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기에 더욱 애틋한 가르침
천명(天命)을 아는 나이가 되어오니 당신의 가르침이 사무쳐 옵니다. 이제 가르침을 마음판에 되새겨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입니다. 못난 불효자의 기억 속에 동면하고 계셨던 당신을 이제야 일깨워 봅니다. 32년 전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암 선고를 받고 힘든 투병 생활을 하시던 당신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몸부림치시는 당신께 제가 직접 모르핀 주사를 놓아드리곤 했지요. 임종이 임박해서는 앙상한 뼈밖에 남지 않아 주삿바늘조차 꽂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팠지요. 결국 대학 입시 1주일을 앞두고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것도 제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에 제 이름을 애타게 부르시며 영면하신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차마 어린 아들을 두고 눈을 감을 수 없었던지 눈을 뜨고 돌아가셨지요. 그때부터 어린 제 인생에 길고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지요. 기나긴 방황이 시작됐고 대학에도 결국 남들보다 3년이나 늦게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춘기의 소년이 이제 지천명(知天命) 나이인 50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딸 아들 남매를 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손녀는 미국의 명문 시카고대에 입학해 장차 유엔 대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재주를 빼어 닮은 손자는 장차 엔지니어를 꿈꾸며 대학 입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눈에 선합니다.

유난히도 낚시를 좋아하셨던 당신을 떠올려 봅니다. 평생 근검절약으로 부농의 반열에 오르셨지만 농번기에는 낚시를 자제하셨고 추수가 끝난 시간에 낚시 휴가를 떠나곤 하셨지요.

당신의 조황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한 마리도 잡기 힘든 수 킬로그램짜리 잉어를 여러 마리씩 잡아 바구니에 담을 수 없자 끈으로 길게 묶어 매 놓으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당신께서 잡아 오신 물고기를 이웃 동네까지 배달하느라 바빴지요.

아마도 당신은 제게 나눔을 정신을 깨우쳐 주려고 물고기 심부름을 꼭 어린 제게 시키셨던 것 같습니다. 어린 저는 콧노래를 부르며 씨알 붕어들을 배달하곤 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심부름이었는지 모릅니다.

병상에서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면서 항상 제게 “남철아, 돈을 쫓아다니지 말고 돈이 너를 따르도록 하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당시 열아홉의 어린 저는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재물을 탐하지 말고 먼저 재물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천명(天命)을 아는 나이가 되어 보니 당신의 가르침이 뼛속 깊이 사무쳐 옵니다. 그리고 당신은 평생 동안 밥 한 그릇을 절대 다 비우시지 않고 30%는 꼭 남기는 소식을 하셨지요.

식탐이 많았던 어린 저는 당신이 남기신 밥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 먹어 치우곤 했지요. 젊은 나이에 펀드매니저로 명성을 얻고 한때의 성공에 도취돼 저도 모르게 오만해져 있을 때 제가 당신께서 일평생 실천하신 비움의 자세를 깨달았다면 그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 이제 당신의 가르침을 마음 판에 되새겨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살아가겠습니다.

금년 가을이면 당신을 떠나 보낸 지 31년이 됩니다. 얼마나 사무치게 그립고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쳐 왔던지요. 당신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제 영혼의 아버지를 만나기까지 저의 방황은 지속됐습니다.

아버지! 이제 저는 당신을 여읜 자리에 제 영혼의 구세주이신 주 하나님을 만나 당신께 못다 받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이제 편안히 눈을 감으셔도 됩니다.

당신을 대신하실 진실하고 은혜로운 영원한 아버지를 만났으니 이제 그 애틋한 눈길, 마음 편히 내려놓으세요. 시간의 바퀴를 거꾸로 돌이킬 수만 있다면 제가 만난 주 하나님을 당신께도 꼭 소개해 드리고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사랑과 은혜, 영혼의 축복을 당신께도 나눠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짧았기에 더욱 애틋한 가르침
최남철 전 제뉴사이언스 대표이사

1961년 전북 완주 출생.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국민투자신탁(현 푸르덴셜자산운용)에 입사. 푸르덴셜자산운용 국제운용팀장과 수석펀드매니저를 거쳐 마이애셋자산운용 본부장, 전무로 일함. 제뉴사이언스 대표이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