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이루마

“군 복무 중에 딸 로운이가 태어났어요. 그때 선물로 들어온 아기 물티슈를 봤는데 패키지가 모두 예쁜 것 같지 않더라고요. ‘좀 더 예쁘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 병장 휴가 때 우연히 물티슈 원단에 대해 잘 아는 선배와 만난 자리에서 물티슈 얘기가 나왔어요. 유아용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던 차에 한번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지인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죠. 제 본업은 물론 음악이지만, 제가 원하는 음악적인 꿈을 이루기 위한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부업도 필요하잖아요.(웃음) 음악은 돈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한때 필자의 휴대전화 컬러링을 장식하기도 했던 아름다운 선율의 피아노곡을 만든 작곡가가 내민 명함에는 ‘CEO 이루마’라고 적혀 있었다. 해군 복무 당시 태어난 소중한 딸과의 만남이 음악인 이루마 인생에 색다른 터닝 포인트가 된 듯했다. ‘친한 친구’라고 지칭한 사람은 영국에서 만난 유정환 씨. 하던 사업마저 접고 그 역시 이루마와 함께 현재 공동 CEO로 물티슈 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두 사람이 만드는 제품은 아기용 물티슈 ‘몽드드(Mon Dou Dou)’다. 프랑스어로 ‘내 담요’를 뜻하는 특이하면서도 쉬운 발음의 브랜드로 순면·오트밀·동백유 등 천연 원료를 사용한 ‘웰빙 물티슈’가 셀링 포인트다. 하지만 ‘작곡가’와 ‘물티슈’ 사이에 쉽게 좁힐 수 없는 틈이 여전히 의문이다.“처음엔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무척 말렸어요. 음악 하는 사람이 무슨 물티슈냐고요.(웃음)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 있는 아이템이란 얘기도 들었죠.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하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물티슈는 아기를 위한 제품이잖아요. 아기와 물티슈가 갖는 깨끗함과 순수라는 느낌이 제가 하는 음악과 동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인과 물티슈 사이의 갭이 지금은 많이 좁혀졌는지 게시판에 ‘음악만큼이나 좋네요’라는 고객평도 있어요.”대학 이전까지 미술을 공부한 그는 1년간의 제품 개발 기간 동안 패키지 디자인에서부터 원료 선정, 협력업체와의 가격 딜 등에 이르기까지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름만 빌려주고 홍보에만 나서는 진정성 없는 사업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은한 미색의 패키지 색깔 역시 그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것. 먹을거리는 원산지를 따지면서 아기들이 쓰는 물티슈 원산지에는 관심 없는 소비자들을 위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프리미엄급 엠보싱 원단을 쓰고, 아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대기업이 생산하는 물티슈보다 더 도톰한 형태를 고집하는 것도 ‘길게 보고’ 간다는 ‘몽드드’의 철학이다. 그런데 이 ‘신생’ 아기 물티슈가 모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 출시하자마자 기록을 세웠다.“국내 온라인 물티슈 판매의 70%를 점유하고 있으니 거기서 성공하면 되겠다 싶었죠. 하지만 워낙 대형 쇼핑몰이라 머천다이저(MD)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고민 끝에 이루마 씨와 무작정 유아 아동품 파트 본부장을 찾아갔죠. ‘몽드드’를 독점 판매하고 싶다고 했더니 고맙게도 그 자리에서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유아 아동품 MD들이 별다른 광고 없이 3개월 동안은 하루에 주문이 10건만 들어와도 많이 나가는 것이니 실망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웃음)”유정환 사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MD들의 충고는 ‘기우’에 그쳤다. 론칭 첫날 40건이 접수된 것에 이어 다음날은 200건을 기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티슈 판매 순위에 ‘몽드드’라는 이름이 5위권 내로 껑충 뛰어올랐고, 지금은 1주일에 1만 개(pack)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론칭 3개월 만에 그 같은 성과를 이뤄낸 근간은 엄마들의 입소문. 게시판 고객 평가가 돈 들이지 않은 강력한 광고 메시지가 돼 주고 있다. 유 사장은 “제품에 제조일자를 표기하는데 ‘몽드드’는 대부분 10일 이내에 생산된 제품을 발송하기 때문에 일정 물량을 초과해 생산하지 않는다. 제조일자가 오래된 것은 방부제를 쓴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성과에 힙 입어 지금은 6명의 직원과 함께 생산부·기획부·디자인부 등 조직도 보다 짜임새 있게 갖췄다. 음악과 방송, 각종 행사 초청 공연에 이젠 사업까지 짬 없는 스케줄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14개월짜리 딸을 둔 이루마 사장에게 아기 물티슈는 사업이자 생활이기도 하다.“물티슈란 물티슈는 모두 사다 써봤죠. 물론 우리 제품도 쓰고요. 그 덕분에 아기 기저귀 가는 일은 거의 제 몫이었죠. 와이프(손혜임)는 오히려 좋아했죠.(웃음) 주변 분들에게 제품을 많이 드리고 싶은데 알아서 쇼핑몰에서 주문해 쓰더라고요, 돕고 살아야 한다면서요.(웃음)”“형부 덕에 처제(손태영)는 아기 물티슈 사는 일은 없겠다”고 했더니 아니란다. 선물하기도 전에 주문해 쓰고 품평까지 해주는 야무진 처제라고.창업자금 1억 원으로 시작해 마케팅 활동을 원 없이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루마, 유정환 두 사장은 현재의 성과에 만족한다. “써 본 사람들은 꼭 알아줄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들은 오는 10월 한 단계 업그레이된 프리미엄 ‘몽드드’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들을 위해 보다 도톰하고 넉넉한 사이즈로 선보일 것이란 설명. 한 장 한 장 꺼내 쓸 때 여러 장의 티슈가 딸려 올라오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기술은 프리미엄 라인에서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몽드드’가 엄마들의 입소문을 탄 데는 지속적인 사회 공헌도 한몫했다. 예전부터 친한 연예인들과 정기적인 사회봉사 모임을 갖고 있던 두 사장이 더욱 적극적인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 제품 기부 또는 기부금 형태로 보육원 등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주로 쓰이는데, 이들의 소식을 듣고 동참 의사를 전해 오는 유아 아동 제품 업체가 늘고 있다.“지금 입점하고 있는 쇼핑몰에서 판매 1등을 하고 나면 생각해 볼 일이지만(웃음) 오프라인 유통망을 뚫고 싶어요. 대형 마트보다 편의점 입점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 물티슈를 가까운 편의점에서 언제든 손쉽게 구입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10장짜리 휴대용 티슈 장수를 늘릴 계획입니다.”‘몽드드’ 두 사장의 목표다. 그런데 이 ‘몽드드’는 물티슈 이름에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물티슈를 시작으로 다른 유아 아동용품 아이템으로 확장할 청사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형편이 어려워 전문 음악 교육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위해 음악인 이루마가 미래에 설립할 평생의 꿈, 음악 아카데미의 이름 또한 그의 꿈을 담은 ‘몽드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약력: 1978년생. 1988년 영국으로 이주. 1992년 영국 크로이던 ‘영 뮤지션 페스티벌’ 솔리스트로 데뷔. 2000년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 졸업. 2001년 ‘Love Scene’ 앨범으로 국내 데뷔. 현재까지 10여 장의 정식, 특별 앨범 출반. 드라마와 영화 OST 작곡가로도 활동. 2006년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해군에 입대. KBS 1FM ‘세상의 모든 음악’ 진행자로 활동 중. 뮤직코리아 2009 홍보대사.장헌주·객원기자 hannah31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