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난 카드 업계

현재 우리나라 신용카드 시장 규모는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루 평균 신용카드 이용 규모는 1337만 건에 1조4000억 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작년 1조8000억 원대의 막대한 순익을 올렸다. 올해도 지난해보다 6.5%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스마트 전자지갑, 모바일 결제 등 새로운 금융 결제 시스템의 확산으로 통신사들까지 카드 업계에 ‘우회 진출’하며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신용카드 시장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변화를 전망해 봤다.

신용카드사들이 지난해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과를 올리며 눈길을 끌고 있다. 작년 카드 업계 전체의 순이익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되며 전체 카드 발행 숫자도 1억 장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업계 1위인 신한카드는 지난해 신한금융지주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8568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2008년 9596억 원보다 10.7%가량 줄기는 했지만 지주 내 가장 큰 자산 규모를 자랑하는 신한은행이 낸 순익 7487억 원보다 1000억 원 이상이 많은 액수다. 연간 기준으로 보면 신한카드가 신한은행 실적을 뛰어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산업·통신’ 융합 업그레이드 가속페달
삼성카드의 경우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2577억 원보다 134.3% 늘어난 6036억 원을 기록했다. 업계 2위인 KB카드(국민은행 카드부문) 역시 순이익이 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현대카드는 2008년 1969억 원보다 많은 3000억 원, 롯데카드는 2008년 1376억 원에 비해 늘어난 2000억 원 등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카드 업계 전체의 연간 순이익은 1조8000억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경기 회복과 함께 지난해 4분기에만 4000억~5000억 원의 순익을 얻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 결과 카드 업계에 대한 국내외 신용 평가사들의 평가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국제 신용 평가 기관들이 연달아 국내 카드사의 신용 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했고 한국기업평가·한신정평가 등 국내 신용 평가 기관들도 등급을 올렸다.

지난 1월 S&P가 현대카드의 신용 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한데 이어 지난 2월 8일 피치가 현대카드의 신용 전망을 기존 ‘BBB(안정적)’에서 ‘BBB(긍정적)’로 상향 조정했다.

신한카드 역시 2월 초 국내 신용 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한신정평가의 신용 등급 전망이 각각 ‘AA(안정적)’에서 ‘AA(긍정적)’로 상향 조정됐다. 이에 앞서 신한카드는 지난해 9월 피치로부터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이례적인 등급 상향 조정을 받아 국내 여신 전문 회사 중에서 최고 등급인 ‘A-’를 획득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일본 신용 평가 기관인 JCR가 신한카드의 신용 등급 전망을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한 단계 올렸다.
‘금융·산업·통신’ 융합 업그레이드 가속페달
이처럼 카드 업계가 작년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었던 이유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회복세를 띠면서 이에 대한 후광효과를 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카드 사용액 증가율이 전년 동월 대비 18.31%나 급증해 2008년 9월 이후 1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자동차 구입 세제 지원과 현금 대출이 증가한 점도 일정 구실을 했다”고 밝혔다.

신용카드사들의 내적 혁신도 한몫했다. 고위험 상품인 현금서비스보다 신용판매 대금 쪽을 크게 강화한 게 대표적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신용판매 비중은 전체의 35%에 불과했지만 2009년 9월 기준으로 79%까지 크게 상승했다.

카드사들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보험 대리, 여행 알선, 통신판매 등과 같은 부대 업무들이 대표적이다. 카드사들의 부대 업무 실적은 지난 2000년 3439억 원에서 2003년 5540억 원, 2005년 6073억 원으로 매년 조금씩 성장하다가 2008년 1조2422억 원으로 급증했다. 2009년 상반기까지는 6679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동시에 카드 산업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명목 소비 대비 카드 비중은 지난 2005년 44.8%에서 지난해 6월 52.3%로 증가하는 등 카드 결제가 일반화됐다.

가맹점 수수료 비중은 지난 2002년 21%에서 2008년에는 60%까지 올라간 반면 카드 대출 수익 비중은 50%에서 20%로 낮아지면서 안정적인 이익 창출도 가능하게 됐다는 게 연구소의 평가다. 또 카드사들의 연체율도 2.53%(지난해 9월 말 기준)로 낮아졌다. 연체율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카드대란이 터진 2003년 말 28.28%로 고점을 찍은 후 2006년 한 자릿수로 떨어진데 이어 지난 2008년 9월 말에는 2.28%까지 떨어졌다.

카드 산업, 안정화 단계 진입

물론 이 같은 카드 업계의 호실적이 올해도 계속되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일단 올해는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 등으로 전년 동기 대비 실적 증가율이 과거 평균 수준인 5%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정희수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민간 소비 회복과 함께 신용판매 중심의 증가세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가계 부채가 늘고 고용이 불안한 점은 연체율 상승 반전 가능성을 높게 한다”며 “대손충당금 적립과 대손상각 등의 신용비용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또 늘어나는 체크카드 이용도 전업계 카드사의 경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체크카드 이용은 지난해 287만4000건에 999억 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41.7%와 36.4%가 늘었다. 건당 결제 금액도 2002년 건당 9만4000원에서 2009년 5만8000원으로 줄어드는 등 소액결제 비중이 늘고 있는 등 카드사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금융·산업·통신’ 융합 업그레이드 가속페달
업계의 치열한 영업 경쟁도 실적을 갉아먹는 주요 요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전업계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 대비 가맹점 수익의 배율을 살펴보면 2006년 3.81배에서 지난해 상반기 3.12배로 지속적인 하락 추세에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의 곱지 않은 시선 또한 카드 업계의 불안 요소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카드 업계가 활짝 웃을 수 없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카드 업계는 이미 지난해 중소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율을 현행 2.3~3.6%에서 2.0~2.4%로, 재래시장 점포의 수수료율을 2.0~2.2%에서 1.6~1.9%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현금서비스 금리도 현행보다 1~3%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국은 이것으로 미진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중소 신용카드 가맹점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 인하는 가급적 3월 초에 끝내려고 한다”며 “연간 매출액이 9600만 원 미만인 중소 가맹점에 대해 수수료율을 일단 낮춘 뒤 추이를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추가 인하를 추진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에도 카드 업계의 전망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바로 ‘금·산·통 융합’으로 일컬어지는 미래형 금융 결제 시스템의 열쇠 중 하나를 카드사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형 금융 결제 서비스는 간단히 카드 한 장으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소비·금융이 가능해지는 서비스다.
‘금융·산업·통신’ 융합 업그레이드 가속페달
미래형 카드 금융 결제는 우선 카드가 기존의 선불카드(전자화폐), 직불카드와 후불카드(신용카드)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스마트 전자지갑’으로 대표된다. 이 전자지갑은 유·무선 네트워크와 통합돼 기업의 다양한 상품 부가 서비스 정보를 실시간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래의 소비자 A 씨가 있다고 하자. A 씨가 동네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스마트 전자지갑이 내장된 휴대전화로 무선 단말기를 통해 결제한다. 그러면 지금과 같이 단순히 결제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A 씨가 가지고 있는 10여 개의 신용카드와 멤버십 카드들이 모두 휴대전화 안에 들어 있어 이 가운데 디스카운트를 가장 많이 해 주는 조건의 카드가 선택돼 결제되고 동시에 멤버십 카드에도 마일리지가 적립된다.

‘스마트 전자지갑’ 주목해야

이뿐만이 아니다. A 씨가 백화점에 들어서자 단문 메시지 서비스(SMS)로 해당 백화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 쿠폰이 바로 전송된다. 위성항법장치(GPS)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에 통신사와 금융사가 가진 고객 정보가 만나서 가능한 서비스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자신의 재무 상태에 따라 현명한 소비가 가능해지고 기업은 개별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없었던 다양한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카드사는 기업과 소비자를 중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소비자와 상품 서비스 판매 기업, 카드사 모두가 또 다른 차원의 이익을 내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열리게 된다.

최근 SK그룹이 하나카드 지분 49%를 인수해 설립한 하나SK카드의 사례나 KT가 BC카드의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SK카드는 3월께 금융과 통신이 융합된 컨버전스 카드 상품을 출시, 시장에 새바람을 몰고 온다는 계획이다. 이강태 하나SK카드 사장은 “이 카드는 모바일 카드 결제 단말기(일명 동글)가 보급된 백화점과 대형 마트,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며 “이보다 진화된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페이먼트’를 홈플러스에서 오픈 테스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T는 현재 신한카드가 보유한 BC카드 지분 매각과 관련한 실사를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이에 따라 KT가 신한카드의 지분 14.9%를 인수하면 BC카드의 3대주주로 올라설 전망이다.

현재 BC카드의 지분은 우리은행이 27.7%, 보고펀드가 24.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업계는 KT가 우리은행의 지분 인수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기존의 카드사들도 통신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을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고 있다. 아직 완전한 스마트 전자지갑의 형태는 아니지만 휴대전화를 이용한 신규 상품과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것. 신한카드는 SK텔레콤, KT와 제휴해 휴대전화를 통해 무선으로 카드를 발급해 주고 있으며 KB카드 역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이 카드는 단말기에 스치기만 해도 결제가 가능한 것은 물론 쇼핑과 외식, 놀이공원 등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동통신사 멤버십 카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현대카드 역시 이 같은 기술을 상용화할 예정이다.

롯데카드와 삼성카드는 유통과의 결합에 특히 치중하고 있다. 삼성카드는 이마트·코스트코·신세계 등과 손잡았고, 롯데카드는 롯데그룹 계열 유통사 외에서도 다양한 할인 및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드 상품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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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독립하는 은행계 카드사들

‘공격적 마케팅 가능’…KB·우리금융 ‘관심’

카드사는 크게 전업계와 은행 겸영으로 나뉜다. 전업계는 다시 삼성카드·현대카드 같은 기업계 전업 카드와 신한카드·하나SK카드 같이 은행에서 떨어져 나와 금융지주회사 아래 있는 은행계 전업 카드로 나뉜다. 2003년 카드 사태로 국민카드·외환카드 등이 은행으로 통합되는 모양새였다.
‘금융·산업·통신’ 융합 업그레이드 가속페달
이후 카드사는 은행계 중심으로 재편돼 은행계 전업 카드사와 은행 겸영 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은 2002년 53.1%에서 지난해 9월 현재 72.7%까지 상승했다.

최근 들어 은행 밑으로 들어갔던 카드사들이 적극 분사에 나서고 있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은행계 전업 카드사는 은행에 묶여 있지 않아 공격적 마케팅이 가능하고 기업계 전업사보다 자금 조달이 쉬울 뿐만 아니라 금융지주의 다양한 채널을 영업에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한카드가 업계 1위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 대다수의 의견이다.

이에 따라 하나SK카드는 지난해 10월 하나은행으로부터 분리 독립했으며 오래전부터 분사를 검토해 온 KB카드 역시 커버드 본드 문제만 해결하면 분사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채권을 발행하면서 제공한 담보에 카드부문 자산이 포함돼 있어 이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카드도 현재 6%대인 시장점유율이 조금 더 올라가면 분사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우리금융측은 “지주회사 체제에서 기존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카드사에서 고객의 욕구에 맞는 상품을 내놓아 큰 시너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분사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