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드디어 재선에 도전하는 선거철이 왔다. 그런데 그를 진심으로 도와 줄 친구 한 명이 없다. 선거 자금, 조직, 홍보 대행사를 관리해 줄 유능한 참모가 단 한 명도 없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산악 단체의 회장도 1주일에 대여섯 번의 행사에 참석해 한국 산악계를 대표해 축사와 시상을 하고 어떤 때는 먼저 간 산악 동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해야 한다. 그는 참석은 하되 축사·시상·조사를 가급적 본인이 하지 않는다.
본인이 꼭 해야 하는 경우에는 아주 짧게 인사말만 하고 주된 연설은 부회장 중 한 명이 하도록 요청한다. 영예스러운 일, 남들에게서 칭송 받을 수 있는 기회마다 그는 그 자리에 나서지 않는다. 대신 그는 소중한 친구를 얻는다.
고선지 장군이 전쟁터에서 적군의 화살에 허벅지를 맞은 병사를 보았다. 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 그 병사의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손으로 뽑고 입으로 허벅지 피를 빨아 화살의 독을 뱉어 내었다.
병사는 감격해 시골에 있는 노모에게 이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알렸다. 그랬더니 그 노모가 통곡했다고 한다. 이웃 사람들이 이런 좋은 소식에 왜 통곡하느냐고 물었다. 노모는 “내 자식은 그 전쟁터에서 죽을 것입니다. 고선지 장군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대신 맞고 죽을 것이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단다.
기업의 설립자가 산악계의 그런 부회장, 고선지 장군의 그런 병사와 같은 임원 두 명만 있으면 서비스업으로는 500명의 사원으로 연간 1000억 원의 매출과 1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릴 수 있는 회사를 즐겁게 운영할 수 있다.
기업(企業)의 한자는 ‘사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터전, 마당’이라는 뜻이다. 기업의 성패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주인이 모든 사원을 육성할 수는 없다. 기업의 주인이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사람들은 임원이다. 소위 ‘내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에 대한 충성’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주인에게 충성만 하고 부하 직원들에게는 강압적인 임원이 회사에 있으면 그 회사는 쇠퇴한다. 그런 임원들은 무능한 사람들이다. 조직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다. 기업의 주인은 ‘내 사람’을 만들되 그 임원들을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하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들이 하도록 인사고과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기업주가 ‘내 사람’, 즉 사원들이 도움이 된다고 평가하는 임원을 갖게 되면 그 다음으로 그 임원이 회사 업무에 열정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주인의식’을 강요하는 기업주는 허망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주인의식을 요구하는 기업주는 사원들이 비웃는다.
‘지가 준 게 뭐가 있는데, 나를 보고 주인이 되라고 하는가?’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 아닌가. ‘주인의식’이니 ‘가족’이니 이런 해괴망측한 단어 대신에 임원들이 열정을 갖도록 도와야 기업이 성장한다.
열정은 의지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열정은 욕심이 아니다. 열정은 ‘내가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 확신에서 나온다. 수없이 그런 자문을 하고 자답을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기 신념이다. 기업주는 사석에서 회사 임원들과 “당신은(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토론해야 한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확신, 도덕적인 것이든, 감성적인 것이든, 의무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부귀영화를 제외하고) 그러한 자기 확신에서 열정이 나온다. 그 열정에 관한 사사로운 이야기를 임원들과 나누는 기업주는 행복한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사장
약력: 1947년생. 66년 경기고 졸업. 71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73년 고려대 사회학 석사. 1978년 한국리서치 설립, 대표이사 사장(현). 2002년 고려대 사회학 박사. 2007년 대한산악연맹 부회장(현). 2007년 한국장애인부모회 후원회 공동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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