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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이너 마돈나가 열연한 뮤지컬 영화 ‘에비타’에서 대학 졸업장을 마구 찍어 나눠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배우지 못한 국민들의 한을 정부가 풀어준 셈이다. 포퓰리즘(populism:대중영합주의)도 이 정도는 돼야 진짜 포퓰리즘이라고 할만하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영화엔 극적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페론 정권은 포퓰리즘 정부의 대명사처럼 인용되고 그렇게 평가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페론 정권이 과연 포퓰리즘이었는지, 아르헨티나의 국력이 기울어지게 한 것이 페론주의 때문이었는지, 나아가 포퓰리즘이 어디가 어떤지 등 지금까지 수많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포퓰리즘, 그 달콤한 독약과 MB 정부
몇 년 전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방문길에 취재기자로 동행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도시는 반경 700km, 혹은 1000km에 산은 아예 없고 평야뿐이다. 조금 다듬으면 바로 천연 축구장이요 내버려두면 목장인 풀밭은 ‘기름진 땅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경이감까지 갖게 했다.

오죽하면 현지 안내인은 “신이 잘한 것과 잘못한 일이 있는데, 바로 아르헨티나 땅을 만든 것과 아르헨티나 사람을 이곳에 살게 한 것”이라는 말을 들려줬다. 너무 풍요로워 사람들이 게을러지고 당차게 도전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현지 풍토를 풍자한 얘기였다.

19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5대 강국에 손꼽혔던 게 아르헨티나다. 그러나 이제는 G7에도, 브릭스(BRICs)에도 포함되지 못한다. 일류 선진 국가 대열에서 멀어진 지 한참이다. 아직도 포퓰리즘 논란은 분분하지만 194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과 그의 두 번째 아내 에바 페론을 빼고 아르헨티나의 성쇠를 얘기하기는 힘들다. 과연 에바 페론에 대한 그 나라 국민들의 관심은 대단해 보였다.

경제정책에서 포퓰이즘은 ‘독’

대중심리를 헤아린 것일까, 국민 정서를 잘 알고 정치적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한 때문일까. ‘에비타’에서 마돈나가 부른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요(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곡처럼 정치인이란 인기 연예인처럼 감성으로 다가가는 것이 최선일까.

아르헨티나 이야기를 길게 꺼낸 것은 바로 포퓰리즘 때문이다. 대중의 인기와 지지도를 의식하지 않을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이 문제와 무관해서는 재집권, 정권 창출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어떤 분야보다 경제정책에서 포퓰리즘은 독이 된다.

정부 내 경제 팀장 격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한 것이 화제가 됐었다. 기사로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언론인들 친목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한 말이었으니 작정하고 준비한 말이었다고 봐야 한다. “재원 부담을 고려하지 않는 무상 급식 확대 주장과 일률적인 정년 연장 요구,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줄줄이 이어간 것을 보면 이 문제로 생각도 무척이나 많았겠나 싶다.

정년 연장은 이후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도 대립각을 세운 사안이고 앞으로도 논쟁이 더 진행될 사안으로 보이지만 포퓰리즘 논쟁의 핵심은 이 문제가 아니다.

포퓰리즘을 경계한 윤 장관의 발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먼저 정치권, 특히 여당에 대한 경고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간에 선심 정책이라는 대중 영합적 공약을 내놓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2009년 ‘친서민 중도실용’의 기치를 내건 이후 정부 스스로의 자성이자 유사 정책에 대비한 내부의 사전 견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달콤하지만 포퓰리즘은 무섭다. 무상 급식을 하고, 취약 계층 지원금을 늘리고 노인 복지도 높이자는 것, 이런 일은 모두 궁극적으로 현대 국가가 해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이런 정책을 과감히 시행하자는 주장은 인간적으로 보이고 문제 제기를 하는 측은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수준만큼, 우리가 감내할 만큼 해야 한다. 복지 예산을 늘리려면 공무원 경상경비를 줄이거나, 교육 예산을 줄이거나, 남북 긴장 완화로 국방 예산이라도 감축하거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서 민간 자산을 유치한 뒤 나오는 예산으로 추진하는 게 맞다. 아니면 세금이라는 손쉬운 방법 대신 정부 스스로 돈을 벌어 지출해야 한다. MB 정부 남은 3년의 성패가 바로 이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허원순 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