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힘든 고향길 ‘싫지 않은 이유’
한손에는 초코바, 다른 한손에는 물병. 머나먼 시골 여정 길에 어린 나에게 쥐어진 한 끼 식사다. 내 고향은 광주광역시다. 일산 집에서 광주까지 운전해 가려면 보통 일곱 시간이 걸린다.

네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고는 하지만 일곱 살짜리 딸아이와 네 살짜리 아들 녀석을 데리고 가려면 가는 중간에 두어 번은 휴게소에 들러야 하고 밥이라도 먹일라치면 한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다. 명절이면 아홉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도 더 걸린다. 출발할 때 즐거웠던 마음도 잠시, 아이들 보느라 지친 아내와 온갖 소음 속에서 운전하는 나는 슬슬 지쳐가고 이러한 지친 심신(心身) 속에 아내와 나는 작은 빌미라도 생기면 티격태격 부부 싸움을 시작한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보내면 어느 틈엔가 잠들어 있는 아이들.

기차를 타면 편한데 왜 이 고생을 해가며 차를 몰고 나왔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원인과 책임은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녹차로 유명한 전라남도 보성, 거기서도 지금은 해수욕장이 된 율포의 바로 옆 마을이다.

할머니는 아직도 그곳에 계신다. 광주로 모시기를 수차례, 하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병이 난다는 전형적인 시골 어르신인지라 지금은 고향에 계신다.

지금에 와서야, 광주에서 보성을 지나 할머니 댁까지 한 시간 반이 채 안 걸리지만 십 년 전에는 두 시간 반, 이십오 년 전에는 네 시간이 걸리던 길이었다. 아버지 어렸을 적에는 아흔아홉 고개였다는 굽은 길들이 가득했고, 보성을 지나서는 비포장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도 명절이면 예외 없이 교통대란에 예닐곱 시간은 충분히 걸렸다. 눈이 오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몇몇 고갯길에서 차들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그 길은 포기해야 한다. 이리 돌고 저리 돌아 도착하면 스무 시간도 넘게 걸린 적이 수차례.

얼마나 걸릴지 모를 기나긴 여정 속에 제대로 된 휴게소 하나 없어 중간에 끼니를 때우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어린 나에게 식사 대용으로 쥐어졌던 것은, 당시 등산을 좋아하던 아버지의 간식인 초코바 한 박스와 물.

그렇게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한밤중에 시골집에 도착하면 항상 할머니가 대청마루에 불을 밝히고 서성이며 기다리고 계셨다. 당연히 오리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위해 어떻게든 가야 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후 청년이 되어 대학 시절 최장 28시간의 고속버스 귀향 지옥을 겪으면서도 지워지지 않았고, 지금 이렇게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서도 반복해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반복된 과정에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무엇을 배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솔직히 딱히 정의할 말은 없다.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노력?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감수하는 그 무엇? 아마도 이렇게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쳐 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는 분명하다.

아버지가 내게 바라던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또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리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반복되는 수차례의 고생길에서 그 과정은 길었지만 결국 끝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저 멀리 서성이며 우리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할머니의 환한 웃음이 떠오른다. 이것이 곧 아버지의 이유였고, 나의 배움일 것이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가면 나는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긴다. 건설 회사를 다니셨던 아버지는 일요일에는 무조건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무등산에 올랐다.

두어 시간의 등산과 보리밥집에서의 맛난 식사, 목욕탕으로 이어지는 아침나절 코스는 한 가족임을 느끼게 해 주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래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는 스스로가 직접 해보며 느낄 몫이다. 이번 주에는 이른 아침에 아들 녀석과 함께 무등산에 올라야겠다.


김승욱 큐더스IR연구소장

기업 IR 관련 컨설팅사인 큐더스에서 IR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1999년 프리스코 이사를 거쳐 2001년 한양대를 졸업한 후 리딩투자증권에서 근무했다. 2004년 VIP투자자문의 감사를 맡았고 2008년부터 현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