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요즘 경기도 과천 기획재정부 청사를 드나들다 보면 곳곳에서 난(蘭)을 볼 수 있다. 차관급부터 국장급까지 승진 인사가 줄을 이으면서 여기저기서 축하하는 의미로 난을 보내오기 때문이다. 최근 승진한 간부의 방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화분이 가득 차 있다.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이 같은 ‘난 행렬’이 벌써 넉 달째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부의 국장급 이상 인사는 지난 2월 시작됐다. 구본진 차관보(재정업무관리관)가 정책조정국장에서 승진한 것을 시작으로 하성 미래전략정책관과 은성수 국제금융심의관이 임명됐고 홍동호 재정정책국장과 남진웅 정책조정국장이 지금의 자리에 온 것도 2월이었다.

이때만 해도 재정부 간부 인사가 이토록 장기화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인사 적체가 심하기는 했지만 특별히 빈자리가 생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사 폭이 커진 건 김교식 전 기획조정실장이 여성부 차관으로, 윤영선 전 세제실장이 관세청장으로 각각 승진하면서부터다.

2월 초 사임한 이성한 FTA 국내대책본부장의 자리까지 합쳐 1급 간부직이 세 개나 비면서 후속 인사가 불가피해졌다. 후임자가 빨리 임명됐다면 인사가 늘어지지 않았겠지만 김 차관과 윤 청장, 이 본부장이 떠난 자리는 4월 중순이 돼서야 채워졌다.

1급 인사가 이뤄지고 나니 이번에는 차관급에서 빈자리가 생겼다. 허경욱 전 제1차관이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노대래 차관보가 조달청장으로 각각 발령이 난 것. 그나마 제1차관 자리에는 임종룡 전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이 바로 임명됐지만 재정부의 거시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차관보 자리는 5월 초 강호인 전 공공정책국장이 임명되기까지 보름 이상 비어 있었다.

인사 장기화로 유·무형 손실 커

2~3월에 생긴 빈자리는 4월에 채워지고 4월에 생긴 빈자리는 5월에 채워진 것이 요즘 들어 재정부에 난이 끊이지 않게 된 이유다. 다행히 주영섭 세제실장이 남겨 놓은 조세정책관과 강호인 차관보가 떠난 공공정책국장 자리는 후속 인사가 2주 이내에 이뤄져 업무 공백이 길지 않았다.

그러나 재정부 고위직 인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성장기반정책관과 성과관리심의관은 여전히 비어 있고 백운찬 조세심판원장이 떠난 재산소비세정책관 자리도 채워야 한다. 게다가 국장들 중 일부는 외청장 등의 자리를 알아보고 있고 이 틈을 타 외곽에 나가 있는 인사들 중 일부가 복귀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국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정부의 인사가 장기화되는 사이 일어났을 유·무형의 손실이다. 재정부는 이미 1월부터 개각설을 비롯해 고위급 인사 얘기로 술렁였다. 연초부터 거의 반년 가까이 재정부 공무원들은 윗선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윤증현 장관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기도 한다. 발탁과 파격 인사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윤 장관처럼 지나치게 안정에 초점을 둔 인사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칫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부서의 1인자 자리가 비었을 때 2인자를 그대로 1인자에 앉힌 것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주영섭 전 조세정책관이 세제실장으로, 임해종 전 공공혁신기획관이 공공정책국장으로 승진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멀리서 데려올 것도 아니면서 시간만 길게 끌었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일부에서는 재정부 인사가 늘어지는 것을 보고 그만큼 인재가 없다는 방증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나온다. 여러 사람을 놓고 누구를 고를까 고민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적임자가 없어서 여기저기서 찾다 보니 인사권자의 결정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재정부가 할 일은 일일이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다.

지금의 경기 회복세를 꾸준히 이어질 수 있도록 거시경제 전반을 관리해야 하고 우리나라가 그리스나 포르투갈과 같은 지경에 처하지 않도록 재정 건전성도 높여가야 한다. 공공기관 선진화와 서비스업 선진화 등 해묵은 과제도 아직 미제로 남아 있다.

이제 인사에 대한 관심은 접고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때다. 재정부 공무원들이 국가 경제만 잘 이끌어 준다면 재정부 청사는 굳이 난이 없더라도 충분히 향기로울 것 같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