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변했나
아파트 브랜드 시대가 열린 지 올해로 정확히 10년째다. 브랜드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아파트에 특정 이름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건설사들이 소규모 고급 아파트나 빌라를 차별화하기 위해 특정 이름을 사용한 것이 시초다. 하지만 당시 주택들을 브랜드 아파트의 시작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마케팅 측면에서 볼 때 브랜드는 지속성과 통일된 홍보 기획이 핵심 요소인데, 이 당시 건립된 주택들은 대부분 2∼3개 프로젝트에 그쳤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이 소비자 응모를 통해 원룸 아파트 브랜드를 ‘메종 리브르(1996년)’, 고급 빌라에 ‘로열카운티(1997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상당수 이름들이 영어 단어가 결합돼 지어졌다는 점도 이 당시 특징 중 하나다. 1996년 LG건설이 오피스텔과 빌라를 결합한 주거 공간의 이름으로 ‘트윈텔’을 사용한 것이나 청구가 분당 서현역 오피스텔을 ‘오딧세이’로 쓴 것도 바로 이 시기다. 금호건설은 1995년부터 고급 주택에 ‘베스트 홈’을, 한라건설도 비슷한 시기 모든 것을 합친다는 수학 기호인 ‘시그마(∑)’를 사용했다. 1998년 4월 LG건설은 용인 성복지구에 1164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LG빌리지’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1999년 사회 곳곳에 인터넷 열풍이 몰아치면서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한때 ‘삼성사이버아파트’라는 아파트 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1999년 5월 서울 4차 동시 분양에서 삼성이 공급한 서초동 삼성사이버아파트는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청약 경쟁률이 15.3 대 1을 기록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현대건설의 하이페리온(고급 주상복합), 홈타운(일반 아파트)이 일반에 모습을 보인 것도 그해 12월이다. = 국내 주택 시장에서 아파트 브랜드 시대가 활짝 열린 시기는 지난 2000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때부터 앞 다퉈 건설사들이 아파트에 통일된 브랜드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건설사가 처음으로 아파트 브랜드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관련 업계에서 가장 먼저 브랜드를 출시한 사례로 꼽고 있는 것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래미안’이다. 미래(來)를 위한 아름답고(美) 편안한(安) 집을 짓겠다는 뜻이 담긴 삼성래미안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2000년 1월 대대적인 신문 광고를 통해서다. 지난 10년간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래미안 브랜드로 건립한 아파트는 10만1610가구로 2000년 이전 20년간 건립된 가구 수(11만5501가구)와 맞먹는다. 래미안 브랜드로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국내 대표 건설사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하지만 ‘e-편한 세상’을 사용하고 있는 대림산업은 지금도 자사가 브랜드를 처음 사용한 건설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림산업 LC팀 임희석 차장은 “삼성보다 한 달 늦은 2월에 발표했지만 실제 브랜드를 적용해 아파트를 분양한 것은 그해 3월 용인 보정리 대림e-편한세상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임 차장은 “삼성래미안이 상표 출원 등 법적 절차는 1~2개월 빠르지만 TV 광고나 분양 현장에서 사용한 시기는 대림 e-편한세상이 앞선다”고 주장했다.이후 아파트 브랜드 시장은 급속도로 커져 대우건설의 주상복합 브랜드 트럼프월드, SK건설의 뷰(View), 쌍용건설의 스윗닷홈, 코오롱건설의 하늘채, 대한주택공사의 그린빌이 지난 2000년 공식 브랜드로 채택됐다. 2001년에는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된 현대산업개발이 아이파크를, 한화건설은 ‘꿈에 그린’을 공식 아파트 브랜드로 발표했다. 두산건설의 위브도 2001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알렸다. = 포스코건설이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3750가구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자사 브랜드로 ‘더샵’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듬해인 2002년 3월의 일이다. 주택 업계에서는 포스코건설의 더샵을 국내 아파트 브랜드에 기호·추상적인 의미가 적용된 첫 사례로 꼽고 있다. 더샵은 반올림을 뜻하는 음표인 샵(#)을 형상화한 것으로 고객보다 한발 앞서 생각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시간이 갈수록 브랜드 파워와 판매 간 함수관계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브랜드에 따라 건설사 간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2002년 9월 기존 ‘LG빌리지’를 폐기하고 엑스트라 인텔리전트(eXtra Intelligent:최고의 지성)의 약자인 자이(Xi)를 새 브랜드로 사용한 GS건설이 대표적인 예다. 계열 분리 전 LG건설은 ‘빌리지’가 자연 친화형 단지를 설명하기는 무난하지만 차별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교체했으며 이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분양을 이어가 ‘자이’를 단시간 만에 국내 최정상 아파트 브랜드로 끌어올렸다. 대우건설도 2003년 2월 화성시 기산리에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기존 ‘카운티’를 버리고 ‘푸르지오’라는 지금의 브랜드를 처음 사용했다. 푸르지오는 깨끗함과 산뜻한 의미의 ‘푸르다’와 대지·공간을 의미하는 ‘지오(GEO)’의 합성어다. 2003년 5월에는 금호건설이 사람·자연이 함께 모여 사는 공간을 의미하는 뜻의 ‘어울림’을 브랜드로 채택했고 현대건설도 지난 2006년 9월 하이페리온과 홈타운 대신 힐스테이트로 공식 브랜드를 교체했다. 특히 현대건설은 개편과 동시에 공격적인 브랜드 마케팅을 펼쳐 힐스테이트를 삼성 래미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이 밖에 같은 해 쌍용건설은 스윗닷홈에서 예가(藝家), 우림건설은 루미아트에서 필유, 남광토건은 마이루트에서 하우스토리로 각각 브랜드를 바꿨다. 심지어 공기업인 대한주택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 전신)는 드림빌(2000년)에서 뜨란채(2004년), 휴먼시아(2006년)로 브랜드를 세 차례씩이나 교체했다. 지난 2000년 캐슬(도시형 고급주택)과 낙천대(樂天臺·대규모 자연 친화 단지)를 출시한 롯데건설은 2003년 12월부터는 ‘캐슬’로 브랜드를 통일해 운영하고 있다. = 아파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대형 건설사들마다 브랜드 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 대형 건설사들의 아파트 브랜드를 교묘하게 베끼는 이른바 짝퉁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업체들마다 브랜드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지난해 울산의 한 주택건설 업체가 대림의 e-편한세상과 비슷한 ‘e-편한세상 II’를 사용해 대림산업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 아파트 이름을 바꿨으며 2005년에는 경북 포항시 지역 건설업체가 대우푸르지오와 비슷한 ‘푸르지요’를 사용해 물의를 빚었다. 2004년에는 전북 전주에서 삼성래미안과 비슷한 ‘라미안’ 아파트가 분양되기도 했었다. 대우건설 상품설계팀 이강원 차장은 “아파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짝퉁 브랜드를 사용하는 경우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지방 현장과 고객을 동원해 불법으로 브랜드와 로고를 도용하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