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3개의 통장
내 마음속에 있던 예전의 아버지 모습은 아니지만 나눔과 베풂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에서 앞으로 내 삶의 지표를 보여주신 것 같아 나는 아버지가 여전히 자랑스럽다.

지난 연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우리 가족은 적잖이 놀랐다.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특별한 지병 없이 지내시던 터라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별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가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니고, 깊은 호흡을 하지 못해 체내의 이산화탄소를 잘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노환인 셈이었다.

의식이 혼미한 상태가 지속되자 병원 측은 상태가 좋지 않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우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먼 일가친척들에게 기별을 넣어두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입원하자 우리 다섯 형제자매는 번갈아가면서 병실을 지켰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아버지의 병수발을 전적으로 맡을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병원에 갔다가 친정에 들르니 어머니가 내게 은행 심부름을 부탁하셨다. 아버지가 공무원 연금을 받기 때문에 연금이 통장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두 분이 함께 은행에 들러 아파트 관리비를 포함해 각종 공과금을 정리하곤 하셨는데, 아버지가 누워 계시니 어머니 혼자 가시기가 내키지 않으셨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3개의 통장을 내놓으시고, 어느 통장에 얼마를 넣을 것과 송금할 돈을 일러 주셨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들어보지 못한 이름으로 돈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여쭤보니 생활이 어려운 전도사님의 자녀를 위해 송금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초등학교 시절 어려운 가운데 공부하면서 도움 받은 것을 보답하는 마음으로 돕고 있다고 덧붙이셨다.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는 예전부터 간간이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만주로 가시는 바람에 할머니와 단둘이 외가 동네에서 자랐다고 한다.

외가는 제법 규모가 있는 논밭을 일구고 살기가 괜찮았지만, 딸을 출가외인으로 여겼던지라 아버지의 생활은 궁핍하였고 점심 도시락도 싸가는 날보다 거르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모두 머리를 숙이라고 지시한 후 해당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정 형편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활이 어려운 20명 정도를 뽑아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했는데, 이 점심은 아버지의 주린 배를 채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없는 어린 나이의 초등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있는 초등학생은 코리안 드림을 안고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전도사님 가정의 두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그 아이들을 위해 1인당 10만 원씩 매월 20만 원을 송금하고 계셨던 것이다.

입원한 지 한 달이 가까워오면서 처음의 우려와 달리 아버지의 건강은 많이 나아지셨다. 정신도 많이 또렷해지고, 휠체어에 앉아 병원 이곳저곳을 장시간 산책할 정도까지 회복하셨다.

그러면서 나는 오랜만에 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런데 대화 도중에 아버지는 ‘앞으로 2~3년만 더 살면 좋겠다’는 말씀을 언뜻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예전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8년 전 75세가 되던 생신날, 아버지는 “나는 예전부터 75세까지 산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제 75세 생일을 맞았으니 앞으로의 삶은 덤으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 삶에 연연하지 않고 나름대로 담담히 생의 마감을 준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역시 우리 아버지’라고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아버지는 새해가 되기 전에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하셨다. 내 마음속에 있던 예전의 아버지 모습은 아니지만 나눔과 베풂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에서 앞으로 내 삶의 지표를 보여주신 것 같아 나는 아버지가 여전히 자랑스럽다.

김종미 수필가
인투그래픽 편집장. 1963년생.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력공사 홍보실에서 근무했다. 2004년 ‘문학시대’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