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에 없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스마트폰 포비아(공포증)’다. 스마트폰이 부쩍 인기를 끌면서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이 싫어 거금을 들여 구입했지만 영 적응을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어린 후배들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활용법을 익히기 위해 매뉴얼을 읽고 인터넷 카페도 매일 들여다보지만 도통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마음 편한 구형 휴대전화를 따로 하나 들고 다니는 게 오히려 나을 지경이다.이는 비단 스마트폰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은 술자리에서 트위터를 모르면 대화의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 자칫하면 대화에서 밀려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대기업 회장님까지 트위터로 농담을 날리는 판국이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이들은 서로 물고 물리며 연결된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트위터를 쓰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을 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진입 문턱’을 높인다.문제의 시점은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한 작년 11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아이폰은 볼수록 묘한 기계다. 아이폰이 안 될 이유는 수십 가지가 넘는다. 우선 아이폰은 배터리 분리가 안 돼 처음 보는 사람을 황당하게 한다. 휴대전화는 잘 때 배터리를 분리해 충전해야 한다는 오랜 상식을 위협하는 것이다.또 한국인이 좋아하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도 허용하지 않는다. 매일 접속하는 웹사이트 열 곳 중 아홉 곳은 플래시 콘텐츠가 들어 있는데도 아이폰은 이를 지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폰 열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스테로이드를 맞은 아이폰’이라는 아이패드로 그 열기가 옮겨 붙을 기미를 보인다.한국 시간으로 1월 28일 새벽 진행된 신제품 발표회를 인터넷으로 지켜본 네티즌들로 이날 트위터에는 아이패드 관련 글이 폭주했다.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IT 산업의 ‘게임의 법칙’을 단숨에 바꿔놓은 애플이 세 번째 아이템으로 태블릿 PC에 주목했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기존 제품을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처럼 보이게 하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스티브 잡스의 놀라운 점은 업무용 기기로 포지션돼 왔던 태블릿 PC를 엔터테인먼트 도구로 돌려놓았다는 것이다. 아이패드는 매력적인 e북리더이자 음악 플레이어, 동영상 플레이어, 게임기이며 이 모두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아이폰의 인기는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다시 말해 IT 산업의 주도권이 하드웨어와 통신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로 넘어간 것이다. 이제 하드웨어의 성능은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잔잔한 재미를 주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더 사람을 끈다.기능만 따지면 아이폰은 다른 스마트폰과 큰 차이가 없다. 다른 제품으로도 얼마든지 와이파이 접속을 하고 인터넷과 메일·음악·사진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아이폰을 선택한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편리하고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폰 예찬자들은 아이폰 안에 온갖 재미있는 게 다 들어 있다고 말한다.그런데 왜 지금일까. 아이폰에서 트위터·킨들·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최근 갑자기 혁신 제품들이 쏟아지는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는 것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제품과 서비스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들이 아니다. 아이폰은 2007년 1월 첫선을 보였고, 킨들은 같은 해 11월 탄생했다. 트위터도 2007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2~3년 된 빅히트 아이템이다. 그동안 한국에만 상륙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작년 이후 한꺼번에 봇물 터진 듯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아이폰을 둘러싼 길고 긴 승강이는 왜 이를 좀 더 일찍 국내에 들여오지 못했는지 잘 설명해 준다.또 하나 충격적인 것은 이들 혁신을 주도하는 제품 가운데 한국산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진정한 IT 강자가 누구인지를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IT 강국’을 떠든다고 진짜 IT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이들 혁신 제품들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바일 컴퓨팅’이다. 2000년의 화두가 인터넷이었다면 지금의 화두는 무선 인터넷이다. 이것은 유비쿼터스라는 좀 더 익숙한 이름과 곧바로 연결된다.과연 2010년이 새로운 디지털 혁명의 해로 기록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올해 내내 이들 혁신 제품들이 주요 이슈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