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 중국 관광객에 ‘손짓’

<YONHAP PHOTO-0332> Office workers eat bento lunchboxes in Tokyo, Japan, on Friday, June 5, 2009. Japanese men are bringing lunch to work as the deepest postwar recession shrinks their paychecks and pocket money. Photographer: Robert Gilhooly/Bloomberg News/2009-06-06 08:21:08/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Office workers eat bento lunchboxes in Tokyo, Japan, on Friday, June 5, 2009. Japanese men are bringing lunch to work as the deepest postwar recession shrinks their paychecks and pocket money. Photographer: Robert Gilhooly/Bloomberg News/2009-06-06 08:21:08/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도쿄 도시마구에 사는 직장인 야나이 노조무(48) 씨는 부인과 백화점 쇼핑을 가본 지 5년이 넘었다. 과거엔 주말마다 아들 2명 등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부인과 백화점에 갔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대학 학비와 부인과의 노후를 생각하면 백화점에 갈 여유가 없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은 10년 가까이 동결됐고 예상 연금액은 계속 줄고 있다.

일본의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장기 경기 침체와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중산층이던 사람들이 저소득층으로 속속 전락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확산은 중산층 붕괴를 부채질한다. 중산층의 감소는 일본의 내수 소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든다. 특히 백화점은 주요 고객층을 잃어 매출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내수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근원적 성장 전략 없어 관광객을 통해 소비만 자극하는 것은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중산층, 빈곤층으로 전락 = 일본의 중산층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것은 통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일본은 경제의 장기 불황 여파로 국민들의 소득이 감소하면서 연간 수입이 500만~900만 엔(약 6000만~1억800만 원)인 중산층 가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중산층 가운데 연수입 650만~700만 엔대의 가구는 완만하게 줄고 있지만 800만~900만 엔대 가구는 18%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이 높을수록 감소 폭이 커 연수입 1500만 엔 이상의 상류층은 30%, 1000만~1500만 엔대는 19% 각각 줄었다.

중산층 이상은 감소하고 있지만 연간 소득 200만~400만 엔인 저소득층 가구는 최근 10년간 50% 이상 급증했다.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가구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중산층 붕괴가 가속화되는 것은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근로자들의 수입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현재 근로자의 연간 명목 수입은 정점이었던 1997년에 비해 10% 정도 줄었다. 또 연금 외엔 특별한 수입이 없는 고령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령에 따른 임금 증가세가 둔화된 데도 원인이 있다. 25~29세 남성의 임금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1985년 당시 45~49세는 209, 50~54세는 222이었다. 회사에 입사한 지 20년이 넘으면 임금이 2배로 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2009년엔 45~49세가 179, 50~54세가 183에 그쳤다. 20~25년이 지나도 임금이 두 배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연령에 따른 임금 상승 둔화는 젊은 층이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게 해 대출을 받아 주택이나 자동차를 살 생각을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노후를 걱정해 중년층이 소비를 억제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 2009년 현재 30세 미만의 주택 소유 비율은 19.1%로 전년 대비 5.2%포인트 줄었다.

◇ 내수 얼어붙어 = 중산층이 감소하면서 일본 경제는 심각한 수요 부진으로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에선 중산층이 전체 가구 소비의 40%를 담당했었다.

특히 중산층 이상이 많이 이용하는 백화점 업계가 고전 중이다. 지난해 일본의 백화점 매출액은 13년 연속 감소해 1984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지난해 가계 조사에서는 의류·신발 구입비가 2000년에 비해 26%, 교통비는 19% 감소했다. 전체 소비지출 감소율인 8%를 크게 웃돌았다.
내수 활성화 ‘대안’…비자 발급 ‘확대’
자동차 판매도 계속 줄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 신규 등록 대수는 2000년 405만 대에서 2009년 292만 대로 줄었다. 특히 고급 차 비중이 높은 수입차는 27만 대에서 9년 동안 17만 대로 감소했다. 반면 유니클로나 맥도날드처럼 저소득 가구를 상대로 한 박리다매 업체는 분야를 막론하고 큰 폭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빈부 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1960년대 고도성장 시대에 나온 ‘1억 총(總)중류’란 말은 2000년대 이후 통용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작년 10월 일본의 상대적 빈곤율(중간층 소득의 절반 이하를 버는 국민의 비율)이 15.7%라고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터키·미국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수치다. 하지만 부자를 포함한 중상층 이상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그동안 정확한 수치가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은 비정규직 급증, 가계소득 감소, 소비성향 저하 등의 구조적 악순환에 빠져 있어 당분간 내수가 회복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80년대 평균 4.7%에서 1990년대 이후 1.2%로 급락했다.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0.5~0.8%포인트 수준을 꾸준히 유지한 반면 내수 기여도는 1970년대 3.8%포인트에서 1991~2008년 중 0.6%포인트로 하락했다.

일본이 내수 부진의 늪에 빠진 것은 비정규직 증가도 큰 원인이다. 일본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1990년 20.2%에서 2008년 34.1%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취업자 수가 늘어나더라도 전체 가계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일본의 전체 급여소득 증가율은 2001~2008년 연평균 마이너스 0.3%에 그쳤다.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는 중산층의 수입 복원을 위해 자녀 수당, 고교 수업료 무상화 등 직접적인 가계 지원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지 않고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이와종합연구소는 “기업의 활성화를 포함한 종합적인 성장 전략을 신속하게 실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중국인에 비자 확대 = 일본 정부는 내수 시장 자극을 위해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을 크게 완화할 방침이다. 일본의 외무성·국토교통성·법무성 등 관계 당국은 중국인 개인 관광 비자 발급 때 적용되는 소득 제한인 연수입 25만 위안(약 4000만 원) 이상을 오는 7월 1일부터 3만~5만 위안으로 크게 낮추기로 했다.

또 현재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3개 도시에만 있는 비자 발급 사무소도 충칭·선양·칭다오·다롄 등 중국 내륙과 동북부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당초 중국인 불법 체류를 염려해 여행 안내자가 동행하는 4인 이상 단체 관광객에만 관광 비자를 발급하고 일본 입국을 허용했다. 이후 중국인 관광객 유치 확대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는 연수입 25만 엔 이상인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개인 관광 비자를 내주기 시작했다.

개인 관광 비자 허용 이후 올 3월까지 개인 관광객은 1만6000명에 달했지만 그중 불법 체류한 사람이 없어 추가적인 완화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일단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자 △관공서 대기업의 과장급 이상 △연수입 3만~5만 위안의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사람 등의 조건을 정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방침이다.

또 일본 관광 비자 신청을 대행할 수 있는 현지 여행사도 현재 48개사에서 200개사 정도로 늘려 줄 계획이다. 현재 중국에서 가구별 가처분소득이 5000~3만5000달러(약 580만~4030만 원)인 중산층은 2008년 말 현재 4억3700만 명이다.

13억 명인 중국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또 일본 국제관광진흥기구에 따르면 2007년 조사에서 중국인 관광객의 쇼핑액은 미국이나 유럽 각국의 관광객을 누르고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관광 비자 허용 확대로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 침체에 빠진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소득 향상이 아니라 관광객 유치에 따른 내수 활성화는 지속성이나 건전성 측면에서도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