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마음이 성공을 부른다-‘선(善)테크’

크리스털 진 128만 원, 큐빅 진 109만 원, 뱀피 진 76만 원. 수입산 고급 청바지 프리미엄 진(일명 ‘럭셔리 진’)의 가격이 웬만한 정장 한 벌 값보다 더 비싸다. 최근 몇 년 새 50만 원대를 넘는 ‘슈퍼 프리미엄’ 청바지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철인데도 여성들은 몸에 꽉 끼는 스키니 진을 입고 있다. 남성들에게는 눈요기를 자극해 지나가는 여성들의 몸매를 힐끔거리며 훑게 한다. 그러다 ‘남친’과 말다툼을 벌이는 커플도 있고 아내에게 ‘짐승남’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게 다 시각에 약한 ‘화성에서 온 남성’들의 성본능인데 ‘금성 여자’들은 알 턱이 없다.

청바지는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 ‘골드러시’와 함께 탄생했다. 캘리포니아에서 금맥이 터졌지만 정작 돈을 가장 많이 번 사람은 다름 아닌 청바지라는 대박 상품을 만든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였다. 그는 지금 유명 브랜드인 ‘리바이스’를 창업한 주인공이다.

리바이스의 성공은 ‘공익사업’ 때문
An advertisement for Levi Strauss & Co's copper-riveted overalls, circa 1875. The hard-wearing garments were very popular with miners in the American West. (Photo by Hackett/Archive Photos/Getty Images)
An advertisement for Levi Strauss & Co's copper-riveted overalls, circa 1875. The hard-wearing garments were very popular with miners in the American West. (Photo by Hackett/Archive Photos/Getty Images)
1829년 2월 26일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포목상 점원으로 출발했다. 열여덟 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먼저 뉴욕에 와서 자리 잡고 있던 형의 가게에서 일했다.

뉴욕의 주택가를 돌며 직물류를 판매하는 행상 일을 했다. 어느 정도 일을 익힌 그는 1853년 독립했고 골드러시의 무대인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당시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광부들을 상대로 장사하기로 마음먹고 샌프란시스코에 포목 도매상을 열었지만 매출은 기대에 못 미쳤다.

특히 천막과 마차용으로 사들인 두꺼운 천이 팔리지 않았다. 사업이 파산 위기에 빠진 그의 눈에 들어온 게 광부들이 해진 옷을 깁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때 질긴 천막 천으로 옷을 만들었는데 그게 진, 즉 청바지의 탄생이었다.

천막용 천으로 만든 바지는 질긴 옷을 원하던 광부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았다. 인디언의 전통 물감으로 푸른색도 들였다. 청바지가 탄생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제임스 딘과 말런 브랜도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청바지 패션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젊은이들은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걸치고 반항기 어린 눈빛으로 째려보던 제임스 딘에게 열광했다.

또 꽉 끼는 청바지에 하이힐을 신고 즐겁게 춤을 추던 영화 ‘그리스’에서 올리비아 뉴튼 존이 오늘날 여성들의 유행을 앞서 선도했다. 여기서 리바이스의 성공은 위기 시 ‘발상의 전환’과 스타를 활용하는 간접 홍보가 갖는 위력을 말해주는 경영 사례로도 손꼽힌다.

또 한 가지 리바이스가 글로벌 파워 브랜드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공공사업’이 꼽힌다. 유태인인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바로 전통적으로 유태인 상술의 특징인 공공사업에 앞장섰다. 그 배경에는 이익만 탐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공공사업과 자선사업으로 얻은 기업 이미지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직원들의 복지에 특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뉴욕 빈민가를 방문해 우유 공장 건설 기금을 내놓기도 했다. 이와 함께 미국 36개 도시에서 유아를 위한 살균 우유를 나눠주고 미국과 해외에 297개의 우유 살균 시설을 세웠다.

공공 위생 사업에도 앞장서 1909년 뉴저지 주에 미국 최초로 아동결핵요양소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1940년대에 의류 공장 내 인종차별을 철폐했고 회사가 커져 남부 지방으로 진출할 당시에는 흑인 노동자들도 백인과 동등한 자격으로 취직시켰다.

베풀어야 ‘사업 생태계’가 번성해

유대인들의 공공사업 마케팅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공공 마케팅 상술의 핵심은 ‘선’을 주요 가치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유대인들은 사업 실패의 근본 요인을 타인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고 타인의 단점과 결점을 감싸주지 못한 데서 찾는다. 상대를 무시하고 홀대하면 상대방도 적대적인 감정을 품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라는 것이다.
[최효찬의 문사철(文史哲) 콘서트] ‘착한 성공’의 선순환 구조 만들어라
“착한 마음은 언젠가는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공공사업을 하는 목적은 아무런 의도가 없는 게 결코 아니다. 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이지만 ‘선한 사업’을 앞세우고 간다.

즉 “선한 마음을 가지면 재물은 쉽게 들어온다”는 믿음인 것이다. 이는 요즘 말로 하면 서로 이기는 상생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비할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를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표현한다. “진정한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자신을 낮춰 아래로 흘러가는 물의 속성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친절하고 부드럽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표현하면 그들도 그 이상으로 보답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공공사업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그들의 역사에서 유래했다. 2000년 넘게 유랑민족으로 살아온 유대인들이 사회와 이웃 등 주위로부터 배제당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 속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동료’끼리 서로 돕는 것이 필요했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환자 문병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살아있는 동안 친구에게 친절을 다하라. 될 수 있는 한 손을 내밀어 원조하라.”

유대의 고전 ‘벤시락의 지혜’에 나오는 말이다. 유대인이 유랑민족 중 최고로 성공한 민족이 된 배경에는 서로 도와주고 먼저 한 손을 내밀어 원조해 준 미덕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인이 공공사업에 나서고 이를 상술에 활용하는 것은 어쩌면 유랑민족으로서의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공사업을 활용한 상술이야말로 오늘날 비즈니스 생태 환경에 가장 부합하는 트렌드인 것이다.

공공사업을 마케팅에 활용한 유명한 사례로는 중국의 동인당약국을 들 수 있다. 동인당약국은 악오강이 1669년에 세워 300년 동안 성업해 왔는데 그 성공 비결은 약재의 우수성에도 있지만 광범위한 홍보와 사회적 영향력의 확대라는 독특한 방법에 있었다.

청나라 때 베이징 성내에는 해마다 성호(城壕:성 밖을 둘러싼 못)를 하는 작업이 한 달 동안 진행됐다. 동인당약국은 이때 성문 근처 도랑이 파인 곳에 행인들의 길을 밝혀줄 초롱불을 달아 놓았다.

밤만 되면 여기저기에 ‘동인당’이라고 새겨진 초롱이 불을 밝혔다. 밤에도 밝은 길을 다닐 수 있었던 행인들은 감동도 감동이었지만 동인당이라는 세 글자에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호감을 느끼게 됐다.

동인당약국은 많은 자선사업도 했다. 여름에는 더위 해소제를 무상으로 제공했고 교육기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회복지 활동을 통해 각계각층의 관심을 불러 모으면서 그 홍보 효과를 통한 기업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동인당약국은 품질 면에서도 철저했다. “제조가 번거롭기는 하지만 감히 일손을 줄여서는 절대 안 되고 약재가 귀하기는 하지만 감히 재료를 줄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원칙을 준수해 왔다. 더 비싸지만 더 잘 팔린 것이다. 동인당약국은 오제남약국이라는 제2의 동인당약국을 낳았다. 이른바 착한 성공의 ‘선순환’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동양인과 서양인의 장사에 대한 관점에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서양인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반면 역지사지가 몸에 배어 있는 동양 사람들은 이익보다는 사람의 도리를 중시하며 향후를 위해 국부적인 이익을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안다. 그러나 유대인의 상술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청바지로 부를 일군 유대인 기업 리바이스와 중국의 동인당약국의 사례는 ‘친절은 베푼 것 이상으로 돌아온다’는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를 달리 비유하자면 이른바 ‘선(善)테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을 선순환하게 하면 결국 모두에게 이로움이 돌아온다.

사업가도 살고 사업가를 둘러싸고 있는 사업 환경도 살아나고 궁극적으로는 요즘 하는 말로 ‘사업 생태계’가 아름답게 살아나는 것이다. 얻으려고 하면 먼저 ‘착한(착하게 보이는) 마음’을 주어라.


약력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