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뱅크론 ‘재점화’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09.01.20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09.01.20
지난 6월 14일 9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이철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 등 세 명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회추위는 다음 날 어윤대(65) 위원장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할 이사후보로 주주총회에 부의하기로 결정했다. 어 후보는 오는 7월 13일 임시 주총을 통해 이사로 선임될 예정이고, 곧 이은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회장에 추대된다.

9개월 동안이나 공석이었던 KB금융지주 회장직 선출은 최근 금융계 최대의 화두였다.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등 이른바 ‘메가뱅크’ 시나리오의 중심에 서 있는 금융사가 바로 KB금융지주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 중 하나인 KB와 우리금융이 합쳐질 경우 자본금 규모로 세계 50위권에 드는 메가뱅크가 탄생하게 된다. 우리금융뿐만 아니라 산은금융지주와 외환은행도 M&A 시나리오에 오르내리는 대표적 금융사들이다.

메가뱅크론의 발단은 지난 6월 15일 어 내정자가 연 기자간담회 자리를 통해 본격화됐다. 이날 그는 “국내 은행권은 국제 경쟁력 면에서 미흡해 경쟁력을 갖춘 세계 50위권 은행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금융의 삼성전자나 현대중공업이 나와야 국가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 내정자는 구체적인 인수·합병안에 대해서도 “우리은행은 주식 맞교환 등으로 살 수 있다”면서 우리은행의 사업 다각화가 잘 돼 있어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시장에 나오면 조건을 보고 인수전 참여를 검토할 것”이라 밝혀 메가뱅크 시나리오에 불을 댕겼다.

“금융계의 삼성 만들겠다”

어 내정자는 이어진 질의응답을 통해 “메가뱅크는 당장의 관심사가 아니라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하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 수장의 말은 당장 또 다른 메가뱅크를 꿈꾸는 금융지주사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이다.

김 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우리금융이나 외환은행 등을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어 내정자가 우리금융 인수·합병전 참여를 공식화한 6월 16일 김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M&A는 대놓고 말하는 게 아니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김 회장은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전문성과 핵심 역량을 갖춘 경쟁력 있는 금융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다분히 ‘은행권의 삼성’을 의식한 발언이다.

M&A의 당사자인 우리금융지주 이팔성 회장은 느긋한 입장이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구애에 몸값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 회장 역시 민영화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지분 매각이든, 교환이든 우리금융이 종속적인 위치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선 회사 내부를 중심으로 불쾌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두 금융사가 합쳐질 경우 중복된 영업망 등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향후 갈등도 예상된다.

업계에선 KB와 하나금융의 맞대결에서 KB의 손을 들어주는 쪽이다. 우선 어 내정자가 내건 메가뱅크론은 MB 정부의 금융 산업 선진화 방안과 맥을 같이한다. 특히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 등 현 정부 최대의 외교·비즈니스 성과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메가뱅크 프로젝트는 속도를 낼 경향이 다분하다.

이른바 ‘친MB계’인 어 내정자의 성향 또한 KB가 유리한 고지를 밟고 있는 배경이다. 고려대 63학번인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정부는 예금보험공사가 가진 우리금융 지분 56.79%를 매각할 계획이다. 친정부 성향인 어 내정자가 유리한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어 내정자의 이런 성향은 금융노조와 정치권,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당장 금융노조는 6월 17일 성명을 통해 “메가뱅크는 어 내정자 개인의 희망일 뿐, 금융회사 대형화는 시너지가 없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부족한 은행권 경력, 야당과 외국인 투자자 등이 우려하는 ‘관치(官治)’ 논란 등 어 내정자의 앞길이 탄탄한 것만은 아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