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의 최대 걸림돌 ‘비관세 장벽’

세계 최대 신용카드사인 비자가 최근 중국은행연합회(중국인롄) 카드의 해외 이용 대금 결제를 제한했다. 전 세계 회원 은행들에 공문을 보내 중국인롄(中國銀聯· China UnionPay)이 발행한 비자카드의 해외 이용 대금이 중국인롄을 통해 결제되지 못하도록 하라고 통보한 것.

중국인롄은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카드 소지자의 해외 결제 통로를 제한할 권리가 없다며 반발했다. 이어 비자와 중국인롄 두 곳의 로고가 표시된 카드의 경우 비자와 인롄 모두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이는 카드 소지자 권익의 문제이며 카드 발급자와 카드 소지자 간의 약속이라고 주장했다.

비자의 행보는 중국이 자국 내에 세운 카드 결제 장벽을 당초 약속과 달리 허물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데 대한 반발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때 2006년 말까지 외국 회사들도 전자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4년이 넘도록 지키지 않고 있다. 인민은행이 세우고 중국 은행들이 공동 소유한 중국인롄이 결제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는 것. 중국에는 이처럼 숨겨진 비관세 장벽이 적지 않다.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단순히 교역 상품 관세 인하 협상을 넘어 중국 정부의 조달 시장 규제 등 각종 비관세 장벽을 투명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박한진 KOTRA 베이징본부 부장)”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중 FTA가 13억 인구의 시장을 한국의 내수 시장으로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되려면 허물어야 할 비관세 장벽들을 짚어본다.

◇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 = 820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 정부의 조달 시장에 보이지 않는 차단벽이 세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때 이른 시일 내 정부조달협정(GPA)에 가입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6년이 흐른 2007년에야 가입 신청을 했고 그마저도 개방 폭이 적다는 이유로 미국과 GPA 회원국들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중국 정부는 오는 7월 다시 신청할 예정이지만 미국 기업들은 중국 측이 GPA 가입을 10년 이상 질질 끌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로이터통신).

중국은 GPA에 가입해 있지 않기 때문에 정부 조달 시 중국산을 우대하는 것을 WTO가 문제 제기하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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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중국은 정부 조달 시장을 자국의 기술 혁신 정책과 연계함으로써 보호 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와 일본의 JETRO는 지난 4월 각각 보고서를 내고 중국이 추진 중인 자주 혁신 정책의 일부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내에서 개발하고 특허를 등록한 기술에 한해 정부 조달 시장에서 우대해 주는 조항이나 혁신 정책의 목적과 우대 기준으로 ‘수입 대체’를 제시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중국의 지방 정부마다 최근 수년 새 독자적인 기술혁신 정책을 내놓으며 수혜 대상 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는 것도 외국 기업을 차별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하이시가 혁신 대상으로 제시한 523개 제품 가운데 2개만이 외자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었다. 장시성이 내놓은 혁신 대상 제품 475개 가운데 외자 기업이 생산한 제품은 한 건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정보 보안 제품 강제 인증제도 역시 정부 조달 시장의 또 다른 장벽으로 우려되고 있다. 조달 시장에 참여하려면 스마트카드, 방화벽, 보안 라우터 등 8개 분야 13개 보안 제품의 ‘소스 코드’를 중국 정부에 공개하도록 한 게 그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는 중국이 핵심 기술 정보인 소스 코드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보호주의일 뿐만 아니라 소스 코드를 공개할 경우 핵심 기업 비밀이 고스란히 중국 업체로 흘러들어갈 우려가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법 집행의 불투명성도 외국 기업으로서는 장벽이다. 중국은 지난 2008년 모든 경제 관련법과 규정에 대해 최소 30일간 초안을 공개해 업계의 의견을 듣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무원(중앙정부)이 지난 4월까지 최근 10개월간 내놓은 각종 행정 규제 가운데 절반 정도만이 일반에 사전 공지됐다. 그중에서 30일간 공지된 경우도 드물었다.

특히 세관 절차가 바뀔 때는 외국 기업들이 사전에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주도록 규정 발표 시점을 안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전 가격(기술이전과 원자재 수출입 가격 등)에 대한 규정 역시 지역마다 달라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호주의 철광석 업체 리오틴토 직원을 국가 기밀을 누설한 산업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가 혐의를 바꿔 기업 기밀을 유출하고 뇌물을 수수했다는 죄목으로 구속하면서 보인 불투명성도 외국 기업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비즈니스 환경으로 꼽힌다. 기업 기밀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임의적인 잣대가 동원될 수 있다는 게 외국 기업들의 불만이다.

중국이 2008년 도입한 반독점법은 자국 기업의 보호막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1위 제약 기업 화이자가 최근 중국 내 돼지 백신 사업을 매각한 것은 지난해 이뤄진 화이자와 경쟁사 와이어스의 인수·합병(M&A)을 중국 상무부가 승인할 때 내건 조건 때문이다.

미국 회사인 화이자와 와이어스 합병에 중국 당국은 합병 기업의 독점력이 커져 중국 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진다는 이유를 들어 중국 내 돼지 백신 사업의 매각을 권고했다.

중국에 반독점법이 도입된 후 이처럼 M&A가 무산되거나 조건부로 승인 받은 사례는 5건에 달한다. 인베브와 안호이저부시가 합병해 생긴 AB인베브가 지난해 중국의 간판 맥주 업체 칭다오맥주 지분 19.9%를 일본 아사히맥주에 매각한 것도 중국 당국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코카콜라의 경우 24억 달러를 들여 중국의 최대 주스 업체인 후이위안 인수에 나섰지만 지난해 중국 반독점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포기했었다.

특히 중국은 올 들어 외국 자본에 의한 중국 기업 M&A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따져보는 절차 마련에 들어갔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 마리런 브릴리언트는 “국가 안보라는 개념이 너무 모호해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사업하는 데 새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업종별로도 기술 장벽 쌓는다 = 중국이 쌓은 비관세 무역 장벽은 업종별로 다양하게 걸쳐 있다. 중국은 외국의 영화·음악·출판물 등을 수입할 때 지정된 국유 기업을 통해서만 유통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미국의 제소에 대해 WTO는 중국이 부당한 수입 규제를 하고 있다고 판결했고, 중국은 항소를 제기했지만 지난해 말 기각됐다.

하지만 중국은 WTO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 상품은 상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반 상품과 차별화된 관리가 필요하다(중국 상무부)”는 입장을 꺾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검열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구글이 중국에서 홍콩으로 중국어 인터넷 검색 사업을 이전할 만큼 인터넷 검열을 강제하고 있는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중국은 인터넷 사용자가 4억 명을 넘어선 인터넷 대국이지만 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를 차단하고 있다.
[China] ‘중국산 우대’ 여전…외자 기업 ‘속병’
유럽집행위원회(EC)의 닐리 크로에 부위원장은 인터넷 검열을 WTO 체제에서 태클을 걸어야 할 무역 장벽이라고 지목했다. 택배 시장에도 검열을 내세운 진입 장벽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10월 개정된 우편법은 50g 미만의 우편물은 민간 택배 회사가 아닌 우정국을 통해서만 배달하도록 했다.

의약 제품과 화장품 시장에서는 지역마다 인증을 위한 절차 및 검사 방식이 다르거나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2중 승인 절차가 있어 규정을 통일하고 표준화하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동차를 중국에서 생산할 때 최고 지분 한도를 50%로 제한하는 등 철강·조선·은행·증권 등 특정 업종에 대해 지분 제한을 가하고 있는 것도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꼽힌다.

비료나 농산물 수입 등에도 자의적인 규제가 동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지난 2002년만 하더라도 중국에 6억7600만 달러어치의 비료를 수출했지만 2008년엔 이 규모가 1억9300만 달러로 위축됐다.

중국 정부가 과잉공급을 이유로 수입 쿼터 등을 통해 규제를 가했기 때문이라는 게 미 정부의 인식이다. 농산물도 중국이 수확기에 있을 때는 사전에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통관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게 미국 무역업자들의 불만이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