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전기차 대전쟁

미국의 신생 자동차 업체인 코다자동차(Coda Automotive)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혁신적인 사업 모델과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이 회사는 재미있는 점이 많다. 자동차 업체지만 종업원이 달랑 41명에 불과하다. 본사는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에 있긴 하지만 자체 공장도 없다. 딜러 네트워크도 없다. 디자이너 무리도 없다. 최고경영자(CEO)는 한때 미국에서 인기 있는 풋볼 스타였다.자동차 업체라고 보기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그런데도 시제품으로 나온 제품은 꽤 기대된다는 평가다. 이 회사가 내년 4분기부터 본격 시판할 제품은 100% 전기 자동차다. 전기와 휘발유를 번갈아 쓰는 하이브리드 다음 세대다. 브랜드명은 회사 이름과 같다.333V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이 자동차는 한 번 충전에 시속 130km의 속도로 최대 144∼192km(90∼120마일)의 거리를 달릴 수 있다. 일반 가정집의 110V나 220V 단자에 꽂아 충전할 수 있다. 220V 단자에 꽂을 경우 100% 충전하는 데 6시간 정도 소요된다. 만약 40마일 거리의 출퇴근용으로 이 차를 사용한다면 2시간(220V 단자) 만에 충전이 완료된다는 게 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사실 전기차가 1873년 가솔린 자동차보다 먼저 제작됐지만 ‘긴 충전 시간, 짧은 주행거리’라는 결정적인 단점 때문에 상용화에 실패했었다. 이런 문제점이 기술 발달로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다.문제는 가격이다. 이 회사는 4도어, 5인승 일반 준중형 세단(풀옵션 기준)을 3만5000달러쯤으로 책정할 전망이다. 세금까지 합하면 4만5000달러 정도가 된다. 약간 비싼 편이다.그러나 연료 효율성이 탁월하다. 100마일당 3달러어치의 전기를 사용한다. 17달러의 연료비를 사용하는 일반 차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게다가 휘발유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환경 친화적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무하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도 이 회사에 전폭적으로 지원했다.시제품은 이미 나왔다. 콜로라도 주에서 이미 시승도 이뤄졌다. 평가는 호의적이다.이 회사 CEO인 캐빈 친거 씨는 “코다 세단은 친환경적이고 실용적인 탈거리를 고민해 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적절한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자동차 업계의 델(DELL)’이라고 보면 된다. PC 제조업체인 델사는 세계 각국에서 가장 가격 경쟁력 있는 부품들을 모아 가장 싼값에 컴퓨터를 공급했다. 이 회사는 결국 IBM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결국은 IBM을 PC 시장에서 손 떼게 만들었다.코다의 전략이 꼭 그런 모델을 닮았다. 차 섀시는 일본 미쓰비시에서 라이선스를 받아 중국 하페이 자동차그룹(Hafei Automobile Group)이 제작한다. 델파이가 조향장치(Power steering)를, 보그바너사가 트랜스액슬(Transaxle)을 공급한다. 전면 후면 범퍼와 후드 라이트 등의 디자인은 포르쉐가 맡았다.가장 중요한 배터리는 세계 최대 리튬이온 배터리 제작사인 중국 톈진 리센(Tianjin Lishen)배터리사가 담당했다. 하지만 배터리의 제품 개발에는 직접 참여한다. 이 부분에 코다에서 가장 많은 인원인 15명이 투입됐다.코다는 부품을 모두 중국에서 조립하며 이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 또 다른 6명의 직원을 중국에 파견했다.제조는 이렇게 모두 미 본토 밖에서 이뤄지는 대신 본사는 제품에 대한 마케팅과 핵심 기술 개발, 지식재산권 관리 등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풋볼 스타이면서 클리블랜드에서 차 정비소를 하는 형제들을 도우면서 자란 친거 회장은 “단순한 차 조립회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친거 회장은 운동을 마친 후 검사로 활약하다 수십 년간 금융 업계에서 일한 다양한 경력과 유연한 사고의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친거 회장은 최근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장관 등 거물급 인사들을 잇달아 경영 고문으로 영입하면서 중국과의 대정부 로비력을 강화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워싱턴포스트지는 “신생 코다가 연료 효율과 친환경을 강조하는 차세대 자동차 시장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다가 시제품을 발표한 시점이 GM이 하이브리드 차량 시보레 볼트(연비가 리터당 98km에 달한다고 발표했으나 논란을 빚고 있음)를 출시한 시점과 맞물렸기 때문이다.그러나 GM 크라이슬러 등의 기성 업체들이 생존의 갈림길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코다처럼 틈새시장을 노리고 재빠르게 진입하는 신생 업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하이브리드카 생산 업체인 브라이트, 최고급 스포츠카 생산 업체인 테슬라, 전기차 생산 업체인 피스커 등이 모든 그런 축에 속한다.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이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의 안정성과 유통망 확보, 마케팅 등 3대 과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1974년 백만장자인 말콤 브리클린이 직접 스포츠카 업체를 설립했다가 파산했던 것이나 GM 최고경영진이었던 존 드로레안 씨가 독립해 직접 회사를 차렸다가 망한 것도 다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문제는 다른 나라에서 이 시장을 노리고 진입하는 경쟁이 더 치열하다는 점이다.최근 일본 닛산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리프(LEAF)를 공개했다. 이에 앞서 미쓰비시도 지난 6월 세계 최초 전기차 아이 미브(i-MiEV)의 시판에 들어갔다. 세계 1위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는 2012년에 전기 자동차를,2015년까지는 연료전지 자동차를 각각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GM도 내년 11월 전기차 시보레 볼트를 내놓고 2011년에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출시할 계획이다. 포드는 내년까지 전기로만 굴러가는 소형 트럭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을 세웠다.메르세데스벤츠가 소속된 다임러그룹은 미국 전기차 개발 전문 업체인 테슬라모터스 지분 10%를 인수했다. 다임러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인 경차 전문 업체 스마트의 전기차 모델은 내년 중 출시된다.독일은 전기차의 빠른 상용화를 정부가 주도하고 나섰다. 독일 정부는 2020년까지 100만 대의 전기차가 ‘아우토반(독일의 고속도로)’을 달리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칼 테오도르 추 구텐베르크 독일 경제장관은 최근 “독일은 2030년까지 전기차 수를 500만 대까지 늘리고 2050년엔 시내를 달리는 모든 자동차를 비(非) 화석연료 차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이를 위해 2011년까지 5억 유로(약 8880억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영국도 지난 4월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이 2015년까지 전기차 10만 대가 거리를 달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국제 경제 조사 기관인 ‘IHS글로벌인사이트’는 “세계적으로 올해 안에 9500여 대의 순수 전기차가 생산될 것이고 2011년까진 그 수가 5만8000대 이상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미즈 히로시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배터리 기술이 반도체 기술보다 복잡하지 않아 단시간에 크게 진보할 수 있다”며 “순수 전기차는 일반차보다 구조가 간단해 대중화에 많은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세계 기업들이 발 빠르게 전기차로 이행하고 있는데 비해 현대·기아차는 좀 느린 편이다. 현대·기아는 내년 하이브리드 차량을 북미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또 2012년 이후 가정에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고, 인근 지역 내에서 전기차 모드로 주행이 가능한 플러그인(Plug-in)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전기자동차 경쟁에서 코다 같은 소형 업체들이 작은 몸집과 날렵한 움직임으로 도요타나 GM같은 공룡들을 물리치고 새로운 플레이어로 자리 매김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박수진·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