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마케팅의 최전선

VVIP 마케팅은 소위 ‘대한민국 상위 1%’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VVIP 마케팅의 ‘제1 원칙’은 1%의 ‘큰손’들로 하여금 ‘특별한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무엇인가 남들과는 다른 ‘선택된 사람’으로 특별한 기분을 갖도록 하기 위해 백화점이나 카드 업체, 명품 기업 등이 벌이는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5월 10일 본점 명품관인 에비뉴엘에서만 7000만 원 이상 구매한 고객 70여 명을 경기도 여주 블랙스톤CC로 초청했다. 초대장을 받은 고객의 지난해 평균 구매액은 2억 원 안팎. 이 중 일부는 지난해 10억 원 넘게 사들인 ‘VIP 중의 VIP’다.

롯데는 ‘특별한 느낌’을 선사하기 위해 운전사가 딸린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로 고객을 모셔오는가 하면 현악 4중주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저녁 만찬도 준비했다. 800만 원 상당의 여행권과 700만 원짜리 건강검진 상품권 등의 경품도 마련했다. 롯데는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행사 전 5차례나 블랙스톤CC를 미리 방문하는 꼼꼼함도 보였다.

이처럼 ‘공’을 들이는 곳은 롯데뿐만이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연간 10억 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 대해 90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증정하는가 하면 19일짜리 ‘오리엔탈 특급열차&럭셔리 크루즈’ 유럽 여행,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그림 등 6개 상품권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창립 39주년 기념으로 고객들을 초청해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조수미 단독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기본적인 혜택 외에 VVIP 고객이 생일을 맞으면 점장이나 팀장이 직접 방문해 선물을 전달하는 감성 마케팅을 곁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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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하게 ‘모시고’도 남는 장사

백화점들이 이들 VVIP 고객들에게 신경을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극진하게 모시고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롯데가 에비뉴엘 VVIP 고객 200여 명에 들이는 마케팅 내역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롯데는 고액 구매자에게 구매액의 5~9% 만큼을 상품권으로 되돌려 준다.

2억 원어치의 상품을 산 고객은 구매액의 5% 정도를 상품권으로 받는다. 에비뉴엘 VVIP 고객들의 평균 구매액이 2억 원 안팎인 만큼 1인당 1000만 원가량을 ‘상품권 마케팅비’로 쓰는 것이다.

여기에 골프 대회와 송년 파티, 명절·생일 선물 등으로 매년 VVIP 1인당 300만~400만 원가량을 들인다. 이뿐만 아니다. 에비뉴엘 VVIP 고객은 본점 매장에 마련된 전용 라운지에서 편안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고객이 원하면 고급 차를 자택으로 보내 백화점으로 ‘모시고’ 온다. 이런저런 혜택을 모두 더하면 2억 원 구매 고객에게 투입되는 마케팅 비용은 총 2000만 원 선.

그렇다면 이들이 벌어다 주는 수입은 얼마일까. 백화점은 입점 업체들이 해당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한 매출의 평균 25% 만큼을 수수료로 받는다.

연간 2억 원가량 사들인 고객이 롯데백화점에 안겨주는 수입은 단순하게만 따져도 5000만 원에 이른다. 결국 2000만 원을 투자해 5000만 원을 버는 것이니 2배 이상 ‘남는 장사’인 셈이다.

여주은 신세계백화점 고객서비스팀장은 “구매액 상위 999명으로 구성된 ‘트리니티 고객’은 전체 고객의 0.05%에 불과하지만 전체 매출의 5%가량을 차지한다”며 “VVIP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세계와 갤러리아백화점 등 일부 백화점은 V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나이트 쇼핑’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백화점 문을 일찍 닫고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VVIP들만 쇼핑할 수 있도록 백화점을 아예 통째로 빌려주는 게 ‘나이트 쇼핑’이다. ‘나이트 쇼핑’ 때는 ‘큰손’들을 위한 공연이 열리는가 하면 메이크업 서비스도 펼쳐진다.

보통 1300명 정도의 VVIP들이 약 2시간 동안 팔아주는 매출액은 8억~9억 원에 이른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나이트 쇼핑’을 준비하는 데 이런저런 비용을 다 감안하더라도 7000만~8000만 원이면 충분하다”며 “단 2시간 이벤트로 10배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어 VVIP 고객들에 대한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 제공
[베일에 싸인 명품 비즈니스 벗기다] ‘선택된 사람들’에게 ‘특별한 느낌’ 선사
카드 업체 중에선 현대카드가 VVIP 마케팅의 선두주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 회사는 연회비 100만 원, 최대 발급 장수 9999장 한정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더 블랙’ 카드를 내놓았다.

‘더 블랙’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예로울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높인 것. 현대카드는 경제·사회적으로 엄격한 자격 기준을 제시하고 이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에게만 ‘더 블랙’ 회원 자격을 부여한다.

보통 가입을 원하는 회원이 특정 카드사와 개인에게 가장 잘 맞는 카드를 선택해 신청하는 것이 기존 신용카드의 발급 방식인데 비해 ‘더 블랙’은 카드사가 철저한 자격 기준으로 선정한 예비 고객을 초청하는 형식을 꾀했다.

‘더 블랙’ 카드 플레이트 하나하나에는 일련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 중 1번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9999번은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이다.

현대카드는 지난 4월 블랙카드 회원만을 대상으로 한 ‘타임 포 더 블랙’ 행사를 개최해 화제를 모았다.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이 행사는 세계적 경매 업체 크리스티가 진행한 모의 경매였다.

이날 행사장에는 피카소의 ‘검은 고양이’, 앤디 워홀의 ‘리즈’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들이 등장했다. 물론 진품이다. 이날 행사장에 나온 작품들의 가격만 총 2000억 원어치에 달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블랙카드 회원은 “모의로 하는 경매인 데도 진품을 걸어 놓을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이 회사 박세훈 마케팅본부장은 “VVIP 마케팅의 원칙은 ‘절대적인 차별화’다. 특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현대 블랙카드 회원의 월평균 사용액은 1000만 원. 연체율은 ‘0%’다.

현대카드는 지난 2007년 루이비통의 최고경영자(CEO) 이브 카셀을 초청해 ‘더 블랙’ 회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브 카셀 회장은 루이비통의 성공 요인과 혁신 경영, 향후 전략 등에 대해 회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했다.

그렇다면 VVIP 고객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VVIP 마케팅 전문가인 성기영 럭셔리홈갤러리 대표는 다소 엉뚱한 ‘비결’을 제시했다. VVIP들과 친해지기 위해선 먼저 밥을 사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초호화 고급 식당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성 대표는 돈이 많은 부자일수록 부담스러운 자리를 피하며 아끼는 데 익숙하다고 말한다.

저렴한 값에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발품을 팔아서 알게 된 맛집이라면 더욱 좋다고. 이와 함께 ‘유머’를 덧붙이면 더욱 VVIP 고객들과 친해질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성 대표는 VVIP 고객들을 만나면 반드시 3번의 웃음을 선사한다고 한다. 뭘 팔려고 만났는지 이미지를 주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일단 친해지기 위해 재미있는 주변 얘기로 이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일단 친구가 되고 나면 상품을 파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 성 대표의 설명이다.

강남 명품 브랜드 숍마스터 1세대인 이미선 씨는 VVIP 고객들을 공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여유 있는 자세,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억 원 하는 보석을 바로 구매하는 사람은 없어요. 저 같은 경우 고객이 잊을 만하면 전화를 하되 제품과 관련된 얘기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실컷 수다를 떤 뒤 끊기 전에 한마디 하죠. ‘언제 나오시겠어요?’”

김재창 기자 cha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