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정부가 요금을 올려준다면 우리야 고맙죠.” (한국가스공사 관계자)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관련 공기업들은 은근히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을 바라는 눈치다.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에너지가 많아 손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력은 판매 가격이 원가의 89.2%에 불과하다. 한전이 기업체에 100원어치의 전력을 공급하면 10원80전을 손해보는 구조다. 한전 입장에선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셈이다.
연휴 나들이 차량 증가로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의 주차장 만차로 도로 나들이객들이 갓길에 주차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100521....
연휴 나들이 차량 증가로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의 주차장 만차로 도로 나들이객들이 갓길에 주차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100521....
6·2 지방선거가 끝나면서 공공요금발 물가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원가 구조에 상관없이 공공요금 인상은 거론조차 하기 어려웠다.

경기 침체기에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는 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공요금이 인상될 경우 여당의 득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기가 꾸준히 회복되고 있고 선거도 끝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큰 부담 없이 공공요금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지식경제부는 가스요금 원가연동제를 이르면 7월부터 다시 시행할 계획이다. 가스요금 원가연동제는 2개월마다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의 변동분을 판매 가격에 반영하는 제도로 1998년 도입됐지만 2008년 초 물가 상승 폭이 커지자 그해 3월부터 시행이 중단됐다.

최근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원가연동제를 다시 시행할 만하다는 게 지경부의 입장이다. LNG 수입 가격 이하로 가스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가스공사가 입은 손실도 4조3000억 원에 달한다.

지경부는 원가연동제 재시행과 함께 가스요금 인상도 검토하고 있다. 가스 수요가 많은 겨울철 요금을 여름보다 비싸게 책정하는 계절별 차등 요금제도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전기요금 인상 논의도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올해 안에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원가 구조를 봤을 때는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가스·대중교통 요금 인상 전망

고속도로 통행료 역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2006년 2월 4.9% 올린 후 4년 넘게 그대로다. 각 지자체들은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의 경우 2007년 4월 이후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올리지 않고 있어 올해 중 인상 논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상하수도 요금과 쓰레기봉투 가격 등도 지자체별로 인상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재정 건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공기관의 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공공요금 인상론의 근거 중 하나다. 일부 공공기관의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고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공요금을 올려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가스 등 에너지는 요금을 인상할 경우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기대돼 정부의 녹색 성장 기조와도 맥이 닿는다.

문제는 공공요금 인상이 소비자물가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올 들어 이상 기온에 따른 채소와 과일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2%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공공요금이 묶여 있는 덕분이다. 1월부터 5월까지 공공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대를 유지했다.

공공요금 인상은 다른 부문의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통행료가 인상되면 고속버스 요금과 화물차 운임 등도 뒤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 전기·가스 요금이 비싸지면 기업의 비용 부담이 늘어 소비자 판매 가격이 오를 수 있다.

5월 한 달 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것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수입 업체들은 환 헤지를 하지 않고 환율 상승분을 그대로 판매 가격에 전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환율 상승은 수입품의 가격 상승으로 직결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석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가격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때는 함께 상승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하락할 때는 반드시 하락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가격은 한 번 오르면 좀처럼 하락하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 폭이 커질 경우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이래저래 힘들어지게 됐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