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상반기 히트 상품

내수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그나마 회복 기조에 들어섰다지만, 이는 기술적 반등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지표와 체감 사이의 여전한 괴리감 탓이다. 정치권과 재계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늘 그렇듯 예외는 있다. 불황 위기를 오히려 호황 기회로 삼는 엘리트 플레이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비 트렌드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인식과 타이밍 전략 구사를 통해 남들이 고전할 때 매출을 더 늘리는 성공 함수를 완성했다. 요컨대 불황에서 더 빛나는 ‘히트 상품의 경제학’이다.

최근 닛케이MJ는 2010년 상반기 일본의 히트 상품을 선정·발표했다. 도쿄(관동)와 교토(관서) 상권으로 구분해 1~6월까지 인기리에 판매된 상품·서비스를 엄선한 결과다. 불황 여파 때문인지 도쿄 상권의 경우 랭킹 1위는 공란으로 남겨진 채 하위 순위만 발표됐다.

닛케이MJ는 “시장 선도의 초대형 히트 상품은 없었지만 소비자의 관심을 끈 인기 상품은 상당수”라고 총평했다. 히트 상품 개별 품목을 살펴보면 뚜렷한 범주 구분이 가능하다.

2010년 상반기 일본 소비자의 마음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소비 트렌드는 대략 △세계 조류와의 동조 △불황 코드의 여파 △과거 추억의 반추 △3040세대의 부활 △친환경 제품의 부각 등으로 갈무리된다.
[Japan] 3D TV·아이패드·추억의 상품 ‘인기’
◇ 세계 조류와의 동조 = 글로벌 트렌드와 직결된 히트 상품이다. 당장 월드컵 특수에 따른 3D TV의 판매 증가가 거론된다. 특히 일본에서만 흥행 수익 150억 엔을 기록한 ‘아바타’ 등 관련 영화의 히트가 주효했다.

3D의 경우 삼성·LG전자 등 한국 경쟁사에 비해 열세라고 알려지면서 매스컴의 특집 보도도 끊이지 않았다. 아이패드의 인기 몰이도 대단했다. 전자 서적 시대를 예고한 신예 제품답게 발매 직후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출시에 맞춰 밤샘 줄서기가 펼쳐진 풍경도 세계 조류와 비슷했다. 애플의 아이폰(iphone)에 뒤이어 각사의 제품 보급이 탄력을 받은 스마트폰도 히트 상품에 꼽혔다.

◇ 불황 코드의 여파 = 불황 코드는 1990년대 이후 재계의 효자 아이콘 중 하나다. 올 상반기에도 얇아진 지갑을 노린 기획·마케팅이 대거 선방했다. 우선 서민 음식의 선두 주자 규동(쇠고기덮밥)의 가격 인하 경쟁이 연초부터 뜨거웠다.

300엔 안팎이던 가격이 250엔까지 떨어지며 경쟁 격화를 야기했다. 프리미엄 롤 케이크도 히트 상품에 선정됐다. 백화점 등 고가 매장에서 적어도 개당 200엔은 줘야 먹을 수 있던 걸 편의점에서 150엔에 팔면서 히트를 쳤다. 약 8500개 매장을 가진 로손에서만 3000만 개 이상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 불안으로 야채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규모로 포장·판매된 커트 야채도 많이 팔렸다. 또 빅 아메리칸 시리즈로 불리며 보통 크기보다 2.5배나 큰 햄버거(맥도날드)는 당초 예상을 웃도는 판매로 인구에 회자됐다.

맛이 오래가는 껌인 스토라이트와 양털 수공예인 크래프트(Craft) 등도 불황 대응 소비 트렌드에 호응해 인기를 끌었다. 한편에선 소비 여력이 대폭 늘어난 중국 관광객의 타깃 상품으로 떠오른 220볼트 가전도 히트 상품 반열에 올랐다.

◇ 과거 추억의 반추 = 잘나가던 시절을 회상하고 싶은 소비 수요도 판매 증가로 직결됐다. 연초 NHK의 스페셜 드라마로 방송되며 고공 행진 시청률로 관심을 확인한 사카모토 료마가 대표적이다.

메이지유신의 기획자이자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는 그의 부활 욕구는 현대 일본의 한계와 바람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코드로 이해된다. 야쿠르트 아줌마로 유명한 미루미루 야쿠르트도 비슷하다.

1978년 처녀 생산 후 2005년 발매 중단까지 인기를 끌었던 이 야쿠르트가 올해 재발매되며 하루 50만 개 이상 팔려나가고 있다. 신상품 기획으로 골머리를 앓는 경쟁사를 따돌리고 추억 상품의 리메이크로 대박을 친 셈이다. 요요 열풍의 재연도 마찬가지다.

1997~99년에 2700만 대나 팔리며 대히트를 쳤다가 최근 반다이가 디자인을 조금 바꿔 출시했는데, 역시 대성공 조짐이 목격된다. 올해 목표 500만 대는 무난할 만큼 어린이 고객 외에 다양한 타깃 발굴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추억은 아니지만 화려한 과거 영광을 재연하고 싶은 욕구에 부응한 도쿄 스카이트리(634m)도 히트 상품에 뽑혔다.

◇ 3040세대의 부활 = 전자기기를 포함해 문화·유흥·음식 등 사회 전반에서 3040세대의 구매력이 급증한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문화 소비의 주력이 1020세대에서 3040세대로 옮겨진 게 특징적이다.

취업 여파로 불안해진 1020세대보다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력의 30대 이상이 소비 트렌드를 리드한다는 뜻이다. 발매 첫 주 50만 장이나 팔려나가며 10년 만에 여성 가수 최고 매출을 기록한 AKB48이 그렇다.

일명 삼촌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TV만 틀면 나올 만큼 친근한 그룹 이미지를 쌓는데 성공했다. 철저히 팬 투표에 따른 경쟁 체제를 도입해 멤버 서열을 정하는 등 아이디어도 관심 제고에 한몫했다.

사카모토 후유미라는 여성 가수도 신인류로 불리는 3040세대 덕분에 히트 상품에 선정됐다. 애절한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엔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국민 애창곡으로 부상했다.

3040세대의 부활은 필연적으로 앞의 과거 추억 반추와도 맞물린다. 실제로 미루미루와 요요의 구매 고객도 대부분 3040세대다.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자녀들에게 구매해 주려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Japan] 3D TV·아이패드·추억의 상품 ‘인기’
◇ 친환경 제품의 부각 = 친환경 제품도 히트 상품에 대거 선정됐다. 어차피 구매할 것이면 지구환경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에 맞게 소비하겠다는 트렌드다. 내수 증진을 위한 소비 부양 차원의 에코 제품 포인트 제도와 맞물려 인기를 끌었다.

지난 4월 시장점유율 50%를 돌파하며 저가격 에코 상품의 선두 주자로 떠오른 발광다이오드(LED) 전구와 포인트 수혜로 특수가 발생한 액정 TV 등이 대표적이다. 주택판 포인트 수혜 제도로 수요가 급증한 에코 내창(內窓)도 히트 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시각을 넓혀 최근 10년간의 히트 상품 트렌드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다. 올 상반기 히트 상품의 뿌리가 바로 10년 트렌드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역시 키워드는 장기 트렌드인 친환경과 고령층으로 나눌 수 있다. 불황 여파에선 다소 벗어난 미래 지향적 명분 소비, 건강 투자 등이 저류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물질적인 풍요와 다른 형태의 가치 추구가 환경보호 등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음식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는 추세다. 고령사회에 맞게 건강한 소비 트렌드를 중시하는 움직임이다.

판매 루트와 관련해선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을 통한 소비 욕구가 늘어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닛케이MJ는 21세기 유력 소비 트렌드로 인터넷 통신 판매, 건강 투자, 영상 시청 혁명, B급 식도락, 커뮤니케이션, 대의 소비 등을 꼽았다.

히트 상품의 설명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만들지 못하는 게 히트 상품이다. 당연히 장수 기업의 필수품이다. 히트 상품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 다만 열매는 달다.

히트 반열에만 올라서면 이후는 승승장구다. 히트 상품 탄생엔 천문학적인 경쟁 통과가 필수다. 매년 출시되는 엄청난 숫자의 제품·서비스 중 고작해야 단 몇 개만이 히트 상품에 뽑힌다. 더구나 일본에선 상품 수명도 아주 짧다.

신제품 선호 경향이 유난히 강하기 때문이다. 진열 제품의 교체 주기가 빠른 편의점뿐만 아니라 일반 슈퍼에서도 상품 수명은 3주일에 불과할 정도다. 신제품의 ‘다산다사(多産多死)’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트 상품은 늘 있다.

닛케이MJ는 “자세히 분석하면 히트 상품엔 뚜렷한 공통분모가 있다”며 “이른바 기술·제품기획·마케팅으로 구분되는 3원칙에 달렸다”고 밝혔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change4dre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