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경제학자 이슈별 심층 분석

이번 유럽발 금융 위기와 관련해 이코노미스트와 경제학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일단 안정화에 들어섰지만 아직 위험 요소는 잠재하고 있고 불씨가 다시 발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재정이 취약한 다른 유럽 나라로의 점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었지만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미국과 일본으로의 확산은 차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반적으로 이번 금융 위기와 관련해 비관론이 대세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유럽발 금융 위기가 한국에 직접적으로 주는 악영향은 미약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유럽발 금융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이하 강 연구원)= 직접적으로는 남유럽 국가들의 방만한 재정 운용과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됐지만 근본적으로는 유럽 단일 통화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세계경제의 위기 국면에서 표출된 것이다.

재정 적자 한도 국내총생산(GDP)의 3%, 국가 부채 한도 GDP의 60% 준수라는 마스트리히트 조약만으로 개별 국가의 재정 운용을 엄격히 감독하는 것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재정 문제가 더 심화된 것이다.

또한 유로존 내에서 독일 등 북부유럽과 남유럽 간의 경제가 수렴되지 못했던 것도 한 원인이다. 예를 들어 남부유럽의 물가상승률이 북부유럽에 비해 통합 후 1%포인트 이상 격차가 유지됐는데, 이는 남부유럽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저금리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어 자산 거품, 부채 증가 현상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국채상환 시점 '째깍째깍'…또 다른 고비
이정우 경북대 교수(이하 이 교수)
= 이번에 문제가 된 남유럽 여러 나라의 재정은 2007년까지는 비교적 양호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이들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져 재정수입이 줄어들었고 그 대신 불황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재정수지가 급격히 악화됐다.

따라서 이번 세계적 경제 위기가 유럽 금융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리스의 경우에는 그 이전에도 오랫동안 적자 재정의 역사가 있고 국가 부채도 120%에 달하는 높은 수준인데, 이는 인기영합주의적인 방만한 재정 운용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부장(이하 김 부장)= 예전부터 세수 기반 취약 및 공공 지출 과다 등으로 재정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부동산 산업 및 관광·외식산업에의 지나친 의존, 낮은 산업 경쟁력 등으로 금융 위기 및 경기 침체의 부작용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받았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재정 확대로 적자 폭이 급속히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스페인과 아일랜드 등의 경우 부동산 및 건설 산업 의존도가 높아 주택 버블 붕괴 후 실업 확대 및 세수 감소 폭이 컸다. 또한 위기의 구조적 배경으로 경상적자 과다 및 민간 부채 과다, 재량적 통화·환율정책 집행의 제한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금융 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구제금융이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보는가. 대응책에 대해 지적할 만한 허점이나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강 연구원= 이번 대책으로 그리스의 국가 부도 사태와 같은 유동성 위기는 진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유로존 회원국에 대한 재정안정기금 마련은 다른 남유럽 국가들로의 확산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다른 국가들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해결을 위한 채널이 마련된 것이다.

그렇지만 채무 상환 능력이 약해진 국가에 유동성 지원만으로 봉합하는 것은 단기적인 처방일 뿐이다. 당장의 국가 부도는 막았지만 결국 근본적인 해결은 그리스가 채무 상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유럽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인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재정지출 감수, 세수 확대는 이들 국가들의 단기적인 경기 침체를 의미하고, 이는 채무 상환 능력을 약화시키는 딜레마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생각되므로 이번 리스크가 수면 아래에서 계속 잠복돼 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

이 교수= 7500억 유로에 달하는 재정안정기금은 그 규모가 예상 밖으로 커서 일단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럽중앙은행(ECB)이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고 발족 12년 만에 처음으로 위기에 봉착한 나라의 채권 구입에 직접 나섰기 때문에 그리스의 채권 금리는 급격히 하락하고 채권 가격은 급등을 보이고 있다.

이 두 가지 조처로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봐도 좋은데,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등의 재정수지를 GDP 대비 10% 수준의 적자에서 단기간에 EU 권장 기준인 3% 이내로 낮춰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고 이것은 공공 부문 임금 동결, 연금 삭감, 불요불급한 공공 사업 억제 등 허리끈을 졸라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노조와 국민의 동의를 얻는 일이 쉽지 않고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에서는 이런 사회적 합의의 전통이 없기 때문에 장차 험한 산을 수없이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반면 아일랜드의 경우 재정 적자 수준은 이들 나라와 비슷하지만 이들 나라에 비해 사회적 합의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비교적 용이하게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국제 자본시장에서도 아일랜드에 대한 우려는 낮은 편이다.

김 부장= 이번 조치로 단기적인 시장 안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구체안의 부족 및 즉각적 집행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 PI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채 만기 도래 집중 등으로 시장 불안은 향후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 안정 메커니즘의 일환으로 설정하기로 한 4400억 유로의 보증 자금 조성과 시행 방안에 대한 구체성이 아직 부족하다.

이와 함께 지난 6개월 동안의 대그리스 지원 합의 도출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회원국 간 불협화음 및 의회와의 마찰, 각국 국민들의 반대 등으로 이 방안의 즉각적 집행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상존한다. PIIGS들의 중·단기 국채 물량 상환 시점이 단기 내에 연이어 있어 일시적으로 우려가 진정되다가 재차 부각되는 양상을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 위기 우려가 있는 가운데 국제 신용 평가 회사들이 등급 조정 등으로 긴장을 과장하거나 부추기고 있다고 EU가 비판했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국채상환 시점 '째깍째깍'…또 다른 고비
강 연구원
=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작년 12월 그리스 국채를 ‘A-’ 등급 이하로 떨어뜨린 것이 금융 불안을 키웠고, 이번 사태 역시 지난 4월 27일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추가 신용 등급 하락에서 왔기 때문이다.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이후 민간은행들이 중앙은행에 크게 기대고 있는 상황인데, 유럽 중앙은행이 이들 신용 평가 기관의 신용 등급을 이용해 개별 은행의 건전성을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연결 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악순환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번 사태에서 그대로 불거졌다고 판단된다.

문제는 과연 이들에 대한 의존을 벗어날 수 있을지다. EU 내부에서 평가 기관을 설립하자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는데, 과연 개별 회원국들에 대한 신용 등급 조정을 내부에서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교수= 국제 신용 평가 회사들(특히 무디스·S&P·피치 등 3대 회사)은 국제 자본시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실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미국 엔론 사태 때 신용 평가 회사들은 이 회사의 신용 등급을 엉터리로 매겨 비난을 받았고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때도 각종 금융 파생상품의 신용 등급을 과도하게 높게 매겨 그것이 결과적으로 금융 위기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유럽 위기의 와중에도 이들 신용 평가 회사들이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의 채권 신용 등급을 연이어 강등하는 바람에 위기를 더 증폭시켰다는 비난을 받는다. 물론 이들 신용 평가 회사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고 변명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이들 회사의 행태는 지극히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 신용 평가 회사들의 신용 등급 하락 평정의 경우 항상 그런 비판을 들어왔다. 더구나 신용 평가 회사가 사전 경고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항상 사후적으로 등급을 조정했다는 점 등도 비판 대상이다.

그러나 PIIGS의 경우 재정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유로존 회원국이라는 점 때문에 신용 등급이 다소 높게 평가된 측면이 있다. 신용 평가 회사의 액션이 시장 불안을 확대시킨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앞서 이들의 재정 펀더멘털이 예전에 갖고 있던 등급과 불일치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이번 위기 상황이 재정 상황이 나쁜 나라, 즉 PIIGS와 일본, 미국에 점염될 가능성을 얼마나 높게 보는가.

강 연구원= 남유럽 국가들의 위기 확산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해 있다고 판단된다. 내부적인 취약점뿐만 아니라 유로존 회원국들 간의 높은 상호의존성 때문에 한 나라의 문제가 다른 나라들로 빠르게 파급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그리스 다음으로 재정 문제가 취약한 것으로 판단된다.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재정 문제보다 민간 부채에 문제가 있다. 이들 국가들의 실업률이 높고 자산 가격 버블 붕괴로 경제 상황이 매우 나빠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정 건전화 과정에서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나 미국으로 확산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관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금융 위기를 지나오면서 국가 부채가 크게 증가됐다. 결국 이들 주요 선진국들은 재정 건전화를 위해 부채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세계경제의 중·장기 성장률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국가들이 금융 위기, 나아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이 교수= 이번 위기가 재정 상황이 나쁜 다른 주요국들(이탈리아·아일랜드·영국·일본·미국 등)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들 나라의 재정수지 적자나 GDP 대비 국가 부채 규모는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에 별로 뒤지지 않는 나쁜 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들 나라의 경우 정책 수립 경험과 능력이 있고 점염 효과가 유로 지역만큼 높은 것은 아니다.

남유럽 나라들은 유로존에 가입해 있기 때문에 금리정책·환율정책의 독자적 운용이 불가능하다는 결정적 한계가 있고 이에 대해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는 유로존의 장래를 대단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로존 밖의 나라들에서는 정책상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서 쉽게 위기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채상환 시점 '째깍째깍'…또 다른 고비
김 부장
= 지난 6개월 동안 그리스에 대한 시장 불안이 부각될 때 마다 포르투갈 및 스페인 등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과 국채 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양상을 시현했다.

향후에는 포르투갈 및 스페인에 대한 투자 심리 악화로 아일랜드·이탈리아 등 나머지 국가들의 지표도 동반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본다. 과거 아시아 위기가 국별로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발생했던 것처럼 이번 PIIGS 점염도 이러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경우 유럽에 비해 경기 회복세가 상당히 양호한 편이며 대내외의 미국채 매수세도 견조한 양상이다. 이와 함께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이 안전판 구실을 할 것으로 보여 미국으로의 점염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일본은 정부 부채 규모가 매우 큰 수준이지만 재정 적자 규모 및 경상수지, 실질 장기 금리, 조세 수입 등 여타 재정 관련 지표들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또한 일본은 국채의 이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고 국채의 외국인 보유 비중도 낮아 점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번 유럽발 재정 위기가 우회적으로 한국에 어떤 식으로 충격이 전해질 것으로 보는가.

강 연구원= 이번 위기가 글로벌 신용 경색으로 확산되지만 않는다면 국내 실물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국내 수출액의 유럽 비중이 낮아져 왔고, 특히 남유럽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수출액의 2.4%에 불과하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역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구조적인 취약점에 따라 이번 사태로 안전자산 회귀 현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충격이 작았던 동유럽 위기, 두바이 사태와 같은 상황에서도 환율이 상승하고 주가가 하락한 바 있다. 그러므로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 한국은 다행히 이번에 문제가 된 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대출이 별로 없는 편이다. 이들 나라에 대한 대출은 주로 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와 독일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이번 위기로 인해 한국이 받는 직접적인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 위기가 조기에 진정되지 못하고 2008년과 같은 세계적 금융 위기로 증폭된다면 겨우 회복 국면에 접어든 세계경제가 또다시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출 주도형의 한국 경제는 다시 한 번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김 부장= PIIGS 위기가 글로벌 시장의 투자 심리를 동반 악화시킬 수 있겠지만 미국으로의 재정 위기 점염 가능성이 제한적인 데다 한국의 대PIIGS 익스포저가 낮고 경제성장세가 양호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경우 국내로의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으로의 재정 위기 점염이 차단된다면 한국 시장 불안의 요인도 상당 부분 차단될 것이다. 다만 유럽 국가들로부터의 차입 비중이 높은 우리의 경우 유럽 금융시장 신용 경색이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과 기업들은 유로화 익스포저 및 거래 등을 사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리=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