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값 ‘상승 랠리’ 언제까지

부동산 시장이 하반기 우리 경제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의 잇따른 완화책과 통화량 증가 후폭풍이 맞물리면서 전세 시장부터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히 광풍으로 비견될 만하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114의 9월 4일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 값은 주간 상승률 조사를 기준으로 올 들어 가장 높았다. 강서구가 한 주 만에 0.67%나 올랐고 중랑구 0.56%, 도봉구 0.52%, 마포구 0.51% 등 서울 전 지역 전세 값이 모두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전세 값 상승은 이제 서울을 넘어 수도권 전체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일부 지역은 소형 평형에서 시작된 전 세값 상승 랠리가 중소형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수요 예측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올 서울 지역 입주 아파트 가구는 2만8000여 가구로 지난해 5만 여 가구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수요 예측 실패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총체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전세 값 상승은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수요가 급증한 것이 원인으로 풀이된다.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재개발 사업으로 부셔져 없어진 가구 수는 1만8098가구, 공급된 재개발 지역 아파트는 1만1669가구였다. 이랬던 것이 올해는 없어진 가구 수가 3만1061가구인데 비해 공급된 가구 수는 1만1074가구로 2만 가구 이상으로 벌어졌다. 이것이 결국 전세 시장 불안의 불씨가 된 것이다. 더군다나 내년에는 멸실 가구 수와 공급 가구 수 차이가 2만6000가구로 더 커진다.쌍문1구역, 합정4구역, 왕십리3구역, 옥수12구역 등 4곳이 현재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이주에 들어갔으며 합정4구역 등 3곳은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서울 시내 재개발 구역 45곳이 해당 지자체로부터 사업시행인가를 얻은 상태여서 멸실 가구 증가로 인한 전세 시장 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사업시행인가 다음에 남는 재개발 절차라고 해봐야 관리처분인가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 물량은 사실상 모두 내년에 재개발된다고 봐야 한다.정부가 부랴부랴 보금자리주택 공급과 도심 소규모 주택 개발 활성화를 대책으로 발표했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을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많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뉴타운 등 대규모 재개발 사업은 대부분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 지정한 곳들”이라면서 “이들 물량이 결국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발목을 잡은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만약 정부가 재건축에 걸린 규제마저 풀어헤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부동산114가 조사한 지난 5년간 재건축 아파트 멸실량과 공급량 자료를 살펴보자. 올해 재건축으로 공급된 서울 지역 아파트 가구 수는 1만1352가구인데 비해 착공으로 사라진 가구 수는 5332가구였다. 아파트 재건축은 기존 가구 수를 확대하기 위한 공급 수단인데 올해 이 사업으로 늘어난 가구 수는 불과 6020가구에 불과했다. 지난해 증가분 3만5963가구와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숫자다.최근 전세 값이 급등세를 기록하고 있는 강서구 동촌동, 화곡동 일대는 화곡3주구 재건축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집값이 강보합세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화곡3주구 원주민 이주는 20~30% 수준인 걸 감안할 때 인근 지역 전세 값은 당분간 강세가 불가피하다. 인근 마곡동 신안아파트 79㎡(24평)의 현재 전세 값은 9000만~1억1000만 원 선으로 한 달 사이 1000만 원이나 올랐다. 이러다보니 전세 값 대비 매매가 비율도 시간이 갈수록 상승 기조가 뚜렷하다. 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전세 값 대비 매매가 비율은 39.1%로 지난해 7월 39.2%를 기록한 이후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지금 시점에서 정부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전세 값에서 출발한 시장 불안이 매매 시장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일단 현재만 놓고 보면 상황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행이 매주 조사하는 전세가격지수를 예로 들어 살펴보면 서울 소형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8월 말 현재 103.8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101.8)에 비해 1.9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중형이 1.2포인트, 대형은 마이너스 2.2포인트 늘어났다. 이는 서민들이 느끼는 집값 부담이 훨씬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 강북의 경우 중형과 대형이 각각 마이너스 0.5포인트, 마이너스 3.0포인트를 기록한데 비해 소형만 1.3포인트 상승했다.정확하게 분석하기는 힘들지만 현재 소형 아파트 매매 값이 중형, 대형에 비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것은 일부 세입자들이 너무 올라버린 전세 값 상승 부담을 이기지 못해 매매로 옮겨갔다는 방증이다. 8월 말 현재 매매가격지수는 서울 소형 아파트는 연초 대비 3.5포인트 올라 중형(2.6%), 대형(1.9%)을 크게 앞질렀다. 강북도 소형(1.4%), 중형(0.5%), 대형(마이너스 0.1%) 순을 기록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소형 주택의 구입 부담이 적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저금리 기조를 타고 은행들마다 주택 담보대출에 적극 나섰던 것도 주된 원인으로 볼 수 있다.이러자 정부는 우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통해 진화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고가 대형 주택에 대한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만 거둘 뿐 주택 구입이 상대적으로 쉬운 소형 주택 집값까지 잡기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2006년 당시 투기 지역 내 6억 원 이상 아파트 구입에 DTI가 적용되었던 때, 고가 아파트가 많이 몰려 있던 강남권은 하락하고 반대로 소형 아파트, 빌라, 다세대, 오피스텔 등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다. 강남권에서도 3억~4억 원대 나홀로 아파트들은 DTI 규제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2006년 3·30 대책 한 달 뒤부터는 중소형의 집값 상승률이 중대형을 앞지르기 시작해 2006년 11월 중소형(10.90%)이 중대형(4.27%)보다 월등히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면서 “근본적인 처방 없이 금융 대책 만으로 전세 값을 잡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더군다나 올 하반기 서울 지역 아파트 입주 물량이 1만4704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8199가구)의 38% 수준인데다 내년 상반기도 서울에서 입주에 들어가는 아파트 물량이 올 하반기보다 적은 1만3432가구여서 공급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전체 입주량은 올해보다 다소 증가하지만 대부분이 하반기에 몰려 있어 수요와 공급 간 미스 매칭은 내년 상반기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김 소장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자체마다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를 마구 내줄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며 “보금자리주택 조기 착공 등 공급량 확대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으로선 재개발, 재건축 사업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파트 공급이 대폭 늘어나는 시기까지 전세 값 인상을 강제 억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며 정부의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