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위 떨치는 첨단 첩보 테러

지난 2월 19일 두바이 부스탄로타나호텔 객실에서 팔레스타인 정치조직인 하마스의 최고위급 간부 마흐무드 알 마부흐(50)가 감쪽같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스라엘과 극단적인 대립을 주도하고 있던 이 하마스의 고위 간부는 극비 여행 도중, 외부 침입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밀폐된 객실에서 고문 뒤 살해된 채 발견됐다.

발코니도 없고, 창문도 밀폐돼 있던 호텔 객실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하마터면 미궁에 빠질 뻔했던 이 사건은 두바이 검경의 CC TV 화면 분석 결과,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첩보전과 국가 정보기관 주도 테러의 실상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YONHAP PHOTO-1942> FILE - This photo released by the Dubai Ruler's Media Office on Monday, Feb. 15, 2010, shows Dubai's Police Chief Lt. Gen. Dhahi Khalfan Tamim identifying eleven suspects wanted in connection with the killing of a Hamas commander, Mahmoud al-Mabhouh, in his Dubai hotel room last month. A killer _ or killers _ may be on the loose in Europe after a Hamas operative was slain last month in Dubai. European nations, however, seem to be in no rush to find him, her or them. The spotlight is falling on those countries where police say the alleged assassins' trails begin and end: Switzerland, Italy, France, Germany and the Netherlands. Authorities there have either declined to say whether they are investigating, or told The Associated Press they have no reason to hunt down the 26 suspects implicated in the Jan. 19 killing of Mahmoud al-Mabhouh. (AP Photo/Dubai Ruler's Media Office, File) EDITORIAL USE ONLY/2010-02-27 22:52:43/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FILE - This photo released by the Dubai Ruler's Media Office on Monday, Feb. 15, 2010, shows Dubai's Police Chief Lt. Gen. Dhahi Khalfan Tamim identifying eleven suspects wanted in connection with the killing of a Hamas commander, Mahmoud al-Mabhouh, in his Dubai hotel room last month. A killer _ or killers _ may be on the loose in Europe after a Hamas operative was slain last month in Dubai. European nations, however, seem to be in no rush to find him, her or them. The spotlight is falling on those countries where police say the alleged assassins' trails begin and end: Switzerland, Italy, France, Germany and the Netherlands. Authorities there have either declined to say whether they are investigating, or told The Associated Press they have no reason to hunt down the 26 suspects implicated in the Jan. 19 killing of Mahmoud al-Mabhouh. (AP Photo/Dubai Ruler's Media Office, File) EDITORIAL USE ONLY/2010-02-27 22:52:43/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바로 영국·아일랜드·독일·프랑스 등의 여권을 소지한 20여 명의 다국적 암살 전문 요원들이 공항에서부터 자연스레 마부흐를 둘러싼 뒤 호텔까지 동행한 것이 드러났다.

이어 이들 첩보 요원들은 마부흐가 묵는 객실 바로 앞방에서 대기하다가 마부흐가 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자 호텔 종업원으로 위장해 문을 따고 객실에 침입해 마부흐를 암살했다.

이 과정에서 호텔 CC TV를 확인한 암살 요원들이 태연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장면이 공개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관련국들이 ‘쉬 쉬’하며 유야무야 넘기는 전형적인 ‘007 작전’으로 처리됐겠지만 이 사건을 대하는 각국의 태도는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테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이제 정부기관 테러도 설 자리를 급속히 잃고 있는 것이다.

두바이 경찰 관계자는 “이스라엘 모사드가 암살에 개입했다는 게 100%는 아니더라도 99% 정도 확실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개입을 기정사실화했다.

여권 위조된 국가들, 이스라엘 비난

여권이 위조된 국가들도 전례 없이 강하게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나섰다. 유럽연합(EU)은 2월 22일 브뤼셀 외무장관회의에서 암살 계획에 유럽국들의 위조 여권이 사용된 것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를 방문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회담한 뒤 “두바이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명백한 살인 행위”라고 강력 비난했다.

자국 여권이 위조된 영국과 아일랜드·호주 등은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불러 항의의 의사를 전달했다. 특히 멀쩡히 살아 있는 자국 국민들의 여권이 대량 도용·위조된 영국은 위조 여권 제작 과정을 면밀히 조사하기로 해 사건 배후로 지목되는 이스라엘과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모사드는 지난 1987년 이스라엘 핵무기 개발 사실을 폭로한 과학자를 납치할 때도 영국 여권을 위조한 전력이 있고, 2005년에는 뉴질랜드에서 요원 2명이 여권을 위조하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1997년에는 하마스 지도자 암살 작전에서 캐나다 위조 여권을 위조해 캐나다 정부와도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번 하마스 지도자 암살에 앞서 지난 2월 12일 이란에선 핵 과학자가 원격 조작된 폭탄 공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란의 저명 과학자였던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 테헤란대 교수가 출근길에 자택 인근 주차장에 세워진 폭탄 적재 오토바이가 폭발하면서 변을 당한 것이다. 이란에선 지난해 5월 성지 순례차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던 과학자 샤흐람 아미리가 호텔에서 실종되는 등 2007년 이후 사망하거나 실종된 핵전문가가 3명이나 되고 모두 적성국가 정보기관이 개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의 로켓 전문가 사이드 바디르는 자택에서 팔목이 잘려 숨진 채 발견됐고 1980년에는 이라크 핵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집트 과학자가 프랑스 파리 호텔에서 살해되기도 했다.

한편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국내정보국(MI5)에서 중국 해커들이 퍼뜨린 각종 버그 프로그램들이 주요 산업과 정부 기밀을 빼내는 주역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중국 해커들은 유사시 영국의 전력과 식량, 수도 공급망을 마비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고 전해 각종 첨단기술이 동원된 첩보 테러의 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이스라엘 정부가 대외적으로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오랫동안 캠페인을 벌여 왔지만 두바이 사건 때문에 모두 무위로 돌아가게 생겼다”며 과거 냉전 시대에 통했던 첩보 테러의 효용성은 이제 끝났다고 강조했다.

김동욱 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