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청년 실업이 화두다. 대학을 졸업한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좌절하고 방황한다. ‘성장 없는 고용’이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도 있고 개인의 능력 탓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벤처 1세대’로 불리는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의 생각은 확고했다.실업 문제의 80%는 개인 탓이라고 조 회장은 단언했다. 불굴의 도전 의식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 현실에 당당히 맞선다면 실업 문제도 풀지 못할 게 없다는 조 회장을 만나 청년 실업의 문제와 해법, 그리고 비트컴퓨터 창업 이후 30여 년을 관통해 온 그의 경영 철학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선 2000년대를 전후해 우리 사회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요즘 흔히 말하는 스펙이 괜찮으면 취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정보화·고도화 사회로 급속히 변화했습니다.
기술의 깊이가 심화되고 적용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첨단 기술의 사이클도 짧아졌습니다. 이처럼 변화가 빠른 사회에서는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스펙보다 ‘스킬’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스킬을 개발할 수 있을까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그쪽에 전력투구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파고들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소프트웨어 시장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요즘 애플의 아이폰이 히트를 치고 있잖아요.
핵심이 바로 소프트웨어잖아요. 그런데 요즘 젊은 20대들은 이쪽 시장을 제대로 파고들지 않아요. 힘드니까요. 물론 쉽지 않지요. 하지만 쉽지 않은 만큼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이건 제 경험이지만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일정 궤도에 올라서면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 수준까지 가 보자는 것이죠.
스펙과 스킬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하셨던데요.
네 가지로 나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스펙도 좋고 스킬도 좋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창업을 하든 글로벌 기업에 취직을 하든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100%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최고의 인재라고 할 수 있죠.
두 번째는 스펙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스킬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요즘과 같은 시대에서는 창업과 취업 양쪽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다음은 스펙은 좋지만 스킬이 부족한 사람인데요, 안타깝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태백’이 유력합니다. 스펙이 취업을 보장해 주지는 않으니까요. 마지막은 스펙도, 스킬도 내세울 게 없는 경우인데요,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백수 확정이지요(웃음).
20대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발상의 전환과 과감한 도전 정신이죠. 전 대학교 3학년이던 1983년 8월 창업을 결심하고 비트컴퓨터를 창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학생 창업 1호’였죠. 20대에는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해도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거의 없잖아요. 20대 때 도전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저도 그냥 평범한 대학생으로 졸업하고 이후에도 그냥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았을 겁니다.
창업 당시 이야기를 좀더 상세하게 들려주시죠.
당시 대학생이 창업한 것도 화제였지만 호텔에서 창업한 것도 상당한 뉴스가 됐어요. 호텔 창업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텔을 사무실처럼 쓰면 일단 출퇴근에 들어가는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일반 사무실에서 일할 경우 하루 12시간 정도를 연구에 투자할 수 있지만 호텔에서는 이보다 5시간이나 많은 17시간을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래서 사무실보다 무려 6배나 비싼 호텔 스위트룸을 빌려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2년 반을 호텔에서 보냈는데 그 기간 동안 상당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발상의 전환으로 창업에 성공한 케이스죠.
평소 대학생들에게 ‘프로젝트를 하라’고 강조하셨는데요.
프로젝트라고 하면 뭔가 거창하거나 큰 그림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쉽게 접근하면 됩니다. 무엇이든 주저하지 말고 해 보라는 말입니다. 예전에 공자님이 논어 첫 구절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저는 이 구절을 ‘학이시용지 불역열호(學而時用之 不亦說乎)’로 바꿔 볼 것을 제안합니다. 공자님 당시 시절에는 배우고 익히기만 해도 됐지만 현대사회는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배운 걸 직접 실전에서 활용해 보자는 것이죠. 작더라도 내가 배운 것을 응용하고 실천해 보는 것, 이게 바로 프로젝트입니다.
기업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신데요. 평소에 전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 능력에 비해 현재 제가 갖고 누리고 있는 게 많다는 생각 말이죠. 그렇다면 그게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 사회가 다 저에게 준 것이라고 봅니다. 기업인의 목적이 기업을 설립해 고용을 창출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데 있지만 이것이 다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업가는 돈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사회와 더불어 발전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회로부터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목표 의식도 반드시 있어야겠지요.
사실 비트컴퓨터가 창립 후 27년간 꾸준히 버텨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철학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베풀면 다 그게 돌아오는 법이라는 걸 많이 느낍니다. 이게 또 기업이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어요.
사재를 털어 만든 조현정재단이 어느덧 설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재단은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학생들을 주로 선발해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학금을 받기 위해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이는 청소년기에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켜나갈 굳건한 의지가 있는 도덕적인 인재를 선발해 키우겠다는 취지 때문입니다.
올해 12기까지 모두 190명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았는데 조현정재단 출신 학생들끼리는 정기적으로 모임도 갖는 등 유대 관계가 남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재단이 우리 사회에 좀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아직은 덜 그런 것 같아 좀 안타깝습니다.
평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이후 전개 과정이 달라지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데 대해 우리 회사 일부 직원들은 더러 의아해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는데 본의 아니게 미안한 생각도 들어요(웃음).
약력 : 1957년 경남 김해 출생. 83년 비트컴퓨터 창업. 85년 인하대 전자공학과 졸업. 97년 연세대 보건대학원 보건환경 고위정책과정 수료. 2003~06년 기술거래소 이사장. 2005~07년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 조현정학술장학재단 이사장(현). 비트컴퓨터 대표이사 회장(현).
김재창 기자 cha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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