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에 주목받는 맥도날드의 철수 전략

일본맥도날드의 하라다 에이코 사장(CEO)은 지난 2월 2009년도 결산 실적 설명회장에서 깜짝 발표를 했었다. “올해 안에 전국 점포의 10%에 해당하는 433개점의 문을 닫겠다.”

설명회장이 술렁였다. 일본 외식 업계에서 점포 폐쇄는 사실 뉴스가 아니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소비 인구 감소와 내수 침체로 일본의 외식 업계는 적자 점포를 정리하는 게 붐이다.

그러나 일본맥도날드 하라다 사장의 점포 철수 선언은 이례적이었다. 매출과 이익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결산 실적을 발표하면서 철수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일본맥도날드의 2009년 실적은 사상 최고치였다. 작년 일본의 외식 업계는 2008년 가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몰아친 경제 위기로 소비가 급감하면서 실적이 추락했지만 일본맥도날드만큼은 달랐다.
[Japan] ‘이길 때 철수’…호실적 속 점포 닫아
역대 최대인 5319억 엔(약 6조3000여억원) 매출에 전년 대비 27% 증가한 232억 엔(약 2800억 원)의 경상이익을 기록했다. 일본맥도날드는 2008년에도 사상 최고 이익을 기록했었다.

2008년 당기순이익은 123억 엔으로 전년에 비해 58.5% 증가했다. 매출액도 4063억 엔으로 2.9%가 늘었다. 2년 연속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린 셈이다.

일본맥도날드의 점포 철수는 경영 한계상황에 봉착해 점포 정리 등 구조조정을 하는 일반 기업의 철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남들은 코너에 몰려 철수를 결정하지만 일본맥도날드는 잘나갈 때 빠지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사업 확장도 시기가 중요하지만 철수야말로 타이밍의 게임이라는 게 하라다 사장의 지론이다. 그는 “지난 6년간 오늘 같은 철수의 기회를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본 경영계에선 일본맥도날드의 점포 철수 전략이 화제가 되고 있다.

◇ “6년간 오늘을 기다렸다” = 하라다 사장이 일본맥도날드 경영의 지휘봉을 잡은 건 2004년이었다. 일본맥도날드가 1998년 이후 공격적인 점포 확대의 후유증으로 2년 연속 적자의 늪에 빠져 채산성이 낮은 점포 정리에 한창이던 때였다. 일본맥도날드는 당시 적자 점포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일본맥도날드의 사장으로 취임한 하라다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점포 정리 중단’을 지시했다. 회사 안팎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하라다 사장은 경영이 악화돼 기초 체력이 약한 상황에서 점포 폐쇄를 지속할 경우 회사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점포 철수도 때가 있다는 그의 철학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하라다 사장은 일단 점포 수를 유지하면서 점포당 매출액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여기엔 2단계 전략을 구사했다. ‘1단계는 손님 수를 늘린다. 일정 규모로 손님이 늘면 2단계로 제품 가격을 올린다’는 것이다.

하라다 사장은 2005년부터 개당 100엔(약 1200원)의 비교적 싼 메뉴를 늘려 손님을 끌어들였다. 장기 경기 침체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일본 사람들은 맥도날드로 몰렸다.

이렇게 해서 일정 손님 수를 확보한 다음엔 가격을 슬슬 올렸다. 실제로 일본맥도날드는 2006년부터 60% 이상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일단 맥도날드의 고객이 된 사람들은 가격을 약간 올리더라도 떠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하라다 사장의 절묘한 2단계 전략은 먹혀들었다. 가격을 올려도 맥도날드를 찾는 고객 수는 줄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본맥도날드의 현재 점포당 평균 매출액은 2004년에 비해 4배로 뛰었다. 이렇게 체력을 비축한 뒤 하라다 사장은 마침내 6년 동안 기다렸던 점포 철수라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한 것이다.

◇ 흑자 점포도 철수한다 = 도쿄 세타가야구 후타고타마가와 전철역 앞 맥도날드 매장은 언제나 줄을 서기로 유명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전철역 바로 앞에 점포가 있는 데다 인근에 경쟁이 될 만한 패스트푸드점이 없었다.

이 때문에 도쿄 시내에서도 손꼽히는 흑자 맥도날드 점포였다. 그러나 이 점포는 4월 중순 폐쇄됐다. 역 주변의 재개발이 계기였지만, 주된 이유는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점포로서의 입지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본맥도날드가 올해 철수를 결정한 433개 점포의 연간 매출액은 400억 엔(약 4800억 원)에 달한다. 이 중엔 흑자를 내는 점포도 100개가 넘게 포함돼 있다. 점포 폐쇄 기준이 흑자를 내느냐, 적자를 내느냐와 같은 당장의 실적이 아니란 얘기다. 그러면 무엇일까. 하라다 사장이 제시한 맥도날드 점포의 폐쇄의 기준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주방을 늘릴 공간적 여유가 없어 메뉴가 제한적인 매장이다. 이 같은 매장은 앞으로 전략 메뉴 투입에 따른 점포 확대의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둘째,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점포로서의 입지가 적합하지 않은 매장이다. 일본맥도날드는 철저히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콘셉트에 맞지 않는 매장은 필요 없다는 게 하라다 사장의 생각이다.

셋째, 서비스 품질을 충족하지 못해 브랜드 이미지를 해치는 매장이다. 고객들의 서비스 만족도가 떨어지는 점포는 맥도날드 전체의 이미지에 타격을 줘 매출보다 더 큰 손실을 초래한다고 본 것이다. 결국 일본맥도날드의 점포 철수 기준은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맥도날드다움’을 중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라다 사장은 “과거처럼 점포 수를 늘리는 양적 경쟁은 의미가 없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강해지기 위해 ‘선택과 집중’, 즉 ‘철수와 집중’을 철저히 하겠다는 얘기다.

일본맥도날드가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감안해 점포 철수의 규모를 정교하게 짠 것도 그래서다. 일본맥도날드는 올해 점포 정리에 따른 특별 손실 규모를 120억 엔(약 1400억 원) 정도로 잡고 있다. 일본맥도날드의 작년 당기순이익(128억 엔)을 넘지 않는 선이다.

점포 철수를 하더라도 최소한 적자를 보지 않는 범위에서 하겠다는 의미다. 일본맥도날드 하라다 사장의 철수 전략에 대해 일본의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지금의 성공을 지키는, 즉 수성(守城)을 위한 움츠리기가 아니라 더 힘찬 공격을 위한 구조조정”이라고 높게 평가한 이유다.

◇ 철수를 막는 5가지 장벽 = 일반적으로 기업 경영에서 철수는 공격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공격의 기회를 잃으면 승리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하지만 철수의 타이밍을 놓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업 철수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일본맥도날드처럼 가장 잘나갈 때 철수하는 건 더욱 어렵다. 성공의 타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데다 사내 반발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Japan] ‘이길 때 철수’…호실적 속 점포 닫아
성공에 도취해 사업 철수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회사가 정말 망해버린 케이스는 일본에서 드물지 않다. 시골 야채 가게에서 출발해 종업원 2만8000명의 세계적인 유통 그룹으로 도약했다가 1997년 파산한 일본의 야오한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야오한은 중국 등 해외 사업에서 승승장구해 세계 16개국에 450개의 슈퍼마켓을 운영할 정도로 덩치를 키웠다. 문제는 일본 사업이 1995년부터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와다 가즈오 사장은 채권은행으로부터 “일본 사업을 매각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의 뿌리인 일본 유통점을 포기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구조조정을 두려워한 직원들도 사업을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며 말렸다.

그러나 결단이 늦어지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야오한은 결국 1613억 엔의 부채를 안고 도산했다. 올해 81세가 된 와다 전 사장은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좀더 일찍 일본 사업 철수를 결심했다면 회사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기업 경영에서 다음과 같은 말 다섯 가지가 철수를 막는 살인 문구라고 소개했다. △‘규모가 작아지면 라이벌 기업에 질 수 있다.’ △‘이 사업은 우리 회사의 DNA다.’ △‘조만간 반드시 이익이 난다.’ △‘이 사업은 시너지 효과가 있다.’ △‘철수하면 사원들은 어떻게 하나.’ 이런 장벽을 넘어 과감하게 ‘철수와 집중’에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