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혐의로 유죄 선고 받았던 R씨 인터뷰

지난 2004년 12월 2일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는 국내 주요 액정표시장치(LCD) 제조 업체인 A사의 6세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컬러필터 공정 기술을 대만 업체에 유출하려고 한 혐의로 이 회사 전 직원 R씨 외 3명을 구속 기소했다. 그들의 혐의 내용은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 위반이었다. 국가정보원의 제보로 검찰이 수사를 시작해 약 2년 반 동안 재판이 진행됐고 2007년 4월에 결국 4명은 유죄판결을 받았다.당시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3700억 원을 들여 개발한 최첨단 기술을 빼돌려 우리나라에 1조3000억 원의 막대한 피해를 안길 뻔한 중대 사안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당시 중화권으로의 대표적인 기술 유출 사례로 기록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영업비밀보호법이 규정하는 비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란의 소지는 있다. 직원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법 해석에 따라 ‘기밀’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 후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고 현재 중국의 LCD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R씨를 수소문해 사건의 자세한 내막과 심경을 들어봤다.처음에 기소의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판사들이 결심을 계속 미루는 바람에 세 번째 판사로 바뀐 뒤 검사는 약 40개의 내용을 영업비밀이라고 특정했다. 이 내용은 검사가 지정한 전문가에게 의뢰해 영업비밀 여부를 판단하게 했다. 하지만 그 전문가 역시 영업비밀 여부를 단정할 수 없었고 각 내용에 대해 7단계 리커트 스케일(Likert Scale:가부를 명확히 할 수 없을 때 7은 강한 긍정, 1은 강한 부정)로 답을 했다. 결과는 약 40개 중에 하나만 영업비밀이라는 답이 나왔고, 평균 점수가 약 3.4 정도여서 대체로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긍정의 답을 얻은 내용은 신입 사원이 교육 차원에서 컬러필터 불량 사진을 찍고 설명을 기록한 것이다. 당시 본인에 대한 죄명은 ‘부당경쟁방지법위반-영업비밀유출 사전공모죄’였고, 겪으면서 알게 됐지만 영업비밀의 범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산업 기술 및 정보와는 차이가 컸다.2년 반의 재판 끝에 2007년 4월께까지 4명 모두 유죄판결을 받고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물론 판결을 수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본인을 포함해 모두 변호사 비용, 직장에의 피해, 스트레스, 진로 문제 때문에 항소를 포기했다.당연히 인지하지 못했다. ‘6세대 컬러필터 기술 유출’ 사건이라고 불리던 이 사건에서 정작 기술 자료라는 것은 검사가 지정한 전문가로부터도 별 자료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머리에 들어 있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면서 공소변경됐다. 회사가 제시한 40여 개 항목 중에 들어 있는 컬러필터 디자인 문제만 하더라고 A사 외에도 LCD 업계에서 컬러필터를 자체 제작하기도 하고 외주를 주기도 했다. 외주 제작을 위해서는 당연히 디자인과 설계 규격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내용도 전문가들 판정으로는 3점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이 사례만 하더라고 당시 본인도 이런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회사는 퇴사자 증가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다. 조치의 일환으로 기 퇴사자들의 근무처를 조사하고 경우별로 대처 방안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퇴사자를 대상으로 본 사건과 같은 소송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대다수 직원들이 미리 알고 있었다. 단지 이것이 나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회사 차원의 교육은 이뤄지고 있었다. 단, 실제 참가율은 정확히 알 수 없다.본 사건의 대상 회사였던 대만의 B사는 여러 LCD 제조사에 컬러필터를 공급하는 기업이었다. 당시 B사는 일본 회사로부터 전수 받았지만 낮은 수율 문제로 한국과 일본의 경험 많은 엔지니어들을 구하고 있었고 본인도 재료 및 장비 업체들을 통해 제안을 받았었다. 컬러필터 수율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관리 기술이다. 즉, 첨단 기술과는 관계가 멀다고 생각했다.이 사건 자체보다 이 사건 이후의 처리를 잘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인 유감이다. 다시 말해 이와 유사한 일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검찰의 첨단범죄수사부나 경찰의 컴퓨터수사대 등은 기업의 의뢰만 있으면 당연히 조사에 나설 것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