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 후원사들의 손익계산서

2009년 골프계에는 유난히 낭보가 많았다. 양용은 선수의 PGA 메이저 대회 우승에서부터 신지애 선수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신인왕·상금왕·다승왕(공동)을 휩쓴 것까지. 국내에서도 서희경 선수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대회 5승, 유소연 선수가 4승을 하는 쾌거를 이뤘고 전미정 선수는 일본 대회에서 4승을 기록했다.선수들이 우승에 환호할 때 뒤에서 조용히 미소를 띠고 있는 이들도 있다. 바로 이들 선수들을 후원하는 기업들이다. 사실 골프는 기업들에 그 어느 운동보다 매력적인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일단 비용이 야구·축구·농구 등의 단체 종목에 비해 저렴하다. 단체 경기의 경우 일단 팀워크를 위해 합숙 훈련을 위주로 선수단을 운영하다 보니 숙박·이동·식사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반면 골프는 계약금만 지급하면 훈련 경비는 선수가 알아서 부담한다. 선수의 실력을 상·중·하로 나눌 경우 스타급 선수는 계약금 1억 원 이상이지만 스타로서의 자질이 보이는 중급 선수는 5000만 원대, 시작 단계인 유망주는 2000만~3000만 원 선이다. 선수로서는 계약금만으로는 훈련 경비도 충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회 상금을 타야 할 절실한 동기가 생긴다.비용에 비해 효과는 크다. 우승할 경우 모자·셔츠에 새겨진 로고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얻는 홍보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방송·신문·인터넷에 사진과 동영상이 노출 빈도와 주목도를 따지면 광고비를 능가하는 경우가 많다.마케팅 효과도 대단하다. 골프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구매력이 상당한 잠재 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VIP 마케팅에 적합하다. 미래에셋·LIG손해보험·신한은행·토마토저축은행·삼화저축은행 등 주로 금융권이 골프 선수 후원에 적극적이다.2009년 골프 후원사들 중 ‘위너’로 꼽을 수 있는 곳은 미래에셋·하이마트·토마토저축은행이다. 다수의 우승자를 내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수익률로 따지면 2009년 최고의 대박은 골프웨어 업체인 ‘앙드레김골프’다.‘얼짱 골퍼’로 불리는 박상현 선수는 2009년 5월 SK텔레콤 오픈과 10월 SBS에머슨퍼시픽힐튼남해 오픈에서 연거푸 우승하며 생애 첫 우승이자 시즌 첫 2승을 맛봤다. 개인으로서도 짜릿한 쾌거지만, 후원 업체인 앙드레김골프는 2008년 단 한 명의 선수로 시작한 골프 후원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승률로 따지면 200%인 셈이다. 박상현 선수가 계약할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기 때문에 계약금은 5000만 원 이하로 알려진다. 크게 고무된 앙드레김골프는 2010년부터는 유망주 1명을 더 발굴할 예정이다.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09년 신지애 효과를 톡톡히 봤다. 별도의 스포츠단을 운영 하지 않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해외 마케팅을 위해 이례적으로 신지애 선수를 영입한 경우다. 신 선수는 2008년 초청 선수로 LPGA에서 뛴 후 2009년 공식 데뷔했는데, 이것이 해외 무대에 도전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기업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해외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던 회사는 마침 기존 소속사와 계약 만료 후 두 달이나 무적(無籍)으로 있던 신지애 선수를 영입한 것이다.LPGA는 전 세계에 중계되는 만큼 홍보 효과는 기대 이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우승 한 번만으로도 굉장히 효과가 크다. 브랜드 노출이 많이 됐고 해외에서의 인지도도 올라가 도움이 많이 됐다”고 얘기하고 있다.이처럼 적은 인원으로 어쩌다 대박을 거둘 수 있지만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보장은 없다. 장기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려면 꾸준히 유망주를 발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하이마트는 골프계의 명가라고 할 수 있다. 선종구 하이마트 대표는 현재 KLPGA의 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골프와 인연이 깊다.2002년 선수단을 창단한 하이마트는 소속 선수들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2009년에는 안선주(2승)·유소연(4승)·이보미(1승) 선수가 총 7회의 우승을 거두며 ‘후원사 다승왕’에 올랐다. 2008년에 총 15승(해외 4승 포함), 2007년에 총 14승(해외 1승 포함)을 올린 것에 비하면 다소 위축되긴 했지만 여전히 여자골프계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하이마트 측은 “창단 취지 자체가 마케팅 수단보다 한국여자골프 발전이라는 사회 기여에 있다. 마케팅이 목적이었다면 스타급 선수를 후원했겠지만, 우리는 신인 선수만을 키우고 있다. 신지애 선수처럼 대형 선수로 성장한 뒤에는 더 큰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보내주고, 다시 새로운 무명 선수를 발굴해 오고 있다”는 입장이다.골프 회원권 매매, 분양과 골프장 컨설팅을 하는 동아회원권은 골프 사업으로 번 돈을 다시 골프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선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2006년 남자선수단, 2009년 여자선수단 창단으로 현재 남자 선수 6명, 여자 선수 7명을 후원하고 있다. 2006년 강지만 선수 우승 이후 우승이 없다가 2009년 이현주 선수 우승으로 그간의 시름을 잊었다. 동아회원권 역시 “홍보 효과를 노리려면 잘하는 선수 2~3명을 뽑아서 하겠지만 유망주를 키워 골프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전했다.골프는 단체 경기와 달리 훈련 경비는 선수 개인이 알아서 하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든다. 반면 우승할 때의 홍보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스포츠다. 2009년 국내 대회 최다승(5승)을 거둔 서희경(하이트맥주), 4승을 거둔 유소연(하이마트), 일본에서 4승을 거둔 전미정(진로재팬), 해외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나연(SK텔레콤), 2년 연속 1승을 거둔 최혜용(LIG손해보험) 선수(왼쪽부터).토마토저축은행은 2007년 창단 이후 우승권의 선수들을 영입하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2008년 황인춘 선수가 2승을 한 데 이어 2009년 이승호(2승)·맹동섭(1승)·류현우(1승) 등 3명의 선수가 KPGA에서 우승을 거뒀다. 2009년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린 토마토저축은행은 2010년 5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류현우 선수는 시즌 중에 영입한 케이스다.토마토저축은행은 “지금은 고객을 만나도 별다른 설명 없이 ‘토마토저축은행이네요’라며 먼저 알아봐 준다. 선수들의 우승을 기념해 정기적금 상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호응이 좋았다”고 전하고 있다. 일개 저축은행이 아닌 성장하는 금융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로 자리 잡는데 골프가 많은 도움을 준 셈이다. 삼화저축은행도 2009년 김대섭 선수의 우승으로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를 맛봤다.선수 8명(진로재팬 2명 포함)으로 구성된 하이트맥주는 서희경 선수가 KLPGA에서 홀로 5승을 따내며 2009년을 자축했다. 서 선수 외에도 KPGA에서 김대현 선수가 1승을 거둬 하이마트에 이어 2번째 다승을 거뒀다. 게다가 일본에서 활동 중인 전미정 선수가 일본 리그 4승, 이지희 선수가 1승을 거두며 ‘진로’ 브랜드를 알리는데 공헌했다. 또 해외무대(LPGA)에서는 강수연·김주미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2006년 골프 선수단을 창단한 LIG손해보험은 2008년 최혜용 선수가 첫 승을 올렸고, 2009년 KLPGA에서 최혜용·김현지 선수가 각각 1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SK텔레콤은 2004년 김대석 선수 후원을 시작으로 최나연·홍순상 선수를 영입했다. 2009년 최나연 선수는 국내에서 개최된 두 번의 LPGA 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국내에서는 홍순상 선수가 1회의 우승을 거뒀다. SK텔레콤은 “골프가 개인 스포츠이면서 프리미엄이미지와 깨끗하다는 느낌 때문에 우리 회사와 잘 맞는다. 또 장학퀴즈를 시작한 회사답게 인재 양성이라는 의미에도 부합된다”며 골프 후원 이유를 밝혔다. 2008년 단 한 명으로 선수단을 꾸린 앙드레김골프는 박상현 선수가 2009년 생애 첫 우승이자 시즌 2승을 거두며 대박을 터뜨렸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