다소 안이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당장 전세난 해결을 위해선 서민들을 위한 다세대나 다가구,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세제적 유인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양지영 팀장도 “전세대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요자들이 매매 시장으로 옮겨가게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정책적으로 세금이나 분야가 상한제 등을 더 완화하는 등 후속 대책이 잇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철 닥터아파트 팀장은 “전세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11월 공급 물량이 줄어들고 향후 더 감소할 전망이어서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내다봤다.
김재창 기자 cha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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