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식 투자를 두려워하는가

[최남철의 투자 X파일] ‘우량 주식·펀드’가 최고의 노후 대비다
필자는 최근 각종 강연회와 칼럼을 통해 ‘새로다시(Serodasi)’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늘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접어들어 무언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작은 깨달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특히 국민투자신탁의 국제부 펀드매니저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마주하게 된 외국 투자자들의 투자 행태와 국내의 투자자, 특히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패턴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목격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커다란 투자 수익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봐야만 했다. 그 결과 천문학적인 국부가 유출됐다. 산업 현장에서 피땀 흘려 일군 성과가 외국 투자자들의 손에 너무도 쉽게 넘어갔고 지금도 넘어가고 있다.

또한 필자가 최근 몇 해 동안 벤처 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 한계기업에 대한 잘못된 투자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개미 투자자들을 많이 보아 왔다. 투자의 실패가 단순히 돈을 잃는데 그치지 않고 가뜩이나 어려운 가계의 삶의 질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두 가지 경험이 필자로 하여금 ‘새로다시’ 운동을 시작하도록 하는 동인이 됐다. 개인 투자자들의 잘못된 투자 마인드와 기본을 바로 잡아 주어 성공 투자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다음으로는 주식 투자를 통해 창출한 부(富)의 일부를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데 씀으로써 ‘아름다운 부자’가 되자는 일종의 의식 개혁 운동이기도 하다.

최근 개인 투자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서 나름대로 크게 놀라는 일이 있다. 먼저 공부하는 개미 투자자들이 부쩍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없다

한번은 저녁 8시에 시작하는 야간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대부분 직장에 다니고 있는 샐러리맨들과 일부 학생들이 그 늦은 시간에 필자의 강연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주식 투자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주고받은 명함 주소에 나와 있는 몇몇 카페를 방문해 보았다. 주식 투자 전문 서적에 대한 독후감에서부터 각자가 터득한 투자 요령 및 종목 분석에 대한 의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투자에 대한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주식 투자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장기 투자하는 개미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1년은 기본이고 3년, 5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개미들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더욱이 50대 전후의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서 전업 투자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이것도 창업이라면 창업인 셈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길어진 자신의 노후 대책에서부터 자녀 교육, 출가 비용을 주식 투자를 통해 해결하려는 엄숙하고 진지한 투자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주식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에 너무도 당연히 적응해 왔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언제나 외국에 비해 주가 수준이 낮고 싼 것이 정상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시장 참가자들을 끊임없이 세뇌시켜 왔다.

그래서 우리 주식시장은 역사적으로 주가수익률(PER)이 12배를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강요된 겸손의 영역에 머물러야만 했다. 필자는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실체를 곰곰이 분석해 봤다.

우선 6·25전쟁과 분단 상황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최근의 천안함 사태로 표출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유령처럼 한국의 위험 프리미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70%를 차지하는 수출 의존형 산업구조와 여기에서 비롯된 경기·산업적 변동성(Cyclicality)이 한국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다음으로 과거의 불투명한 기업의 지배 구조 및 회계 시스템도 기업의 가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한국 저평가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12년 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혹한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들의 체질이 크게 개선됐고 경영의 투명성과 효율도 크게 제고됐다. 그 결과 상장사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에 달하고 부채비율은 85%를 밑도는 큰 변화를 이뤄냈다.

또 피나는 품질 개선 노력으로 한국의 정보기술(IT)·자동차 등 주력 수출 상품들이 더 이상 싼값에 팔리는 저가품이 아니라 당당히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년 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한국 경제와 기업들이 보여준 탁월한 저력은 바로 이러한 체질 개선을 바탕으로 이뤄진 구조적인 변화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한국 주식시장의 과도한 저평가 현상은 수긍하기 어렵다. MSCI 코리아 지수에 포함된 종목들의 향후 1년 주당순익(EPS) 증가율이 30%를 웃도는데 비해 PER는 고작 9배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세계 평균 PER가 13.3배,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평균 PER 12.8배 대비 30% 이상 저평가된 것이다. 지정학적 위험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주가 수준은 지나치게 싸다.

필자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주가 수준을 초래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증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가계 자산 가운데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17%에 불과하고 80% 이상은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으로 구성돼 있다.

그나마 금융자산 가운데 8% 정도만이 펀드를 포함한 주식 관련 자산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가계 자산의 40% 정도가 금융자산이고 그 가운데 절반이 펀드 관련 자산으로 구성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를 낙관하고 아무리 주식을 사더라도 주식시장이 만성적으로 저평가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정작 우리 국민들이 주식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우리의 자신감 결여가 싸구려 주식시장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제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경제와 기업 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확신과 자신감 회복이 선결 과제다. 그래야만 부동산에 과하게 치우친 자산 구성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봉’이 되지 말기를

더욱 안타까운 일은 주식시장이 몇 년 주기로 상투권에만 도달하면 어김없이 주식이나 펀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저가에 꾸준히 주식을 사 모은 외국인들에게 훌륭한 출구를 제공해 준다.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30조 원어치의 한국 주식을 사들였고 올해에도 7조 원어치 이상을 순매수하고 있다. 반면 국내의 기관투자가 및 개인 투자자들은 그만큼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기관투자가들도 개인들의 펀드 환매 자금을 내주기 위해 할 수 없이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고 보면 결국 개인들이 30조 원어치 이상의 주식을 팔아 치운 셈이다.

문제는 조만간 다시 주식시장이 2000을 훌쩍 넘는 강세 국면이 오면 지금 환매한 투자자들이 다시 주식시장에 몰려들 것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20여 년간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이 안타까운 악순환의 고리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외국인들은 국내 투자자들의 이 어리석은 투자 패턴을 꿰뚫고 있고 그것을 역이용해 큰 재미를 보아 왔다. 필자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 향후 2~3년 내 외국 투자자들이 투자 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큰 수익을 우리 증시에서 챙겨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한국 경제의 활력과 놀라운 기업 실적을 미리 간파하고 우량 주식을 선점해 왔다. 그 주도권을 여기서 놓을 리 만무하고 승기를 잡은 게임을 망가뜨릴 까닭이 없다. 그래서 기본적·기술적 분석을 차치하고 필자는 향후 한국 주식시장을 크게 낙관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의 펀드 환매 사태는 향후 강세장을 예고하는 바로미터와 다름없다. 제법 큰 강세장의 가운데 토막이 남아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주식이든, 펀드든, 이익이 났든, 손해가 났든 간에 주식시장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할 때다.

오히려 이 기회에 과도한 부동산 자산이나 고정금리형 상품을 줄이고 주식이나 펀드를 늘려야 할 때다. 이제는 부동산, 특히 아파트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 개인의 자산 구성에서 우량 주식과 펀드의 비중을 높이는 길이 효과적인 노후 대책이 될 수 있다.

불안하고 조급해하는 개인 투자자들이여, 좀더 긴 호흡으로 한 사이클만 참아내 보자. 이번만은 제발 외국인 투자자들의 봉이 되지 말자.


[최남철의 투자 X파일] ‘우량 주식·펀드’가 최고의 노후 대비다
최남철 증권 칼럼니스트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의 저자. 1988년 국민투자신탁 펀드매니저를 시작으로 푸르덴셜자산운용 등을 거쳐 현재 새로다시투자클리닉(cafe.naver.com/serodasi)을 운영하고 있다

serodas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