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화 딜레마에 빠진 중국

최근 중국에서 기업의 재국유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철강 석탄 항공 주유소 부동산 금속 소비재 등 각 산업에서 국유 기업의 지배력이 높아지는 사례가 부쩍 늘면서 중국이 다시 국유화의 길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개혁 개방 이후 30년간 걸어온 길을 되돌아갈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반면 재정에 의한 경기 부양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더블딥(경기 반짝 상승 후 침체)을 면하려면 민영 경제를 더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국이 국유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중국에선 지금 국유 기업이 발전하고 민영 기업은 위축되는 국진민퇴(國進民退)와 이 같은 성장 모델의 전환을 요구하는 국퇴민진(國退民進)이 샅바 싸움을 하는 형국이다.◇= 국유 기업인 산둥철강은 최근 민영 기업인 르자오철강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합병 이후 산둥철강의 연간 매출은 1676억 위안(30조1680억 원)으로 중국 2위 철강사가 된다. 생산량 기준으로는 중국 3위에 오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산둥성 정부 주도로 부실 국유 기업이 우량 민영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라며 국진민퇴 사례라고 지적했다.석탄 산업에서도 재국유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유 기업이자 중국 2위 석탄 기업인 중메이그룹은 민영 기업인 산시진하이양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8월 초까지 중국 최대 석탄 산지인 산시성에서 2000여 개에 달하는 소형 탄광의 70%가 대형 탄광에 인수됐다. 인수 주체는 대부분 국유 기업이다. 중국 정부는 내년까지 소형 탄광을 1만4000개에서 1만 개로 줄일 방침이어서 국유 기업 주도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를 두고 중국 언론들은 탄광 개발로 떼돈을 번 민영 기업인을 일컫는 ‘산시 라오반(老板:사장)’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되게 됐다고 전한다.철강과 석탄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틈타 과열 투자 양상을 보이는 시멘트 조선 자동차 금속 등의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이들 산업 역시 국유 대기업 중심으로의 재편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부양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투자 규제가 재국유화로 나타나는 셈이다.민영 둥싱항공이 최근 파산한 배경에 국유 항공사로의 피인수를 거부한 데 있다는 중국 언론들의 전언도 재국유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민영 잉롄항공도 국유 쓰촨항공사에 지분 20%를 매각했다. 중국 최대 가전 유통 업체 궈메이전기 황광위 전 회장이 구속된 이유 중 하나가 민간인이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파워가 너무 강해지는 걸 용인할 수 없는 지도부의 인식 때문이라는 FT의 분석 역시 국진민퇴의 사례로 꼽힐 수 있다. 민간 주유소들이 국유 기업에 잇따라 인수되는 것도 재국유화의 한 사례다.소비재에서도 재국유화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중국 최대 우유 업체인 멍뉴의 창업자 뉴건성 회장은 최근 주력 자회사인 ‘네이멍구 멍뉴’의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중국 정부가 지명한 인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뉴 회장은 맨손으로 멍뉴를 중국 최대 유제품 업체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국가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민간 기업인의 상징적인 존재나 다름없었다. 승승장구하던 뉴 회장과 멍뉴는 그러나 중국을 강타한 멜라민 파동으로 최대 위기를 맞는다. 멍뉴는 지난해 1억40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뉴 회장은 지난 7월 초 중국 최대 식품 수출입 업체인 국유 중량집단(中粮集團:Cofco)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20%의 지분을 매각했다. 멍뉴의 단일 최대주주가 된 Cofco는 당초 멍뉴의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Cofco가 선임한 멍뉴 이사진 중 한 명이 최근 뉴 회장을 대신한 것이다. 멍뉴에 대한 국유 기업 지배가 멜라민 파동 이후 소비자와 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응급조치라는 입장이지만 멍뉴 사례는 민영화가 대세였던 항공, 석유화학, 소비재, 금속 산업의 재국유화 움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FT)이라는 지적이다.중국에서 재국유화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한 2003년부터 본격화됐다. 2006년 철강 시멘트 등 과열 업종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국유화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다.FT는 한 중국 기업인을 인용, “중국은 다른 권력을 용인하지 않는 중앙집권적 국가이기 때문에 정치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재국유화 문제는 계속 제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도 중앙집권적 사회여서 경제는 늘 국유 기업이 지배했고 민영 기업이 너무 커지거나 성공하면 창업자가 제거되고 경쟁 국유 기업에 먹히는 일이 나타났다는 지적하는 비판론자도 있다.◇= 문제는 재국유화가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민영 경제를 위축시켜 중·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갉아 먹을 뿐만 아니라 경기 회복에 절실한 민간 투자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베이징청년보는 최근 사설에서 은행 대출이 급감한 것은 정부 지원 대출 재원이 한계에 달했음을 보여준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민간의 자본을 유치하지 못할 경우 중국 경제는 재차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은행들의 7월 신규 대출은 3559억 위안으로 전달(1조5300억 위안)의 23% 수준에 그쳤다.상하이증권보도 중국 경제가 더블딥을 면하려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게 투자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중국 경제의 성장 모델을 전환해 민영 경제가 이를 통해 성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하이증권보는 국유 기업이 독점해 온 영역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중국 정부가 겉으론 민영 경제 육성을 통한 국유 주도의 성장 모델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반독점법 시행에 들어간 것이나 일부 부실 국유 기업의 민영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최근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민간 투자에 대한 격려 의견’초안을 내놓았다. 국무원(중앙정부)이 연내 승인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지침은 정부 투자로 개척하고 민간 투자로 끊임없이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금융 보험 등의 5대 국유 독점 영역을 민영 기업에 개방한다는 게 골자다. 민영 기업이 순이익을 재투자할 경우 면세혜택을 주고, 민영 기업이 중요한 설비를 수입할 경우 원자재와 부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주고, 개인이 대부업을 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개인의 대부업 허용은 대부분이 민영 기업인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결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중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쏟아 붓고 있는 재정자금의 상당수는 국유 기업으로 흘러가 정작 자금이 필요한 중소 민영 기업은 소외됐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하지만 중국에선 이 규정이 단지 지침에 불과하기 때문에 2005년에 발표된 민영 경제 육성을 위한 ‘비공유경제36조’처럼 발표만 하고 실시되지 못하는 경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관련 부처에서 이를 뒷받침할 정책들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국유 기업의 임원 자리를 공무원과 동일시하는 중국 관리들은 국유 기업의 민영화를 일자리 감소로 보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유 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실직을 우려한 노동자들의 대규모 반발 시위로 민영화가 무산되는 일도 잇따르는 상황이다.국진민퇴와 국퇴민진의 샅바 싸움에서 국진민퇴에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민영 경제를 키우는 성장 모델의 전환이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중국 지도부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샅바 싸움이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국의 국유화 딜레마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