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 몰린 주정부 ‘죄악세’ 도입 붐

한국은 지방선거 후 술·담배 등에 이른바 ‘죄악세(sin tax)’를 부과한다고 한다. 어려운 나라 살림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죄악세는 술·담배·도박 등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해로운 소비를 줄이기 위해 해당 품목에 부과되는 징벌적 성격의 세금이다.

죄악세는 최근 세금 부과의 정당성과 함께 그 명칭을 어떻게 조정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져 관심이 더했다(아직 마땅한 명칭이 없으므로 이 글에서는 그대로 죄악세로 번역해 사용한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미국의 경우는 상황이 좀더 심각하다. 12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는 연방정부나 파산 위험에 내몰리고 있는 지방정부들은 부족한 돈을 걷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숫자를 줄이고 임금을 동결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차나 과속 단속을 강화하거나 각종 행정 수수료를 슬그머니 올리는 것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안 된다. 최근엔 탄산음료와 사탕에도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른 바 소다세(soda tax:청량음료세)와 사탕세(candy tax)다.

몇몇 주에서 이런 세금을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세금을 도입함으로써 당장 피해를 보게 되는 소비자들과 관련 업체의 반발이 심하다.

◇ 사탕세 도입 잇따라 = 콜로라도 주와 워싱턴 주는 이미 6월 1일부터 사탕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사탕에 대한 정의다. 콜로라도 주 국세 당국에 따르면, 사탕은 설탕·꿀이나 다른 천연 또는 인공감미료를 초콜릿·과일·견과류와 섞어 만든 막대나 원형, 액체 형태의 ‘단것’을 뜻한다.

따라서 여기에 밀가루가 섞이면 ‘사탕’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밀가루가 들어가면 과자가 아니라 ‘음식(food)’이 된다는 논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니커즈 바’는 사탕의 정의에 부합해 세금이 붙게 되지만 비슷한 성격의 ‘킷캣(kit kat)’ 바는 면세 대상이 된다. 몇몇 주가 이 같은 정의를 만들기 위해 공동으로 2년간 연구를 진행했다.
<YONHAP PHOTO-0265> Coca-Cola Co. soft drinks sit on display at Smiths Food & Drug store in Draper, Utah, U.S., on Tuesday, Feb, 10, 2009. Coke's earning will be reported before the market opening on Feb. 12. Photographer: George Frey/Bloomberg News 

/2009-02-11 07:49:12/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Coca-Cola Co. soft drinks sit on display at Smiths Food & Drug store in Draper, Utah, U.S., on Tuesday, Feb, 10, 2009. Coke's earning will be reported before the market opening on Feb. 12. Photographer: George Frey/Bloomberg News /2009-02-11 07:49:12/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들 지방정부들은 사탕에 세금이 붙으면 아이들의 비만을 막아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수도 보완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일부 주에서는 극장에서 팝콘을 사 먹으면 세금을 내는데 사탕을 먹으면 세금을 내지 않는 구조는 불합리하다는 형평성의 논리를 내놓기도 한다.

워싱턴 주의 경우 3000개 이상 품목에 사탕세를 매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세수는 연간 약 3050만 달러(3660억 원) 정도로 예상된다. 뭉텅이 돈을 써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한마디로 ‘껌값’이지만 이것도 당장 아쉬운 게 지방정부들의 현실이다.

탄산음료세는 여러 주에서 도입을 추진했다가 실패했다. 관련 업체들이 코카콜라나 펩시같이 거대 기업들이어서 로비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라델피아나 뉴욕시가 지난주 이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했다.

워싱턴 주는 우여곡절 끝에 6월 1일부터 청량음료세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워싱턴 주에서는 이에 따라 이달부터 콜라나 스프라이트·환타·다크페퍼 등 다양한 탄산음료에 6온스당 1센트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당초 제안 법안은 온스당 1센트였지만 논의 과정에서 세금이 크게 낮아졌다.

이에 따라 12팩짜리 콜라 캔 값은 평균 4.75달러에서 1.44달러 정도 올라갔다. 이 세금은 탄산음료를 낱개로 사면 줄어들고 묶음으로 사면 더 올라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 또 지역 회사는 면세 혜택을 받는다.

워싱턴 주는 탄산음료세 부과로 연간 약 3380만 달러(405억 원) 정도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 주는 이 돈을 학교 급식 개선과 도로 보수를 위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효과 논쟁 이어져 = 관련 업계는 이 같은 세금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탕세나 탄산음료세 도입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관련 업계의 고용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건강 증진에 별 효과 없이 저소득층에게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일부 미 언론들은 이 같은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담배세에서 볼 수 있듯이 완만한 가격 인상은 소비자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 소비 억제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정부들이 업계의 로비로 세금 폭을 줄일 경우 소비량도 줄지 않고 건강도 개선시키지 못하는 결과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지방정부의 세수를 늘리는 결과만 예상된다는 것.

어쨌든 관련 업계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사탕세는 돈에 굶주린 지방정부들 사이에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해 말 일리노이 주가 처음 이를 도입한 데 이어 콜로라도와 워싱턴 주가 이를 받아들였다. 다른 주들도 이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비자단체는 사탕세 도입을 반대하면서도 마땅한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캔디유에스에이(CandyUSA)로 알려진 소비자단체의 수전 스미스 회장은 “밀가루 포함 여부를 사탕 분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너무 임의적”이라고 지적했다.

◇ 스텔스 세금 증가 = 뉴욕타임스(NYT)는 사탕세처럼 논쟁거리가 되는 세금 외에도 납세자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간접세와 수수료가 잇따라 인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스텔스 세금’이다. 국립공원 입장료나 불법 주차 단속 요금, 톨게이트 통과 요금과 각종 행정절차 요금 등이 대상이다.

지방정부 입장에선 이런 ‘스텔스 세금’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 무엇보다 법인세나 소득세처럼 경기에 민감하지 않아 안정적인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또 징수비용도 저렴하고 탈세도 적다. 소득세를 손대지 않음으로써 ‘중산층을 보호하겠다’는 약속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세 전문가인 스티븐 매튜스는 “간접세가 늘어가는 현상엔 정치가 개입돼 있다”면서 “소득세 인상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세금정책센터’는 미국 개인소득 대비 주정부 및 지방정부 세수 비중이 지난 10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 정부들이 세수 확보를 위해 이렇게 ‘꼼수’를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은 그야말로 절박하다. 미국 50개 주의 내년 예산 부족액은 1210억 달러에 달한다. 예산 부족액이 올해보다 18% 늘었다.

대부분의 주 정부가 공립학교 지원 예산을 깎고 의료·복지 혜택인 메디케이드(Medicaid) 예산을 줄이고 공무원 고용도 동결하고 있다. 하와이 주는 공무원에게 매달 사흘씩 강제 휴가를 실시해 14%의 임금 삭감 효과를 낸다.

캘리포니아 주는 주립공원 200개를 폐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일리노이 주는 저소득층 장례식 지원금 1500달러를 주지 않기로 했다. 37곳의 주지사를 뽑는 지방선거가 6개월 앞이지만 세금과 수수료 인상에 나선 주정부가 많다.

◇ 유럽도 마찬가지 = 미국뿐만이 아니다.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유럽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핀란드도 국민 건강 증진을 명목으로 사탕과 청량음료세를 부활시켰다. 프랑스는 환경 개선을 이유로 탄소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프랑스의 한 납세자 단체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2007년 집권한 이후 최소한 20가지의 새로운 세금이 도입됐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정부는 어선용 디젤 연료를 보조하기 위해 가재나 게, 새우 등 갑각류에도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고 이 단체는 주장했다. 북아일랜드는 길거리에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개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룬다는 명목으로 애완견 등록비를 5파운드에서 50파운드로 인상했다. 덴마크는 여러 가지 비만 유발 식품들에 대한 건강세를 신설했을 뿐만 아니라 여행사와 부동산 관리 회사 등에 대한 면세 혜택을 폐지했다.

영국은 지난해부터 항공료에 환경세를 부과했고 오는 11월에 이를 추가 인상할 계획이다. 비판론자들은 이 세금이 이름만 ‘환경세’일 뿐 재무부로 곧장 들어간다고 지적한다. 영국은 또 지난 1월 동물의 건강 증진을 위한 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가축 소유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 초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평균 부가가치세율은 2008년 19.5%에서 지난해 19.8%로 늘어났으며 올해나 내년엔 그 비중이 2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채플힐(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수진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